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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륙을 고스란히 책에 담다 '거장 조정래의 귀환'
중국 대륙을 고스란히 책에 담다 '거장 조정래의 귀환'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3.09.0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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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칙이 존재하는 ‘정글’과 만리장성의 ‘만리’를 따서”

슥-스윽- 연필이 종이에 스친다. 고요한 적막 속에 울리는 단 하나의 소음이 공기 중에 작은 떨림을 준다. 그러다 순간, 기로(耆老)의 세월이 묻어나는 까무잡잡한 손이 멈췄다.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던 손에 팔렸던 정신이 돌아오자 이제야 생각에 잠겨 깊게 패인 남자의 미간이 눈에 들어온다. 감은 두 눈가에 진 옅은 주름을 보아하니 평소 그는 잘 웃는 사람일 것이고, 앙 다문 얇은 입술과 듬성하게 자란 짧은 곱슬머리를 보니 관상학적으로 고집이 꽤나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마치 병풍마냥 서 있는 책장에서 풍기는 오래된 책 냄새가 그의 몸을 자연스럽게 휘감는다. 잉크 냄새는 이미 마른 지 오래, 낡은 책 냄새에 섞인 미세한 먼지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묘한 기분이 든다. 순간 다시 한 번 그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좀 전보다 빠른 템포로 하지만 아주 차분하게.
상사원의 삶이란 어쩌면 농부의 삶보다 더 허망한 것인지 모른다. 농부는 땅을 자본으로 자연의 혜택을 받아 수확물을 거두지만 상사원은 무엇인가. 종이쪽에 그림을 그렸을 뿐인 돈이라는 허상에 교환가치라는 절대권력의 왕관을 씌운 그 거한 존재를 쫓아다니는 불나방 떼 아닌가. 자본주의-돈을 신으로 모신 이념이다. 그건 솔직담백하고 단순명료하면서도 잔인무도하고 인정사정이 없다. 신의 권능을 가진 그 물건을 서로 많이 가지려고 총소리 나지 않게 벌이는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용병이 상사원이었다. 그렇게 싸워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정글만리 「우정의 비즈니스」 중에서
정글만리, 작가의 30년을 담다
작가의 꿈은 서재를 갖는 것이다. 마음에 쏙 드는 서재를 직접 만들어 곳곳에 의자를 마련해 두고, 그날그날에 따라 어울리는 자리에 앉아 책 속에 파묻혀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 문단의 거장이자 초유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의 꿈이라기에는 참으로 소박하다. 하지만 단벌신사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근검절약이 몸에 밴 그이기에 그 소박한 꿈이 잘 어울린다. 욕심이라고는 오직 명문장을 위한 염원과 책에 대한 애정이 고작이다. 간혹 가다 후배가  가져오는 원고를 보며 ‘이 녀석이 좀 더 잘 썼으면’하는 생각 정도가 욕심의 일부에 보태질 순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와 재물이라든지 경제라든지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도 너무 안 어울린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쩐의 전쟁’을 정글만리의 주제로 삼은 것일까. 그 해답은 무려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련은 무너졌는데, 중국은 왜 무너지지 않았는가.’ 소설 <아리랑>을 집필하기 위해 취재차 처음 만주에 갔을 때 문득 그의 뇌리를 스친 질문이었다. 본격적으로 집필하기에 앞서 10여 년 정도는 작품 구상할 시간을 미리 갖는 그인데 정글만리는 평균보다 더 오랫동안 그 과정을 거쳤다.
“정글만리를 집필하기 전 몇 차례 중국을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놀란 것이 있어요. 전쟁의 폐허 속에서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30년이 걸린 우리나라보다 중국의 발전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는 거예요. ‘손자 녀석이 제2외국어로 어떤 것을 배울까요’라고 물어보기에 당연히 중국어를 배우라고 단언했어요. 아마도 2016년쯤에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G1이 될 것이라는 추측도 지금의 발전 추세로 보면 가히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아요.”
