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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곡을 찌르다 - 한국 사회의 토익 숭배를 비꼼 작가 심재천의 통쾌한 블랙코미디
정곡을 찌르다 - 한국 사회의 토익 숭배를 비꼼 작가 심재천의 통쾌한 블랙코미디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2.03.23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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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 점수 000점 이상’, 웬만한 중견기업 채용공고 항목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다. 글로벌 인재를 찾고 있다는 기업에서 제시하는 기준이며, 취업난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취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로서는 반드시 획득해야 할 점수다. 한때는 토익 고득점자가 취업에 유리한 적도 있었지만 어느새 만점자가 넘쳐나는 덕분에(?) 상황은 예전 같지 않다. 문제는 어찌됐던 토익 점수를 원하는 기업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토익 학원의 장사는 잘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작가 심재천은 “토익 만점이라고 자랑하는 소리는 ‘나 눈 두 개’라고 자랑하는 것과 같다”고 풀어낸다. 작가의 장편 데뷔작이자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인 〈나의 토익만점 수기〉는 이러한 상황에 처한 남자가 어떻게 토익만점을 완성하는지 그 과정을 극단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은 이 시대 자화상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것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작가는 관찰자이자 행위자인 주인공 역시도 비정상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보여주며 토익만점이라는 목표 아래 벌어지는 블랙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주인공이 토익만점을 얻기 위해 호주로 떠나고 마리화나를 재배하는 농장에 ‘인질’이라는 명목으로 기거하며 영어를 습득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 자체가 작가의 비판이며 세상에 대한 냉소인 셈이다.
“소설은 비판이에요. 영어열풍이라든가 영어에 종속된 한국인의 모습…. 그런 것들이 저는 20대부터 굉장히 싫었어요. ‘왜 나한테 이런 걸 강요하나’ 싶었지만 안 따라갈 수 없잖아요. 물론 안 따라갈 수도 있었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으니, 사람들이 다 하는 걸 안하면 뒤처진다는 공포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거죠. 그런 모순된 마음으로 살아오다가 소설로 한 번 형상화 해보자 결심한 거예요.”
작품에 나오는 대상은 하나같이 상식의 기준에서 봤을 때 비정상적인 인물이다. 주인공은 땅속에 살며 ‘아폴로 13호’를 신적인 대상으로 숭배하는 여성과 바나나 농장으로 위장한 마리화나 농장 주인과의 동거, 토익 시험에 목소리 출연하는 성우 부부와의 만남 등을 통해 끝내 영어를 마스터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1년 만에 귀국해 토익만점을 받게 된다. 현실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인물들은 토익점수에 매달린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마리화나 재배자한테 기어들어가는 비굴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비정상적인 영어점수 획득을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한편으로 비정상적인 것들이 사실 그 기준에 따라서 얼마든지 정상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캐릭터를 통해 알려주고 싶기도 했고요.  물론 영어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 맞아요(웃음). 저도 아직까지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으니까요.”

우여곡절 인생 스토리
작가 심재천 역시 한때는 토익시험을 열심히 준비하던 취업준비생이었다. 좋은 점수를 받고 싶었고 좋은 회사에 취직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 두 개 달린 것과 같다’는 토익만점은 끝내 도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좋은 회사에 취직도 했다. 그런데 3개월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다분히 충동적인 선택이었지만 영어로 직접 외국인과 대화해 보고 싶었고 그 사람들의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제가 직접 하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체질이거든요. 목표는 그것 외에는 뚜렷하지 않았어요. 책의 주인공처럼 토익만점 같은 목표는 더더욱 아니었고요. 단지 돈 없이 살아남아 보겠다는 것이었죠. 기고만장했던 셈이에요. 저 스스로를 불사신처럼 생각했으니까요(웃음).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내 능력을 테스트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한 3일째 돼서 결국은 울어버렸어요(웃음). 말도 안통하고 아무것도 모르겠고…. 호주 사람들 덩치도 다들 커서 정말 무서웠죠.”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워킹 비자로 간 덕분에 일은 할 수 있었지만, 당시의 영어 실력으로 사무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력서 50장을 다 돌렸지만 결국 선택은 농장이었다.
“영어가 안 되니 역시 써주지를 않더라고요. 결국 돈이 다 떨어져서 한 달 만에 농장으로 갔죠. 망고, 수박, 호박, 멜론, 바나나, 토마토… 안 따본 것이 없어요. 물론 외국인에 대한 공포라든가 서양 문물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졌죠. 그런 것들은 역시 직접 겪어보면 다 없어지더라고요. 하지만 언어로부터 자유로워지지는 못했어요. 절대 안 되더군요. 그냥 포기하게 됐어요. 그저 내 의사소통만 전하면 되는구나 하고 살았죠.”
한국에 돌아와서 그는 모 일간지의 문화부 기자로서 삶을 시작했다. 그렇게   4년, 한동안은 얌전히(?)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조직이라는 곳에 속해 누구의 지시를 받는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 설령 끝까지 기자로 살다가 편집국장이 된 들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았다.
“기자 일 자체는 좋았어요. 하고 싶었고요. 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고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조리한 것들을 글로서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하지만 결국 누구에게 지시를 받으며 일하기가 싫었어요. 회사가 나를 존중해주거나 보수가 좋은 것도 아니었고요. 기자생활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별로 없었고 생각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죠. 하지만 글 쓰는 것은 좋았어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는데 그게 마지노선이었던 것 같아요. 33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할 수가 없었죠. 정말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였어요.”
결국 작가로서의 삶은 그렇게 시작이 됐다. 절박함과 어쩔 수 없는 막막함 한편으로 이유 모를 자신감도 있었다. 2년 반을 단편소설을 써서 응모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처음 기자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의 자신감도 점차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주변의 시선도 점점 신경이 쓰였다.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아 있었을 뿐인데 다들 그것을 낙오로 간주했다”며 등단하기까지 3년의 무직 생활을 털어놨다.
“그 기간 동안 저는 칠레 광부였어요. 매몰된 상태에서 옆에 아무도 없었죠. 그 점이 좀 혹독했어요. 처음에는 1년, 길어야 2년 안에 등단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통장잔고도 그 정도는 충분했죠. 그런데 2년이 지나고 나니 긴장이 되더군요. 너무 깜깜하고 어떻게 풀릴지 가늠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 단편에서 장편으로 첫 작품을 쓴 게 당선 된 거예요. 궁즉통(窮則通)이라더니….”
소설의 스토리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우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물론 그 안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상당부분 포함돼 있겠지만, 알게 모르게 자전적 경험도 녹아 있게 마련이다. 비정상적인 토익 지상주의 사회에서 자신만의 정상적인 길을 찾던 작가의 고민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갖는다.
“소설의 품격을 확 떨어뜨린 그런 소설을 썼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래서 사람들이 ‘나도 쓸 수 있겠다’고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제 작품이 사람들에게 소설을 쓰게끔 유도하는 매개체가 됐으면 해요. 왜냐하면 콘텐츠 생산자로서 드라마나 영화의 싸구려 감동에 속지 않게 되니까요. 세상을 평가하는 눈이 생기는 거죠. 토익이나 취직, 좋은 집만을 바라본다면 세상을 제대로 못보고 지나칠 수 있어요.”

 

 


“언어의 진짜
기능은 그 나라 사람과의 의사소통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출세의 도구, 평가의 도구가 되고 있어요. 저는 그게 싫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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