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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총리, 윤석열 정부 초대총리에 오르다
한덕수 총리, 윤석열 정부 초대총리에 오르다
  • 오수연
  • 승인 2022.06.06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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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생산성본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2022.4.14.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생산성본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2022.4.14.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에 한덕수 전 총리가 임명됐다. 새 정부 앞에는 산적한 현안이 놓여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엉망이 된 경제를 다시 살리고 토라진 부동산 민심도 챙겨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 등으로 고물가·고금리의 민생 문제도 만만치 않다. 거시경제와 실물경제 경험을 두루 갖춘 한 총리가 윤석열 정부의 ‘경제 구원투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다.

1970년 공직생활을 시작한 한 총리는 경제기획원을 거쳐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역임한 대표적 ‘경제통’이다. 새 정부가 경제와 안보라는 ‘두 수레바퀴’를 굴릴 사령탑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한 총리가 낙점됐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도 한 후보자를 총리로 지명하면서 “민관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조정하면서 국정 과제를 수행해나갈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 한덕수
 

한 총리는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네 정권에서 고위직을 두루 역임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특허청장·통상산업부 차관,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거쳤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경제부총리, 국무총리를 차례로 지냈다. 정권 교체가 이뤄진 뒤인 이명박 정부에서도 주미 대사로 3년간 재임했다.

한 총리는 2007년에 이어 다시 총리 자리에 올랐다. 지금까지 두 차례 총리를 역임한 인물은 헌정 사상 4명(장면·백두진·김종필·고건)이다.

그는 1949년 전북 전주에서 아버지 한병호씨와 어머니 전주 최씨 사이에서 6남 3녀 중 5남으로 태어났다. 대학교 4학년 재학 중인 1970년 행정고시 8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고시를 준비하면서도 학업도 등한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서울대 상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전체 졸업생 중 3등에게 주어지는 대법원장상까지 받았다.

공직 생활은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상공부(산업통상자원부)에서 주요한 경력을 쌓았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이른바 ‘KS 라인’의 대표주자다. 하버드대 경제학 석·박사 학위도 있다.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여러 정권에서 공직을 맡을 수 있었던 핵심 이유다.
 

개방론자 한덕수… 첫 외제 관용차 주인공
 

정치적 색채는 없지만 경제 관료 당시 통상 분야에서만은 달랐다. 시장을 개방하고 다른 국가와 경쟁해야 경제가 발전한다는 주장을 해온 대표적 ‘개방론자’다. 그의 이력과도 관계가 깊다. 경제기획원에서 일하다 하버드대에서 유학한 게 시작이다.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 통상산업부 통상무역실장에 이어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 총리로 일할 때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마무리 투수’ 역할을 전담했다.

개방론자로서 면모가 드러나는 대표적 일화가 있다. 통상 전문가로서 그는 “토끼는 한 평의 풀밭으로 만족하지만 사자는 넓은 초원이 필요하다”며 ‘개방론’을 주장했다. 통상교섭본부장 시절인 1998년 우리 정부의 수입차 개방 의지를 대외적으로 알리려 관용차도 외제차로 바꿨다.

당시 한 총리 차량은 배기량 2300cc짜리 스웨덴 사브 ‘9-5’모델로 결정됐다. 장관급 고위 관료가 외제 관용차를 타기로 한 것은 당시로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스크린쿼터(연중 일정 기간 한국 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게 한 제도) 축소 논란 때도 한 후보자는 개방론자로서의 면모를 뚜렷이 드러냈다.

1998년 7월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그는 “영화업계 위기를 극복하려면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영화계에서 강하게 반발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돌아온 2006년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줄이는 결정을 이끌었다.

경제 관료 출신인 만큼 세제·복지·재정 분야에선 보수 쪽에 기운다. 무역협회장 시절인 2015년 1월 최고경영자 조찬 간담회에서 “세율을 높여 경기가 위축되면 세수가 줄어든다”며 세원 확대를 주장했다. 재정 건전성이 중요하다며 ‘퍼주기식’ 복지 확대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 삼고초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8개 부처 장관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윤 당선인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국방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장관 인선을 발표했다. 2022.4.10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8개 부처 장관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윤 당선인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국방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장관 인선을 발표했다. 2022.4.10

 

윤 대통령은 경제와 외교안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를 찾으면서 한 전 총리 카드를 유력하게 검토하게 됐다. 정치 신인인 윤 당선인에게 부족한 경륜과 국정운영의 경험을 보완해줄 수 있는 카드라는 것이다.


현재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회 인준이 비교적 수월할 것이라는 분석 또한 한 총리의 발탁 요인으로 꼽힌다.

윤 당선인과 한 총리의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김영삼 정부에서 경제수석을 지낸 한이헌 전 의원이 한 총리를 윤 당선인에게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 의원은 선거 기간 윤 당선인을 돕는 원로 고문 중 한 명으로 경제 정책을 자문해왔다. 한 전 의원은 경제기획원 시절 한 총리를 데리고 일하면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제원 전 당선인 비서실장은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과 한 전 총리가 전날 3시간가량 ‘샌드위치 회동’을 한 사실을 공개하며 “국정 운영과 조각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장 실장은 한 전 총리의 총리직 수락 배경에 대해 “다 못 이룬 개혁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 같다”라며 “그런 것들을 차분하게 추진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장 실장은 “사실 제가 삼고초려를 했다. 3번 이상 (한 전 총리를) 찾아뵙고 간곡하게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행정부 2인자, 실질적 책임총리 구현 관건
 

행정부 2인자로서 책임총리제 구현도 관심거리다. 역대 정권에서도 대선 전후로 책임총리제와 대통령 권한 분산을 말하다가 제왕적 대통령으로 회귀한 전례가 많다.

한 총리는 그동안 공직에서 보여준 스타일로는 안정·관리형에 가깝다. 2007~2008년 노무현 정부 마지막 총리를 맡았을 때도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마무리와 대선 관리, 정권 인수인계 등을 안정적으로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행정부 국정운영을 주도하는 책임총리로서의 모습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한 총리는 이런 세간의 시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지난 4월 10일 새 정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8인 후보자에 대한 추천서에 자필 서명했다고 밝혔다.

헌법에 보장된 총리의 국무위원 임명 제청·해임 건의 권한을 잘 행사하려면 장관의 인사 추천 권한부터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총리가 내각 주요 구성원들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갖고 제왕적 대통령을 내부에서 견제하는 책임총리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한 총리의 국무위원 후보자 추천서 서명 문건을 언론에 공개하며 “책임총리제를 실현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한 총리도 이번 추천서 서명의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면서 “헌법에 보장된 원칙대로 장관 추천·제청권을 처음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마늘파동으로 경제수석 사퇴하기도
 

공직 생활에 고비도 있었다.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재직하던 2000년 7월에 한중 마늘 협상을 타결시켰지만 2002년 말로 끝나는 중국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은폐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경제수석으로 재직 중인 한 총리가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가 노무현 정부 출범 다음 해인 2004년 2월 국무조정실장으로 공직에 복귀했다. (Queen 5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글 오수연(자유기고가) |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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