지난 30년을 지켜본 중국의 비약적 경제성장 배경에는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중국의 부강은 동시에 수천 년 동안 국경을 맞대온 한반도와 직결된 문제였다. 그러니 호기심 가득한 그의 눈에 중국은 무엇보다 가장 궁금하고 알고 싶은 대상이었다. 중국대륙을 무대로 그린 신작 ‘정글만리’를 집필하기 전 중국의 역사, 문화, 사람들의 성향 등 중국을 마치 중국사람보다 더 중국사람처럼 꿸 수 있을 만큼 공부한 것도 순전히 작가의 호기심 때문이다. 그러니 30여 년 전 만주에서 떠오른 질문에서 시작한 ‘정글만리’는 조정래의 인생 절반이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다. 중국 현실을 누구보다 훤히 파악하고 있으니 세계 각국,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여러 등장인물을 작가 혼자서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적재적소에 인물을 배치해 이야기에 흥미를 배가시킨 것도 지나온 세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글만리’는 거대한 대륙을 무대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비즈니스맨들의 열정과 야망을 그렸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정글만리다.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바로 알 수 있을 법한 제목이지만, 솔직히 읽지 않은 사람들은 ‘도대체 정글만리가 무슨 뜻인지’ 당최 알 길이 없다.
“제목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칙이 존재하는 ‘정글’과 만리장성의 ‘만리’를 따서 완성한 제목이에요. 그런데 사실 처음에는 정글만리장성이라고 하려했어요. 출판사에서 그건 별로라고 해서 정글만리가 되었지만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정글만리의 탄생 비화를 말하던 작가의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말아야 할 것들
IT 최강국인 한국에서 휴대폰 하나 없다. 으레 조정래라면 바쁜 일정이 밀어닥칠 것인데 휴대폰 없이 살아간다는 게 가능할까 싶다가도 그이기에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짐작해 본다. 여전히 한 글자 한 글자, 마치 산고와 맞먹는 고통을 견디며 작품을 원고지에 써내려간다는 조정래 작가. 몇 없는 육필작가 중 한 명인 그의 필체는 정갈하고 멋스럽다. 정글만리는 원고지 총 3천600장에 달하는 분량이니 그간의 인고야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니 작가 또한 소설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을 되풀이 한다고 했다. “지긋지긋한 소설, 앞으로 두 번 다시 쓰나 봐라.” 하지만 그러고 얼마나 됐을까 퍼뜩 정신을 차려 보면 또 다시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곤 흠칫 놀란다. 가끔 후배들이 원고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세월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원고지에 쓰는 친구를 만난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물론 소설이야 이해를 하지만 산문 또한 컴퓨터로 쓰는 것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거장의 말이다. 한편 정글만리에서는 요즘 소설들에서 흔히 보이는 ‘나’라는 주인공을 찾아볼 수 없다.
“저는 철저하게 3인칭 소설을 써요. 가끔 후배들이 책을 썼다고 가지고 오는데, 모두 ‘나, 나, 나’ 하다 보니까 다른 주인공들이 개성이 없어지고 불구가 되는 것 같아요. 한국문학에 ‘나’가 등장한 20년 전부터 문학이 왜소해지고 사적인 얘기로 흘러가 많은 독자를 잃어버려서 안타깝고요.”
사실 정글만리는 지난 3월부터 7월 10일까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108일간 연재한 내용을 3권 분량으로 묶은 것으로, 급성장한 중국을 무대로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 5개국의 비즈니스맨들이 벌이는 경제 전쟁을 그렸다. 삶이 어려운 서민들의 마음이 동한 것일까, 연재 당시 그의 인기를 보여주듯 1천2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자 21세기 원시인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그 또한 놀랐다.
“미국과 중국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오는 걸 듣고 최첨단 과학기재들이 가진 지배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글로벌이 무엇인지 절실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정래曰 차기 대통령 후보 안철수 유력
문학적 행보뿐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 또한 막대한 조정래 작가는 지난 대통령 선거를 통해 안철수 전 후보를 지지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왜 안 전 후보를 지지하느냐’고 물었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당연한 이유였다”고 한다. 다른 정치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진실’한 모습이 안 전 후보에게서 보였기 때문이다.
“안철수 전 후보는 때 묻지 않은 지성인의 진실을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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