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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아이들의 손을 잡아끄는 따뜻한 카리스마 <학교의 눈물> 천종호 부장판사의 희망 법정
벼랑 끝 아이들의 손을 잡아끄는 따뜻한 카리스마 <학교의 눈물> 천종호 부장판사의 희망 법정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3.06.18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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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 중 하나라도
더 손을 잡아주고 싶어요. 인생에 너무 많은 돌부리를 만들기 전에요”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닙니다. 비행 내용의 참담함에만 분노하고 비행소년들을 비난하기 전에 왜 어린 소년들이 비행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우리 사회가 어떻게 그들을 내몰았는지 반드시 되물어야 합니다.”
그의 법정에는 언제나 판결을 기다리는 소년들이 서 있다. 하지만 그의 판결은 소년들이 아닌 사회를 향한 판결이고, 세상을 향한 분노다. 부장판사인 그가 편한 길 마다하고, 모두들 두 손 두발 다 들고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든다는 소년부에 지난 4년간 열성을 보인 이유는 단 한 가지, 세상에 방치된 아이들의 손을 하나라도 더 잡아주기 위함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240초
법정에 들어서면 호통소리가 먼저 들린다. 잘못한 아이들을 호되게 꾸짖는 판사의 모습이 낯설다. 가족관계 회복을 위해 부모와 자녀에게 서로 ‘사랑합니다’를 외치게 하고, 유행가 가사를 개사해 부모님을 향해 노래를 부르게 한다. 절절한 시를 읽게 해 법정을 눈물바다로 만들기도 하는 남다른 재판으로 주목받고 있는 천 판사는 패기 넘치는 신입 판사가 아닌 베테랑 부장판사다. 그런 그가 편한 길을 두고 자갈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교의 눈물>에 소개된 이후 어떻게 지내시나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부산, 경남에는 <학교의 눈물>이 방송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남들은 방송 출연하면 전화기에 불난다는데 그런 것도 없었어요. 저는 애시당초 보지도 않았고요. 안 그래도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는 요즘인데 혹시나 법정에서 호통 치는 장면이 나가서 쫓겨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볼 수가 있어야지요(웃음). 사설이 길었고요. 방송 이후 소년재판과 소년들의 모습에 귀 기울여 주시니 감사드리죠.

처음에는 <학교의 눈물>에 출연하지 않으려 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보다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분들이 계세요. 저는 아이들과 그분들의 단순한 가교 역할에 지나지 않거든요. 저보다 그분들께서 실상을 더 잘 말씀해 주실 수 있으니 스스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분들이 방송에 나오려면 아이들도 함께 나와야 한다는데 보호관찰 중인 아이들이니 얼굴을 모두 비공개로 진행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방송에서 시청률이 올라가지 않으니 다들 돌아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얼굴을 내밀고 일부러 언론에 노출하려고 했어요. 소년들이 처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집중이 절실히 필요했거든요.

판사님의 재판 현장이 특별합니다. 남다른 이유가 있으신가요?
하루 평균 100여 건에 다다른 판결을 내려요. 6시간 동안 150여 건의 사건을 해결한 적도 있죠. 한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이 겨우 4~5분밖에 되지 않아요. 시간이 충분하다면 아이들의 속마음도 들어보고 함께 해결책도 찾고 싶은데 절대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나름대로의 방법을 생각한 거죠. 짧은 시간에 아이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호통을 치는 거예요. 부모도, 교사도 무서운 것 없는 아이들이 법정에서는 달라져요. 그러니까 그 짧은 시간에 아이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는 겁니다. 꼭 달라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요.

부모와 자녀가 서로 ‘사랑합니다’는 말을 외치며 화해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당시 법정 분위기는 어떤가요?
처음 시작은 무덤덤합니다. 그런데 보통 아이들이 네다섯 번 정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외치고 나면 울컥하고 눈물을 터뜨립니다. 덩달아 부모도 눈물을 흘리며 아이에게 냉대했던 그간의 시간을 후회하고, 사랑으로 자녀를 보듬습니다. 그럴 때면 법정이 눈물바다가 되고, 저 또한 눈물이 핑 돌곤 하죠.

유독 기억에 남는 판결이 있을 것 같습니다.
소년재판을 받았던 경진(가명)이가 기억에 남습니다. 중학교를 중도 포기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상습 절도를 하다가 소년재판을 받게 된 경우인데 재판 출석도 거부한 채 계속 절도를 일삼다가 결국 채포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됐죠. 웬만하면 소년법에서는 구속영장을 기각하도록 되어 있는데 죄가 무거웠던 탓에 피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후 신체검사를 받은 경진이에게 임신 17주라는 진단이 내려졌어요. 아이는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으며, 낙태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소년원의 경우 시설이 열악해 임신한 아이들은 대부분 훈방조치가 취해진다’는 소문을 들은 경진이가 일부러 임신을 한 것이었어요. 결국 훈방조치를 받지 못하고 소년원으로 가서 출산까지 하게 됐는데, 한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가슴 아픈 일이었어요.

이후에 베넷저고리까지 사주셨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어요. 겨우 열일곱 살에 미혼모가 됐고,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을 보내야 했던 경진이의 마음을 그 누가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법관의 양심에 따라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아빠의 마음으로는 미안함을 풀 길이 없어 준비한 작은 선물이었죠.

남들이 다 가는 쉬운 길을 두고 소년부 재판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지난 4년 동안 소년부 재판을 하면서 느낀 것은 아이들이 사는 것이 너무나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제가 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저 또한 부산 달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잘 알아요. 판잣집이나 낡은 슬레이트 블록 집에서 대가족이 달세를 겨우겨우 내며 살았고, 가난 탓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죠. 그래도 저는 부모의 슬하에서 자랐는데, 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살가운 사랑과 보살핌 한번 받지 못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하는 방황’이 앞으로 두고두고 아이들의 삶에 돌부리가 될 것은 당연하잖아요. 그 아이 중 하나라도 더 손을 잡아주고 싶어요. 인생에 너무 많은 돌부리를 만들기 전에요.

따뜻한 보금자리와 새로운 가족
천 판사가 무엇보다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름 아닌 ‘대안 가정’이다. 친부모로부터 양육받지 못하는 아이를 일정기간 보호 양육하는 시설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그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지난 3년간 그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문을 연 대안 가정이 벌써 열 곳이나 된다.
대안 가정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년사건을 보면 1호 처분부터 10호 처분까지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소년원에 가는 경우와 귀가조치 취해지는 경우로 나눌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 중 결손가정의 아이들은 재비행으로 다시 법정에 서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죠.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어요. 아이들을 위한 국가적 해결책도 사회적 관심도 없는 현실에서 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대안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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