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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촌철살인의 대명사 SBS <8시 뉴스> 김성준 앵커와의 유쾌한 만남
이 시대 촌철살인의 대명사 SBS <8시 뉴스> 김성준 앵커와의 유쾌한 만남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3.09.16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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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이콘

이 시대 촌철살인의 대명사
SBS <8시 뉴스>
김성준 앵커와의 유쾌한 만남

SBS <8시 뉴스>를 통해 친숙한 김성준 앵커가 제40회 한국방송대상 개인상 부문 앵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촌철살인의 대명사이자 시대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그의 수상 소식을 멀리서 지켜볼 수만 없어
지극히 사심으로 대뜸 “인터뷰하고 싶다”고 연락했다. 수화기 너머로 사람 좋은 웃음소리가 흐르더니 고민도 없이 “오세요”란다.
그렇게 성사된 인터뷰, 그리고 생각보다 더 부드러운(?) 김성준 앵커와 유쾌한 수다를 나눴다.
취재 도수라 기자 | 사진 최별 기자

 


“비판은 아프게, 하지만 표현은 품위 있게. 제가 앵커멘트 쓰는 원칙입니다. 저 같은 일개 앵커도 이러는데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더욱 말을 가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판이든 칭찬이든 듣는 사람이 수긍하는 말이 가장 힘 있는 말이겠지요. 뉴스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의 클로징 멘트는 힘이 있고 강하며 때로는 속 시원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의 클로징 멘트가 듣고 싶어 뉴스를 보게 됐다는 시청자까지 있을 정도다. 한마디 한마디에 세상은 귀를 쫑긋하고 그에게 집중한다. 그런 그이기 때문일까. 김성준 앵커가 카메라 앞에 앉은 지 딱 2년 만에 SBS 뉴스에 대해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격동기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1980년대, 김 앵커의 전공은 무려 사회과학이었다. 혼란한 사회를 안정적으로 바꾸고 싶은 바람이었다. 처음에는 정치학자가 되어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에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어 언론인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누구에게도 뉴스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권력은 없다
한국방송대상 수상하신 것 축하드려요. 시상식인 9월 3일에 뵈어야 하는데 그때는 매우 바쁠 것 같으니 미리 축하 인사드릴게요.
이렇게까지 축하 들을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차피 제 개인에 대한 상이라기보다는 우리 SBS 뉴스팀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해요. 뉴스에서는 개인에게 주는 특종상만 있을 뿐 뉴스 전체에 주는 상이 없거든요. 앵커라는 것이 개인이기보다는 뉴스의 얼굴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김성준에게 준 게 아니라 ‘SBS 뉴스 얼굴’에게 준 거죠. 사실 SBS 뉴스가 최근 몇 년 동안 정말 많은 노력을 했어요. 요즘 들어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공중파 3사 중에 늘 3등이니 이제 우리도 좀 달려 보자고 한 거죠. 제대로 된 뉴스라는 평가를 받고 싶었어요. 그렇게 마음먹고 나서 가장 먼저 바꾼 것이 뉴스를 전한다는 것에 대한 가치관이었어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소식이라고 판단되면 앞뒤 재지 않을 것. 뉴스의 가치로만 판단해서 내보낼 것. 그런 기준을 정했어요. 큰 변화였죠. 가감 없이 뉴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보다 시청자들이 뉴스의 변화를 가장 많이 느꼈을 것 같아요.
시청자 분들이 SBS 뉴스가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말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공격적이라는 표현이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전에는 좀 조심하려고도 하고, 너무 비판적인 표현은 자제하려고도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SBS를 향해 속 시원하다고 말씀도 해주세요. 흔히들 ‘SBS 뉴스는 보수적이다, 너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뉴스를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과거보다 비판의 날을 좀 더 세우다 보니까 그런 점에서 SBS 뉴스를 보고 속 시원하다고 해주시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SBS 뉴스가 볼 게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SBS 뉴스가 볼거리가 많아’ 이렇게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묵묵히 따라와 주고 늘 열심히 하는 우리 후배들에게 고마워요. 진실이라는 게 절대 한번에 파헤쳐지는 게 아니에요. 양파껍질과도 같아서 두 번 세 번 계속 벗기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알갱이가 없어질 때까지 벗겨야 하는 거잖아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한편으로는 미안한 기분도 들고요.

