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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스타에서 영원한 별이 된 배우 강수연의 지난 삶
지상의 스타에서 영원한 별이 된 배우 강수연의 지난 삶
  • 김공숙
  • 승인 2022.07.23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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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스타에서 영원한 별이 된 배우 강수연의 지난 삶

 


1966년 8월 18일에서 2022년 5월 7일까지. 배우 강수연이 지상에서 56년의 삶을 채 못 채우고 우리 곁을 떠났다. 3세 때 연기를 시작해 배우 인생 50여 년을 스타로 살다가, 이제 영원한 별로 대중의 마음에 새겨진 강수연의 지난 삶을 되짚어본다.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한국 최초의 월드 스타
 

세상이 빛의 속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시대, 1987년이라면 너무도 아득한 옛날 같다. 강수연은 이때 이미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갓 스물을 넘은 나이에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이다. 한국 배우가 세계적 권위의 영화제에서 주연상을 받은 것은 한국 영화 60여 년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고, 동아시아 배우로도 최초였다. 2021년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에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만, 그 시발이 35년 전 강수연의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부터였음에 주목해야 한다.

강수연이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당시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영국 배우 휴 그랜트였다. 베니스영화제는 강수연 이후 중국 배우 공리에게 여우주연상을 주었다. 당시 강수연이 얼마나 대단한 반열의 배우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21세의 한국 배우 강수연의 연기를, 콧대 높은 서양의 영화전문가들이 인정했다. 우리 언론은 강수연이 대한민국의 ‘체면’을 세워주었다고 대서특필했고, 대중에게 강수연은 한국 최초의 월드 스타로 각인되었다.
 

스스로 최상의 연기라고 만족하는 순간을 꿈꾼, 진정한 스타
 

실상 강수연은 베니스영화제 시상식에 가지 못했다. 촬영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의아하게도 작품만 출품하고 아무도 시상식에 가지 않아 여우주연상을 대신 받아 줄 사람조차 없었다. 대신 강수연은 KBS 9시 뉴스 인터뷰(1987년 9월 10일)로 소회를 대신했다.

“<씨받이>의 연기가 지금까지 한 연기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앵커의 질문에 강수연은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요. 전혀요.”라고 대답한다. 오히려 연기를 왜 저렇게 했을까 아쉽다고 하면서, “최상의 연기라고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연기를 할 때는...글쎄요. 제 목표가 거기예요!”라고 답한다.

54년을 배우로 살다 간 강수연, 그는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연기를 하고 떠났을까.

 

 

 

‘외모, 재능, 근성’ 삼박자를 모두 갖춘 완전체 배우
 

《맥스무비》는 그에 대해 “독보적인 아름다움과 타고난 연기 재능, 여기에 완벽주의에 가까운 프로 근성까지. 강수연은 배우의 3요소를 모두 갖춘 완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쓰고 있다(2016.4.12.).

강수연은 1969년 3세 때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연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양방송 전속 아역배우였다가 영화로 진출해 데뷔작 <핏줄>(1975)로 극장 관객과 만나기 시작했다. 영화 출연작은 엄청나다. <핏줄> 이후, 대표작만 보아도 <어딘가에 엄마가>(1978), <고래사냥 2>(1985), <씨받이>(1987),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 <연산군>(1987),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 <감자>(1987),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지독한 사랑>(1996),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로 이어진다.

<처녀들의 저녁식사>에서 강수연은 “언제부터 형사, 검사가 내 아랫도리 관리를 했대?” 등의 도발적 대사로 충격을 주었다. 《맥스무비》는 강수연이 가부장제에 희생된 아낙부터 독립적인 현대여성까지 한국 여성상의 극단적 스펙트럼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배우라고 평가한다.

그때는 어린이 영화가 붐이던 시절이었어요. 청소년기도 마찬가지고. 20·30대 때도 그랬고, 40대에도 계속 연기를 하고 있고요. 그리고 50·60대, 그때는 시대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까, 앞으로 최소한 40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강수연은 ‘앞으로의 40년은 준비 없이 할 순 없다’며, ‘이제는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살아야겠다’고, ‘그 점에서 앞으로의 40년이 훨씬 더 힘들고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한겨레신문, 2022.5.8.). 그러나 “연기 잘하는 할머니 여배우” 강수연의 바람은 소망으로 끝났다.
 

