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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과 안전문화
중대재해처벌법과 안전문화
  • 전현정
  • 승인 2022.08.0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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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것이 법이다. 요즈음 언론에 자주 나오는 중요한 법률은 이름부터 무서운 느낌이 드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2022년 1월 27일 시행)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라 불리는 이 법의 제정에 많은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법률 시행을 앞두고는 처벌이 두려워 대표이사직을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 법이 시행되던 첫날 처벌대상 1호를 피하고자 10대 건설사 가운데 절반이 현장작업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1호 적용 기업이 어떻게 처벌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제 이 법이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책을 세워야만 기업경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활동에서 중대한 인명 피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중대한 재해가 생기면 현장 책임자뿐 아니라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한다. 법정형도 매우 무겁고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징역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다만 상시 근로자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고,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장이나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건설공사에 대해서는 2024. 1. 27.부터 시행이 된다.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눠진다. ‘중대산업재해’란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등을 말한다. ‘중대시민재해’란 특정 원료나 제조물, 공중이용시설이나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으로 발생한 재해로 사망자 등이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세월호 사건과 같은 경우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업경영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를 배치하고 중대산업재해 등에 대비한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재해가 발생한 경우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도급이나 용역을 맡긴 경우에도 사업장과 이용자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처럼 대표이사 같은 경영책임자가 안전 의무를 다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받지 않는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선진국 중에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지난해 무려 82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사망사고의 절반이 건설업종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막을 수 있는 기본적인 사고도 많은 편이다. 우리 사회는 ‘빨리빨리’ 문화라고 할 만큼 속도와 경쟁을 중시한다. 안전조치를 철저히 하기 보다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것을 우선시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 듀폰은 안전 분야에서 글로벌 탑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안전성을 확보하면서도 일류기업이 되었을지 그 비결이 궁금하였다. 하나는 법규에서 정하고 있는 것 그 이상을 지키는 문화이고, 다른 하나는 종업원들 역시 안전하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 문화라고 한다. 듀폰은 1993년 조직을 크게 개편하면서 안전 분야에서 안정된 성과를 유지하도록 꾸준히 개선 방안을 찾아 회장에게 직접 보고하는 디스커버리팀(Discovery Team)을 구성하였다. 인간행동의 특성을 안전 분야에 접목시킨 듀폰의 ‘브래들리 곡선모델’은 많은 회사의 안전교육에 활용되었다. 결국 안전도 오랜 전통과 문화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없이는 쉽게 확보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경영에서는 비용이 얼마나 들고 이익이 얼마나 나오는지를 늘 계산한다. 법에서 어느 쪽 이익이 크고 어느 쪽 손실이 적은지 저울질하듯이 비교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을 이익형량이라고 한다. 경영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비용과 손실을 계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현장에서 안전성을 확보하면서도 비용과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것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과 같다. 그런데 안전관리를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비용이 클수록 안전조치를 주저하게 된다. 그러나 중대한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은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을 무조건 비용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새로운 법이 생기면 불편함이 생기기 마련이다. 억울한 희생양을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고 법을 시행하면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법의 처벌대상이 생기면, 어떤 사고가 어떤 경위로 발생하였는지, 반복해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는지, 기업이 안전체계를 구축하고 꾸준한 노력을 해왔는지 등을 살펴서 적절하게 처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이 법의 시행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안전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의 삶에서 건강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근로환경에서는 근로자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전성 확보는 안전성 확보로 인한 이익이 있다. 사원들의 사기가 상승하고 창의성이 배가될 수 있다. 다른 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기초적인 안전사고에 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업무 매뉴얼을 재점검해서 효율적이고 안전한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무조건 좋은 법도 무조건 나쁜 법도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우리 사회와 기업이 슬기롭게 대처하면 기업문화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글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고문변호사다. 한국여성
변호사회 부회장,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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