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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을 이정표 삼아 인생길을 다시 걷다. 첫 소설 발표한 ‘25년차 중견 시인’ 원재훈
아버지의 죽음을 이정표 삼아 인생길을 다시 걷다. 첫 소설 발표한 ‘25년차 중견 시인’ 원재훈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3.05.2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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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변곡점이 된다. 누군가는 슬픔에 휩싸여 절망하고 다른 누군가는 실감이 나지 않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그러나 이내 꿈틀거리는 생의 욕구를 발견하며 자기 앞에 놓인 인생길을 걷기 위해 또 다시 채비를 갖춘다. 원재훈 시인은 지난 2009년 아버지를 하늘로 떠나보냈다. 당시 그는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한 아버지의 다른 흔적을 발견했다. 바로 그의 아버지가 한 평생 몸속에 간직하고 살았던 7개의 쇠막대였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인민군과 교전 중에 다리 골절을 당했고, 그것을 잇기 위해 7개의 의료용 쇠막대를 노새의 편자처럼 달고 살아야 했다. 그는 책 서문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심경을 시적으로 묘사했다.
“아버지의 몸을 화장한 허연 자리에 인체의 골격과 함께 쇠막대기가 일곱 개 나왔다. 다리 뼈 근처에 쇠막대가 타지도 않고 있었다.
(중략) 나는 그것을 말굽에 박아 넣은 편자로 보았다. 사시는 동안 참 무거운 것을 몸속에 지니고도 계셨습니다…. (중략) 몸이 더 이상 뜨겁지도 않은 불구덩이에 들어가 두어 시간이 지나자 인생은 쇠막대만 남기고 더 이상 태울 것도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사라진 자리에서 아버지를 보았다. 저 무거운 걸 몸에 지니고 살아온 사람, 그 휘어진 등에 업혀 있는 우리 가족의 모습. 한 사내가 걸어온 길은 늙은 어머니 손금처럼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있었다.”
- 원재훈의 <망치>의 서문 中
그 역시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생의 변곡점을 맞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버지가 남긴 쇠막대를 통해 노래를 불러야 할 시인이 이야기를 만드는 소설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계산된 행동은 아니었다고 했다. 미지의 힘에 이끌려 아버지의 죽음을 모티브로 한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고, 당초 원고지 400매 정도 분량으로 이야기를 끝맺으려 했지만 자연스레 1부와 2부, 3부, 그리고 에필로그까지 연결이 되어 ‘아버지를 위한 레퀴엠’이라는 부제를 단 <망치>가 탄생한 것이다.

스러진 아버지의 일생에서 인간의 숙명을 꺼내들다
원재훈의 첫 장편소설 <망치>는 제목만 보면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없다. 망치는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을 상징한다. 즉 단단한 쇠막대를 담금질할 때 대장장이의 망치가 필요하듯,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을 이뤄내기 위해 고난과 시련의 과정은 숙명과 같다는 것이다. 그는 “쇠막대를 강하게 만드는 망치와 같이 인생의 아픔과 슬픔을 이겨내게 만드는 운명의 망치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이라고 표현했다.
“유아기의 아기들도 걸음마를 막 시작할 때 많이 넘어져야 하잖아요. 운명이 우리의 인생을 망치질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죠. 이렇듯 나이와 관계없이 망치는 누구나 가지고 있어요. 다만 안 보일 따름이죠. 저도 그 인생의 망치를 50대가 넘어서야 봤고 그래서 제목을 ‘망치’라고 정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7개의 쇠막대가 잉태한 소설이지만 남자만을 위한 소설은 아니다. 한 남자의 굴곡진 인생이 서사 구조로 얽혔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한 남자의 운명에는 한 여자의 운명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그는 괴테의 말을 빌려 “여자 없이 어떻게 남자를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남자를 위한 소설이라는 평가에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독거노인으로 외롭게 죽어간 한 남자의 운명이 소설 속에 전개되는데 한 남자의 운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여자의 인생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여자 없는 남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죠.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예요. 때문에 이 소설이 남자를 위한 소설이라고 한다면 저는 천만의 말씀이라고 답하고 싶어요.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살아온 한 남성의 배경에는 다 여자가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여자를 위한 소설도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망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부분들이 적지 않다. 소설을 쓴 배경에 개인적인 아픔이 서려 있는 점도 그러하지만, 한 평론가의 말처럼 무엇보다 인생의 경험을 모티브로 ‘인생파’ 소설을 완성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기존의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범위 안에서 자신의 색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의 이야기 표현 방식은 소설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통로’를 제공한다.