“겁은 나지만” 한국 영화 발전의 씨앗이고자 한 원조 월드 스타
 

강수연은 예의 1987년 베니스영화제 수상 후 인터뷰에서 “기쁘지만 굉장히 겁나요. 왜냐하면 이 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라고 했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였을까. 작품 활동은 뜸해졌어도 영화계의 대소사에 앞장서며 영화계가 풍파에 흔들릴 때 중심추 역할을 했다. 자신이 사랑한 한국 영화계를 위해, 초지일관 영화인으로서 자기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강수연은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사태로 영화제가 위기에 직면하자 2015년부터는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년여 간 활동했다. 한국 영화가 글로벌 콘텐츠가 되는데 일조한 부산영화제에서의 활동은 한국영화의 씨받이가 되겠다는 강수연이 한국의 월드 스타로서 책임을 다한, 자신과의 약속을 실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강수연은 무명 배우나 스태프 등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맏언니’ 역할도 톡톡히 했다. 영화 <베테랑>에서 황정민의 명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이라는 의미의 속어)가 없냐?”라는 말은 평소 강수연이 영화인들을 챙기며 격려하던 말을 류승완 감독이 가져다 쓴 것이라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출연료는 배우의 자존심, 최초의 억대 출연료 시대를 연 여성
 

강수연은 한국 연예계에서 최초로 억대 개런티를 받은 여성 연예인이다. 1992년 영화 <그대안의 블루> 출연 당시 2억 원을 받았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다. 2001년 드라마 <여인천하>를 통해서는 배우 최초로 회당 출연료 500만 원 시대를 열었다. 150회가 방송된 드라마였으니 어마어마한 액수다. 이 일을 계기로 고액의 출연료를 요구하는 톱배우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강수연은 ‘(월드 스타인) 자신이 출연료를 올려놔야 다른 배우들의 출연료도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했다(KBS <밤으로 가는 쇼>, 1992.11.9.). 오늘날 한국에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오고, 그 연기력이 세계적 인정을 받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는 그만큼 배우의 자존심을 존중하고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점은 일본 영화계와 확연하게 비교된다. 한국 영화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일본 영화는 이미 몰락하게 된 지 오래라는 평가가 쏟아지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영화감독과 배우에 대한 열악한 대우다. 일본에는 전업 영화배우가 없다. 출연료가 매우 적어 반드시 드라마와 광고를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러닝 개런티라는 개념이 없기에 영화가 잘 돼도 최초 계약한 출연료 외에 한 푼도 더 주지 않는다. 그러니 좋은 배우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다.

강수연은 한국 배우의 출연료를 천정부지로 올리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제작자의 어려움만 차치한다면, 결과적으로 강수연이라는 배우가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 영화, 드라마에 좋은 배우들이 나와 맹활약할 수 있게 된 셈이다.

 

 

 

K-콘텐츠 시대, 유작이 된 넷플릭스 영화 <정이>를 기다리며
 

우리 문화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정점인가 싶으면 또 다른 한국 콘텐츠가 더 우위를 점하며 나타난다. 요즘처럼 상상하지 못한 K-콘텐츠 전성시대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영화사에 일찍이 강수연과 같은 범접할 수 없는 스타가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강수연이 생전 출연한 영화는 공식적으로 1975년 <핏줄>부터 최근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인 넷플릭스 영화 <정이>까지 40여 편이다. 유작이 된 <정이>는 <부산행>, <지옥>의 연상호 감독 작품으로 SF 액션 장르다. 2013년 <주리>에 출연한 이래 9년 만의 작품에서, 강수연으로서는 처음 도전인 SF 액션 연기를 어떻게 펼쳤을지 궁금하다. 아쉽게도 강수연은 <정이>에서의 자신의 연기,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지켜보지 못하고 떠났다. 하지만 강수연을 사랑하는 이라면, 그의 유작이기에 더 진지하고 세심하게 <정이>를 기다리고 들여다볼 것 같다.
 

별보다 아름다운 영원한 별, 이제 안녕
 

쓰러진 지 3일 만에 영면에 들어 안타까움을 자아낸 배우 강수연. 잠시 슬픔을 미뤄두고 차분하게 그의 죽음을 되짚어보면, 너무도 이른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 ‘54년’을 배우로 살았기에 그 세월이 적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미나리>에 이어 <파친코>로 주가가 더 높아진 윤여정이 올해로 56년차 배우 아닌가.

강수연은, 이른 죽음이지만 그만큼 빨리 시작한 배우였기에, 화려하고 굵은, 한국영화사에 누구도 해내지 못한 굵은 획을 진하게 긋고 조금 빨리 별이 된 것 같다고, 마음을 다독여본다.

대중의 마음에 새겨진 별보다 아름다운 영원한 별, 강수연. 이제 그를 떠나보낼 시간이다. 안녕히.


글 김공숙 교수(국립안동대학교) | 사진 뉴스 1

김공숙…
국립안동대학교 한국문화산업전문대학원 융합콘텐츠학과 부교수·문화산업연구소장. 
영상콘텐츠 연구와 비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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