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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모두 행복한 나라
남녀 모두 행복한 나라
  • 이복실
  • 승인 2022.10.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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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 젠더갈등이 심해지다 보니 집안에서 웃지 못 할 서글픈 해프닝도 생긴다. 친구의 이야기이다. “평소에는 화목하고 우애가 더할 나위 없이 깊은 오누이지만 젠더이야기만 나오면 싸늘해지고 격론이 벌어져.”라고 친구가 속상해한다. 딸들과 아들의 주장이 다 일리가 있으니 누구의 편을 들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녀의 딸들은 대학시절 내내 취업을 위해 각종 자격증을 따랴 도서관에서 공부하랴 그야말로 동분서주했다. 노력한 결과 현재의 직장에 들어갔지만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경험했다.

먼 나라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나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딸들은 저절로 젠더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설마 요즘 어떤 세상인데 채용에서 차별이 있어?”라고 내가 반문했더니 친구는 “네가 몰라서 그래. 아직도 남아있어.”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친구는 아들의 처지도 짠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들은 이렇게 항변했다. “누나들이 나의 고충을 알아? 남자들은 편한 줄 알아?” 20대 젊은 청춘들은 신체검사로 나의 몸과 건강상태에 등급이 매겨지는 것도 힘들다. “누나들은 공부할 동안 나는 길거리에서 데모를 막아야 하는 상황이야. 남자들도 힘들어.”라고 다툰다고 했다. 친구는 “나라에서 정책을 제대로 못해서 가정 내 이런 쓸데없는 논쟁이 생겼다며 앞으로 정부가 잘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면 좋겠어.”라고 한숨을 쉬었다.

지금의 젠더논쟁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외부 행사에서 캐서린 레이퍼 주한 호주대사를 만났는데 그녀의 첫 질문은 한국의 여혐 남혐 등 젠더논쟁의 원인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외국인의 눈에도 낯설어 보였나보다. 취업난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 급속한 여권신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사회의 복합적인 문제라고 답했지만 옆에서 부추기는 사람들의 탓도 있다. 리더라면 리더답게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데 지금 사회 전면에 나서고 있는 리더들 중 일부는 리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여권신장이 많이 되었다고들 하지만 아직 여성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매년 발표하고 있는 성격치 지수는 2016년 기준 조사대상 144개 국 중 116위이고, 남녀임금격차는 약 36%로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양성평등지수가 이렇게 낮은 이유는 의사결정직에 있는 여성들의 비율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대표성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이런 말을 한다. “여성들이 실력을 키우면 되잖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에게는 열심히 일을 하고 싶지만, 육아와 가사가 전적으로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는 현실에서 경력단절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하여 묻고 싶어진다. 여성가족부 통계에 의하면 2020년 기준 15-54세 기혼여성(832.3만명) 중 경력단절 여성은 144.8만명으로 나타났다. 경력단절여성의 어려움은 단순히 여성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경제와 가족의 빈곤문제와도 닿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많다.

고도의 취업난과 미친 아파트가격 상승 등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남녀를 포함한 청년세대를 힘들게 하는 주요 원인이다. 청년들의 취업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대기업에서 청년일자리 확대계획을 연이어 발표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그 이전에 더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친구의 말처럼 정부가 정책을 잘해서 소모적인 젠더논쟁은 이제 그만하고, 남녀가 함께 가는 사회를 위해 온 힘을 다 모으기를 기원해본다. 2022 새해에는 남녀 모두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Queen 2022.1월호)


글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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