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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가 보여준 퍼스트레이디의 품격
미셸 오바마가 보여준 퍼스트레이디의 품격
  • 이복실
  • 승인 2022.07.23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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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는 제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한 달도 남지 않았다(퀸 3월호 기사로 대선 이전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번 선거는 다른 선거와 다른 특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바로 배우자 리스크이다. 거대 양당 후보의 배우자들이 각각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 과잉의전 의혹, 학력 부풀리기 의혹, 주가조작 의혹에 휩싸여 결국에는 국민들 앞에 나와서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발표해야만 했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해외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동안 선거에서 후보의 배우자들은 남편이나 아내의 부족한 면을 채우는 역할을 했다.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선거를 도왔지만 지금 상황은 도움은커녕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니 선거 역사의 특이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따지고 보면 배우자들의 사과 기자회견은 국민들이 요구한 것이다. 후보들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니 어쩔 수 없이 직접 나와 사과하고 해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근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가족 검증이 당연하다는 응답은 68%, 부적절하다는 응답은 28%로 나타났다.

퍼스트레이디 후보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사과문을 읽는 모습을 보니 미국의 전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가 떠오른다. 처음에는 미셸도 언론이나 대중에게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언론에서는 성난 흑인여자라고 깎아 내렸다. 그녀는 자기의 문제가 성난(angry)인지, 흑인인지, 여성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5년 후 그녀에 대한 평가는 남편을 능가했다. 오바마 대통령 퇴임 전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58% 호감도로 나타났지만, 그녀는 남편 오바마보다 높은 68%의 호감도를 받으며 미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퍼스트레이디 중 한 명으로 기록됐다. 또한, 2010년에는 독일 메르켈 총리를 제치고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올랐다.

필자도 미셀의 언론 인터뷰를 보고 감탄한 기억이 난다. 2008년 미국 제 44차 대선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목된 사라 페일린 전 알라스카 주지사는 혜성처럼 등장하여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곧 외교안보에 대한 동문서답 답변과 과도한 의상비 지출이 도마에 올랐다. 선거비용에서 지출된 의상비용이 무려 15만 불이나 되었다. 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미셸은 이렇게 말했다. “사라도 모처럼 주목을 받으니 예쁘게 보이고 싶지 않겠어요?” 상대를 공격하기에 얼마나 좋은 호재인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점잖게 한 마디 하는 답변에서 품격과 지성이 뚝뚝 흘렀다.

그녀는 최근 2018년 자전적 에세이 「비커밍(Becoming)」을 발간하였다. 비커밍이라는 말은 무언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에서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퍼스트레이디는 직업이 아니고, 정부의 공식 직함도 아니다. 대통령에게 딸린 사이드카 같은 자리일 뿐이다.” 그녀는 퍼스트레이디 시절, 소아비만 같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를 상기시키거나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주려고 노력했다. 연설에서도 진정성을 담으니 메시지는 울림을 주고 빛났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쏟아낸 막말에 우아하지만 강하게 대처한 사람도 그녀였다.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란 말은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미셸 오바마의 리더십과 지지도에 비해 우리가 지금 처한 현실은 너무 비교된다. 사석에서는 김혜경씨나 김건희씨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의혹을 비교하는 이야기들도 무성하다. 김혜경씨가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혹의 상황들이 도지사의 사모님이었을 때 발생한 일이고 문제가 된 법인카드는 공금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의혹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다른 도지사 부인들도 다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며 별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김건희씨가 더 문제라는 사람들은 ‘학력 부풀리기로 다른 선의의 피해자가 생겼다’라고 비판하고, 의혹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후보와 관련 없는 일이다’라고 별 문제가 안 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판단은 국민들이 직접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서 공정이라는 두 글자는 엄청난 무게로 다가온다. 최순실 국정농단사건도 겪었고 과거 대통령의 가족이 호가호위하다가 구속되어 교도소에 갔던 사례들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고위 공직자의 가족들이 권한과 지위에 상응하는 법적, 도덕적인 의무를 실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다시는 국민 앞에 나와 사과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제2의 미셸 오바마 같은 선한 영향력을 주는 퍼스트레이디가 우리나라에서도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퀸 3월호 게재 기사)


글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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