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23:55 (목)
 실시간뉴스
여성시대를 말하다. 박근혜 후보가 꿈꾸는 대한민국
여성시대를 말하다. 박근혜 후보가 꿈꾸는 대한민국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2.09.07 14: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동안 극한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온 정치의 틀을 생산적인 정치로 바꿔나가겠습니다. 새로운 정치풍토를 기반으로 서민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정치를 하겠습니다”

지난 8월 20일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하며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를 시작했다. 그에 반해 박 후보의 호적수로 꼽히는 안철수 원장은 아직 대선 출마 선언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다. 박 후보는 여성정책 발표문을 통해 여성이 대한민국의 신성장동력임을 강조하며 여성의 행복이 국민 행복의 시작임을 강조하고 있다. 대립과 갈등의 정치적인 틀을 깨고 새로운 균형과 발전을 이뤄가겠다는 박 후보의 포부를 그간의 동행취재와 연설문 그리고 관련 서적 등을 통해 정리했다.

여성이 희망이다

박근혜 후보가 내세우는 여성적 리더십의 근간이 되는 것은 청렴성과 능력주의다. 박 후보는 우리 앞에 펼쳐진 정보화 사회가 부드럽고 섬세한 감성과 창의성, 합리적인 설득과 소통에 기초한 여성적 사고가 필요한 사회임을 강조한다. 물론 여성시대라는 말이 남성들을 배제한 채 여성들만이 우위를 점하는 사회를 뜻하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불평등의 굴레 속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찾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저는 지금까지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수많은 여성을 만나 왔어요. 하지만 그분들 앞에는 많은 금지선이 놓여 있었죠. 육아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떠넘겨버리는 사회, 승진을 막은 보이지 않는 벽 등이 장애로 작용했어요. 하지만 그분들은 사회의 금지선을 씩씩하게 넘어왔고 저는 그분들이 금지선을 넘으면서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하셨는지 잘 알고 있어요. 저는 그 수고와 노력이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행복하게 해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금지선이 없어진다면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어 서로의 짐을 덜어줄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스트레스와 격무 속에서도 가족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남성들은 그 짐을 여성에게 나누어주어 무거운 책임을 좀 가볍게 만들어도 될 거예요.”
21세기에는 유독 여성적 리더십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세계를 이끌고 있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선진국 최초의 여성 총리인 동독 출신의 앙겔라 마르켈,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 미첼 바첼렛,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 메리 로빈슨,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타르야 할로넨, G20 국가 중 가장 연봉을 많이 받는 호주의 여성 총리 줄리아 길러드 등 이미 여성들이 세계를 주름 잡고 있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고쳐야 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아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그중 한 방법으로 저는 우리 여성들이 여러 각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당당한 주체로 성장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정치 분야를 예로 들면 많은 여성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단지 여성 정치인의 수만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정치의 내용과 질을 바꾸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을 정치권에 불어넣게 될 거예요.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극한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온 정치의 틀을 생산적인 정치로 바꾸고, 새로운 정치풍토를 조성하도록 노력한다면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해요. 세계은행에서 지난 2년 동안 연구해서 발표한 연구보고서에도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자료가 게재되었어요. 그 보고서의 결론은 ‘여성 공직자가 많을수록 부패가 줄어든다’였어요.”

나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

나이가 들수록 박 후보는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닮는 듯하다. 단아한 모습으로 조용히 박정희 대통령을 내조했던 육영수 여사는 봉사와 희생의 상징으로 당대에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박 후보는 자신의 인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를 꼽는다. 박 후보는 어려서부터 육영수 여사로부터 근검절약과 절제의 생활을 익혔다. 그리고 청년기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퍼스트레이디 역할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따르며 애국심과 소신 그리고 배짱을 배웠다 한다.
“어머니와 제가 많이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어머니는 소외된 분들, 고통받는 분들에 대해 진정 가슴 아파하셨고, 잘 사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셨으며 저에게도 말씀과 행동으로 그런 가르침을 주셨어요. 경제가 성장하고 외형적으로 발전하면 할수록 항상 약자 편에서 생각했던 어머니의 가르침이 제에게는 더 중요하고 절실하게 다가와요. 저에게 남은 것은 효도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가르침을 잘 실천하는 거예요.”
박 후보의 삶은 어머니의 삶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육영수 여사의 역할을 이어받아야 했던 박 후보의 나이는 고작 22살이었다. 육영수 여사는 작은 규모부터 차근차근 노하우를 익히면서 봉사에 나섰지만, 박 후보는 하루아침에 큰일을 떠맡았다. 박 후보는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했던 것처럼, 청와대에 들어온 수백 건의 민원을 점검하고 담당부서에서 잘 처리하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그리고 낙후된 환경, 영세한 기업, 어렵고 소외된 계층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펼쳤다.
“어린 나이였지만, 어머니의 유업을 잇고 혼자되신 아버지를 도와드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퍼스트레이디라는 중대한 자리를 맡았어요. 결코 쉬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빈자리를 제가 메워야 한다는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가 든든한 기둥이 되었어요. 몸은 비록 제 곁에 있지 않지만, 어머니는 제가 어려운 결심을 해야 할 때마다 항상 저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주셨어요.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이럴 때 어머니는 어떻게 하셨을까’라고 생각하고 다짐하며 새로운 제 인생을 받아들였어요. 어머니가 나병 환자들과 악수를 하는 모습, 국민들이 보낸 편지 한 통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모습은 제 정치적 소신의 본보기가 되었어요.”
박 후보는 1979년 10월 26일에 대통령인 아버지마저 허망하게 잃고 오랜 침묵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18년간 칩거한 박 후보는 IMF가 터진 1997년 45세의 나이로 한나라당에 입당하며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8년에 대구 달성군 재보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슬픔과 절망의 시간이 가져다준 교훈이었을까. 박 후보는 ‘얼음공주’라는 별칭을 얻으며 흑색선전이 나무하는 정치판에서 극한의 감정통제를 보여준다.
“청와대를 나온 저는 오랫동안 드리웠던 마음의 그늘에서 벗어나 모처럼 평화를 만끽하며 살 수 있었어요. 그러나 IMF 이후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나 혼자만 편하게 산다면 훗날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 죽어도 부모님을 떳떳하게 뵐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10년 뒤 바로 오늘을 떠올리며 ‘내 한 몸의 안녕을 위해 주어진 소임을 외면했다’는 자책이 들 것 같았죠. 그래서 저는 ‘정치인 박근혜’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어요.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남은 생을 모두 바치겠다는 각오를 다졌어요. 넘어야 할 산이 아무리 험난하고 가파르다 할지라도 쉽게 주저앉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정치에 입문했어요.”

내 생애 마지막 바람

정치인의 자녀로서 정치에 의해 엄청난 고통과 좌절을 겪었지만, 스스로 정치의 사역을 짊어진 박근혜 후보. 박 후보는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를 위해서 사심을 갖거나 내 주위의 이익을 도모한다면 그런 정치는 이미 존재 가치가 없어요. 정치는 나를 버려야 하는 것이며, 그동안 제 정치 철학에 박근혜는 없었어요. 정치란 잠시 국민의 위임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