후배들을 보면 가끔 옛날 생각도 날 것 같은데요.
옛날이라기보다 아침 뉴스 진행했을 때가 생각나요. 제가 원래 올빼미 스타일인데 아침 뉴스를 도합 4년 했거든요. 아주 고통스러웠어요. 알람을 집 전화, 자명종, 회사에서 오는 모닝콜 이렇게 해서 합이 여덟 개, 아홉 개 맞춰 놓고 잤는데도 제 시간에 못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가 분당에 살아서 방송국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리거든요. 원칙적으로는 3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어떤 때는 마지막까지 알람을 하나하나 참 차분하게 끄고는 결국에는 배꼽시계에 놀라서 일어났더니 5시 18분인가에 일어난 적도 있었어요. 회사에서는 저를 3시 30분에 깨웠으니까 당연히 어디서 분장하고 있겠거니 한 거죠. 그때부터 분당에서 출발해 거의 목숨을 걸고 달려서 회사에 도착했더니 방송 시작 4분 전이 더라구요. 들어갔더니 분장해주는 분들이 대기하고 있어서 대충 분장하고는 바로 오프닝 멘트에 들어갔죠.

많이 혼났겠어요?
다행히도 새벽시간이니까 밤샘 작업한 사람들밖에 없었어요. 혼나지는 않았죠. 게다가 제 딴에는 일어난 지 얼마 안 되니깐 잠도 안 깨고 그래서 일부러 발음도 또박또박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눈도 거물거물 거려서 부릅뜨려고 노력한 게 남들한테는 좀 다르게 보였나 봐요. 방송 끝나고 복도에서 만난 사람들이 “야, 오늘 눈이 초롱초롱하던데”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방송이라는 게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아무리 준비를 많이 해도 방송사고가 나면 그 노력은 무용지물이 되는 거예요. 반면 아무리 형편없이 준비해도 방송 중에 사고가 안 나면 괜찮은 거고요. 이렇듯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많아요. 하지만 물리적인 시간으로 따져보면 보도국에서 시간이 가장 많은 사람 중 한명이에요. 8시 뉴스를 하니까 일단 오전에는 회사에 안 나가도 돼요. 공식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게 오후 2시 편집회의부터거든요. 8시 뉴스가 끝나면 바로 퇴근하고요. 다른 기자들처럼 출입처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토요일, 일요일은 반드시 쉬고요.

알고 보면 감수성 풍부한 부드러운 남자
평소에 늘 카메라를 접하니 사진 촬영에 전혀 어색함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는 동영상에 강하다며 웃는다. 중간중간 위트 있는 유머가 섞이자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 간다. 이야기를 하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더니 뒤로 멋들어진 사진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누가 찍은 건가 했더니 모두 김 앵커의 작품이라고 한다. 평소 사진 찍는 걸 즐겨 이곳저곳에 그의 작품이 눈에 띤다. 딱딱한 인터뷰가 아닌 사진 이야기가 나오자 이제야 본격적으로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모두들 그를 향해 촌철살인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는 매우 부드러운 남자다. 일밖에 모를 것 같은 남자가 사실 트럼펫, 검도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사진은 언제부터 시작한 거예요? 취미로 찍는 것 치고는 좋은 작품이 매우 많은 걸요.
사진은 고등학교 때부터 찍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잘 찍지는 못해요. 그래서 이 방에 포토그래퍼는 잘 안 들어오게 하는데…. 창피해서요. 제 취미가 그래도 사진 찍는 건데 전문가 입장에서는 얼마나 비웃겠어요. 그래서 포토그래퍼가 온다고 하면 미리 사진을 다 떼어요. 오늘은 미리 못 떼서 들켰네요.

그런데 유독 사물을 많이 찍는 것 같아요. 늘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잖아요.
별다른 이유는 없고요.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찍기 힘들잖아요. 사물은 내가 다 찍을 때까지 같은 모습으로 가만히 있고요. 사실 사진을 찍는 이유가 하나 있긴 해요. 친한 사람들한테 제가 찍은 사진을 나눠주는 걸 좋아하거든요. 사진 참 예쁘게 잘 찍었다는 말을 듣는 게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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