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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만에 언론에 모습 비친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14년 만에 언론에 모습 비친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3.06.1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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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젊은 김우중’을 길러내는 일, 이것이 내 일생의 마지막 흔적이고 싶다”

2007년 서울거법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때의 김우중 전 회장. 방송에서 보였던 모습은 이때보다 월씬 건강한 모습이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4년 만에 언론 앞에서 말문을 열었다. 얼마 전 TV조선에 출연해 자신의 근황을 알린 것이다. 그는 한국 산업사의 신화로 ‘세계 경영’의 화려한 날개를 펼쳤지만 IMF 위기의 한복판에서
‘부실 기업인’으로 낙인 찍혔다. 1999년 10월,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그는 해외 유랑에 나섰고, 2005년 입국해 7개월간 옥고를 치른 후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간간히 짧은 동정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그는 외부와 접촉을 끊은 채 은둔하며 침묵을 지켜 왔다.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김우중 사관학교’에서 청년사업가들에게 성공 노하우 전수
오랜만에 방송에 모습을 보인 그는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나 자신과 싸워 이겼다”고 표현했다. 아마도 건강을 회복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청년 해외 창업 조련사’로 변신해 있었다. 2007년 사면 이후 베트남 하노이에서 체류해 온 그는 해외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을 한국에서 데려와 키우고 있다. 일종의 ‘김우중 사관학교’를 만든 셈이다. 청년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 베트남에서 사업가로 클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사업 재기가 불가능한 자신을 대신해 젊은 사업가들로 하여금 또 다른 세계 경영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인 듯하다.

 

 


‘한국 산업의 신화’에서 한순간 ‘부실 기업가’로 낙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한국 산업의 신화 같은 존재였다. 1967년, 서른한 살의 나이에 자본금 500만원으로 섬유업체 대우실업을 세웠다. 이후 한국기계와 옥포조선소 등 부실기업들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워 나갔다. 1990년대 초, 세계 경영을 선포한 그는 동구권과 옛 소련 등 전 세계를 무대로 삼으며 ‘한국의 칭기즈칸’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혁신적인 경영으로 대우는 한때 재계 2위까지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IMF가 발목을 잡았다. 당시 대우는 계열사 41개, 해외법인 396개의 공룡기업이었지만, 부채비율이 600%를 넘기면서 1999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1970~1980년대 한국 고도성장의 상징이던 옛 대우건물은 다른 회사 손으로 넘어갔다. 김 전 회장은 프랑스와 독일 등 해외 유랑생활을 하다가 5년 8개월 만에 귀국했고,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등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에 벌금 1천만원, 추징금 17조9천200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베트남으로 터전을 옮겼다. 김우중 전 회장은 과거 대우를 재건하기보다는 자신의 세계 경영 철학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남은 일생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글로벌 YBM(영 비즈니스 매니저)’ 프로그램으로 이름 붙은 이 사업에 그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운명적으로 땅이 좁으니 밖에 나가 기회를 찾자는 생각에 시작된 프로그램으로, 화교나 유태인을 능가하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가 이 사업을 구상하게 된 것은 3년 전부터고, 1년간 준비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최근 1기 졸업생을 배출했고, 나름의 성과도 이뤘다. 그는 인터뷰에서 교육 사업을 시작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재작년까지는 내가 죽을 때까지 무얼 할까를 별로 생각 안 했어요. 그러다 작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해 보니 나라에도 도움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공헌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성공해 자신감이 생겼어요. 원래는 올 연말 2기를 졸업시켜 놓고 알리려 했는데, 청년 실업 문제도 있고 대학이며 KOTRA 할 것 없이 전부 다 청년 해외 취업 프로그램을 하는 걸 보고 공개해도 되겠다 싶습니다.”
그에 따르면 1기 졸업생은 100% 취직했다. 첫 연봉도 생각보다 높게 받았다고 한다. 프로그램은 전액 무료로 운영된다. 비용은 대우 임직원이 모인 대우세계경영연구원 회원이 300~400명가량 되는데, 이들이 1년에 10만원씩 회비를 내는 것으로 충당한다. YBM은 1년에 40명 안팎을 가르칠 수 있는 선에서 운영된다. 교육은 스파르타식으로 아침 5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훈련한다. 이렇게 10개월간 공부시켜 사회에 내보내고 있다. 그는 YBM을 미얀마와 인도네시아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아세안(ASEAN) 나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중에서도 미얀마·베트남·인도네시아가 땅이나 인구 면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사실 그가 사업 재기가 아닌 교육으로 승부한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돈 버는 비즈니스 대신 후진을 양성하는 것을 ‘김우중식 재기’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방송에서 교육에 승부를 건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YBM 졸업생들이 15년 후에 독립했다든지, 중역이 되는 것을 보고 싶어요. 그러면 제 흔적이 남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우중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실수해서 그렇게 됐지만…’ YBM 사업이 20년 후 엄청나게 커지면 저는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사람은 조그마한 것이라도 살았다는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대우 해체에 대해) 저는 잘못했다고 생각 안 하는데,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YBM 사업을 통해 ‘김우중이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를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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