“책에서 아내가 사업으로 성공을 거두자 주인공인 상원이 출가를 결심하는데 이것은 석가모니 모티브가 숨겨져 있어요. 실제로 붓다가 가장 화려한 시절에 출가했거든요. 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아내, 귀여운 자식도 있고 경제적인 안정도 갖춰진 나름대로 완벽한 세상이 꾸려졌을 때 속세를 버리고 출가한 게 부처예요. 저는 그런 출가의 의미를 부각시키면서 이야기에 설득력을 얻기 위해 붓다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죠.”
그는 이번 책에서 인간 내면의 고독을 상징하는 ‘골방’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역사상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역사를 통틀어 가장 고독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그의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그는 암울한 비극 소설처럼 염세주의적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았다. 결국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골방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독자들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도록 유도했다.
“<망치>에는 지금의 상황처럼 물질적 풍요시대에서 골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독거노인이 되어 자식들과 단절된 채 골방에 갇혀 죽어가는 아버지, 출가해서 완전한 골방인 선방에 있는 주인공 상원, 평생 외롭게 살아야 했던 이복동생 상민,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엄마도 골방을 가지고 있죠.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누구나 자신만의 골방이 있을 거예요. 세계를 호령하는 천하의 싸이도 말춤을 추고 나면 지쳐 쓰러진 나귀 같은 골방이 있을 거라고 봐요. 저는 그것이 문학의 보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고 감동 혹은 힐링이 되었다면 바로 자신 안에 있는 골방을 본 겁니다. 독자들이 제 책을 보고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고, 나아가 내면의 상처를 치유했으면 좋겠어요. 더 욕심을 부리자면 힐링에 머물지 말고 인생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5년차 시인, 시와 잠시 이별을 고하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시와 소설을 탐독한 ‘문학소년’이었다. 학창시절 문학을 향한 남다른 애정은 그를 운명적으로 시인으로 이끌었다. 대학교에 입학해 수십여 차례 소설을 써 신춘문예에 작품을 출품했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소설을 포기하고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1988년 시 ‘공룡시대’로 등단에 성공할 수 있었다.
“사실은 대학교에서 소설을 많이 썼어요. 20여 편 정도 작품을 냈는데 모든 신춘문예에서 다 떨어져서 스스로 소설가로는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포기해 버렸어요.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계속 쓰고 도전해야 했는데 아쉬움도 남죠. 현재 신춘문예에 도전 중인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여러 작품을 여기저기 출품하기보다 한 편을 선택해서 한 우물만 파야 돼요. 제가 신춘문예 심사를 해봐서 아는데, 소설 같은 경우 끊임없는 퇴고의 과정을 거쳐서 완벽한 원고를 만들어내야 신춘문예에 붙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죠.”
그는 시인으로 25년을 살아왔다. 안도현 시인 등 친분이 두터운 지인들이 문학인으로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통해 그 스스로 오랜 기간 시인으로서 살 수 있는 동기를 부여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현실의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고통은 항상 그를 힘들게 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시인으로 살기 너무 힘들었어요. 시인이면서 보통 사람들의 행복을 다 누리고 싶어 했기 때문이죠. 보통 사람들처럼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서 가정을 책임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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