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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민감성의 시대
차별 민감성의 시대
  • 전현정
  • 승인 2022.10.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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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법

차별 민감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에는 여성이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문제되었다면, 이제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도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우대나 혜택에 대해서도 정당한 것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여성전용 도서관에 대해 합리적 이유가 없다면 성별에 따른 차별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나왔다. 충북 제천에 있는 ‘제천여성도서관’이 문제되었다. 이 도서관은 김학임 할머니가 기증한 땅에 1994년에 세워진 것으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보도되면서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김학임 할머니는 평생 삯바느질로 모은 재산을 기증하면서 ‘여성으로 살면서 느낀 교육 기회의 차별을 해소해 달라’는 뜻을 전했고, 이곳은 여성들의 자기계발과 독서를 위한 문화 공간이 되었다.

2011년에도 이 도서관에 대해‘시립도서관이 여성전용으로 운영되면서 남성의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진정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2년 여성전용 도서관으로 운영하며 남성 출입을 금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하였다. 여성을 주 이용대상으로 하는 도서관을 운영하려는 경우에도 여성 관련 자료와 교육 프로그램으로 서비스를 특화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굳이 남성의 이용 자체를 배제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 후 도서관은 1층을 남녀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개선하였다.

2021년에도 ‘공공도서관이 여성전용으로 이용되는 것은 차별’이라는 진정이 제기되었다. 도서관 측은 ‘여성전용 도서관 운영은 기증자 의사를 따르는 것으로 남녀 차별 문제와 무관하다’고 해명하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제천여성도서관이 행정력과 공적 자원으로 운영되는 공공시설인데도 합리적 이유 없이 남성의 이용을 배제한다’며 ‘기증자의 의사를 존중하더라도 그 의사는 참고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이 시설 운영을 위해 연간 약 9,600만원의 예산과 5명의 인력이 투입된다고 한다. 제천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에 따라 지난해 7월 1일부터 남성에게도 2층 자료열람실 출입을 허용하였다. 이에 대해 지역주민 등이 반발하고 있다.

‘여성 도서관’으로 유명한 것은 영국 런던정경대학에 있는 여성 도서관(The Women's Library)이다. 이 도서관은 여성 관련 희귀본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의 시작부터 지난 500년 동안 여성의 권리와 여성의 평등을 위한 다양한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이용자를 성별에 따라 제한하지는 않는다.

이와 달리 남성을 배제한 여성전용시설은 합리적 이유가 없다면 성별에 따른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 순수하게 개인이 만들거나 운영하는 시설이 아니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원이 들어간 공공시설이라면 남성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적 요소가 없는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누군가는 여성을 위한 전용도서관 하나 만든 게 무슨 대수일까, 그저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면 그것이 여성전용이라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될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성들에게 편하게 책 읽는 공간을 만들어주려는 아름다운 생각으로 재산을 기증하여 도서관이 세워졌는데, 그런 아름다운 생각조차도 보듬어 주지 못하는 사회라면 지나치게 각박하지 않을까? 여성전용 도서관이 없어도 여성도 남성만큼 편하게 책을 볼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여성전용 공간이나 시설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닌데도 여성전용도서관의 차별적 요소를 문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성별에 따른 차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선언하고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평등 원칙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이다. 이것은 국가에 대하여 합리적 이유 없이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하지 말 것과 평등한 대우를 요구할 수 있는 기본권이다.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면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사회가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과거에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문제가 중대한 차별이라고 비판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무엇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차이이고 무엇이 근거 없는 차별인지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사람들이 작은 차별에도 참지 못하는 차별 민감성의 시대가 되고 있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해결하는 데서 나아가 성별에 따른 구분이 차별은 아닌지, 그것이 차별이라면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이 단계를 지나면 여기에서 저기로, 그곳에서 이곳으로 넘나드는 자유로운 공간이 열릴까? 여성전용 도서관이 인권 침해라는 뉴스는 깊고 넓은 파문을 던져준다.

글 전현정 변호사 (법무법인 케이씨엘)
 

 

전현정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3년간 판사로 일하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2016년 법원을 떠났다. 현재는 법무법인 KCL 고문변호사다. 한국여성
변호사회 부회장, 법제처 법령해석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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