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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진정한 자유인 ‘만자레, 칸타레, 아모레’ 조영남
시대의 진정한 자유인 ‘만자레, 칸타레, 아모레’ 조영남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3.10.1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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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재미있는 시간, 반은 재미없는 시간, 반은 기쁨, 반은 슬픔, 반은 즐거움, 반은 외로움. 그런데 우리가 전자만 좋아하고 후자는 싫어하잖아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슬픔과 외로움도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죠”

“에이, 그런 것 없어요. 다 내 친구지. 누구 하나를 특별하다고 하면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그 친구 말고 다른 친구는 안 특별한 걸로 되잖아요. 그럴 것 뭐 있어요. 다 같이 사는 세상인데”

“조물주하고 저는 같은 조 씨예요. 조, 물, 주잖아요. 그건 그렇고, 그 양반은 인간의 삶을 참 공평하게 만들었어요. 반은 재미있는 시간, 반은 재미없는 시간, 반은 기쁨, 반은 슬픔, 반은 즐거움, 반은 외로움. 그런데 우리가 전자만 좋아하고 후자는 싫어하잖아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슬픔과 외로움도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죠.”원채 뜬금없는 말을 잘 꺼내는 그다. 하지만 아무리 가벼운 대화라 할지라도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대뜸 ‘반(half)’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한동안 말을 이어갔다. 삶의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외로움과 고독에 대한 그의 견해는 남달랐다. 어둠 속의 아름다움은 전혀 보지 못하고 그저 불빛만을 향해 질주하는 불나방 같은 ‘우리 사람들’에게는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이젤 앞에 앉은 그의 손과 눈은 그림을 향했고, 귀와 입은 인터뷰에 집중했다. 미리 그려 놓은 빨간 꽃에 하나하나 가지를 그려 넣으니 캔버스 위 철지난 홍싸리가 한 아름 피었다. 화투장은 4장씩 12달을 의미하는 48장이 모여서 한 세트가 만들어지는데 1월 송학, 2월 매조, 3월은 벚꽃, 그리고 흑싸리, 난초, 모란을 거쳐 홍싸리는 7월을 의미하는 화투장이다. 처음 캔버스 위 홍싸리 꽃이 송이송이 떨어져 있을 때는 자유분방하니 그것대로 멋있다 생각했는데 한 가지로 이으니 이건 또 이것대로 멋이 있다. 마치 고독도 ‘어울림’만큼이나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일부러 가지 없는 홍싸리를 이젤 위에 올린 것 마냥 계절 지난 그의 작품은 인터뷰 주제와 잘 맞아 떨어졌다.

세월이란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가수 조영남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부터였더라, 화수(畵手) 조영남이 됐다. 화수는 화가와 가수를 의미한다. 미술과 음악, 예술의 가장 대표적인 두 장르를 평정하고 있으니 ‘어쩌면 그는 천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조영남이 사랑하는 시인 이상처럼.(이상을 매우 좋아한 그는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이상 시 해설서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음악가 조영남은 두 말할 것 없고, 화가 조영남으로 산 세월도 벌써 40년이나 됐다. 화투, 코카콜라 등 늘 상상치도 못한 소재를 들고 나와 미술계를 발칵발칵 뒤집은 것도 여러 차례. 어디서 그런 영감을 받느냐고 물어보니 “내가 영감이잖아”라고 대답한다. 질문을 할 때면 이에 대한 답변도 몇 가지 생각해두는 편인데 그의 대답은 매번 예상한 답변 리스트에는 없다. 그저 우스갯소리이겠거니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의 대답이 맞다. 영감(令監)님 살아오신 세월보다 진정한 영감(靈感)의 근원이 또 어디 있을까. 세월의 흔적은 그의 외형을 바꾸기도 했지만 내면의 변화도 불러왔다. 지금보다 좀 덜 자유롭게 살았던 그를 좀 더 자유롭게 살게 했다.“나이가 들고 세상 물정을 알아 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은 다 해야겠구나’ 그래서 그런가. 예전보다 인생을 좀 더 즉흥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정말로 그의 인생은 즉흥적이다. 약속 잡고 만난 친구보다는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친 친구가 더 반갑고, 음악회를 할 때도 그다지 많은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즉흥적으로,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이 최고라고 여긴다. 그림을 그릴 때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불을 박차고 나와 다시 이젤 앞에 앉는다. 그 순간의 느낌, 마음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고희를 앞둔 그는 알게 됐기 때문이다. 단, 그의 열정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만’이라는 전제가 따라 붙는다. 음악도 좋아하고, 그림, 책, 그리고 여자 친구(저스트 프렌드)도 좋아하는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냐고 묻자 “내가 좋아하는 게 뭐가 많아. 그거 빼고 또 뭐가 있어”하고 허를 찌르는 답을 내놓는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연예인 중 가장 비싼 집에 산다고 소개된 바 있는 그의 집에는 여자 친구를 제외한 음악, 그림, 책밖에 없다. 한강이 탁 트인 거실에 소파라도 제대로 된 것 하나 놓을 법한데 집에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3인용 소파 하나가 고작이다. 주방에는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주방기기들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서재에서 툭 튀어나온 고양이 한 마리마저 없었다면 60억원대의 저택을 ‘삭막’이라는 단어로 소개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극히 일반인의 견해로, 그의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네버랜드일 것이니 말이다.

그저 홀연히 사라질 수 있다면한때는 음악이 재미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밥벌이로 노래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마이크 앞에 서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미술과 독서에 더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은 음악이 다시 좋아졌다고 한다. 요즘 말 중에 취미도 ‘돈 벌 수 있는 취미를 고르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그에게는 썩 내키지 않을 듯싶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밥벌이가 되는 순간 보이지 않는 감옥이 된다는 것을 그는 이미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그런 그는 죽기 전에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을까. “사실 버킷리스트에 뭘 쓸까 고민을 해봤는데 쓸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살아왔으니 욕심나는 것도 별로 없고요. 굳이 한 가지라도 쓰라고 하면 제네바 가서 손목시계 구경이나 실컷 하는 것인데, 그것도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거니깐 그다지 버킷리스트라고 하기에 뭣하더라고요.”시계 마니아로 유명한 조영남 다운 말이다. 버킷리스트에 올릴 만한 게 없다는 것, 한편으로는 부럽고 또 한편으로는 대단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리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혹시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놓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주춤거린다. 그러다 결국에는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니 버킷리스트가 없다는 그는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그 삶을 한 번쯤 맛보고 싶다는 욕심이 난다. 버킷리스트를 말하다 어느 순간 영화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두 남자가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는 여정을 그린 영화다.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문신하기, 카레이싱과 스카이다이빙 등 목록을 지워 나가기도 하고 더해 가기도 하면서 두 사람은 인생의 많은 것을 나누게 된다. 인생의 기쁨, 삶의 의미, 웃음, 통찰, 감동, 우정까지. 남친, 여친 많기로 유명한 그에게도 그런 특별한 친구가 있을까.“에이, 그런 것 없어요. 다 내 친구지. 누구 하나를 특별하다고 하면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그 친구 말고 다른 친구는 안 특별한 걸로 되잖아요. 그럴 것 뭐 있어요. 다 같이 사는 세상인데.”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그가 친구들에 의해서는 송두리째 뽑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요즘은 하나둘 친구들을 떠나보내며 죽음, 사라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없어지고 싶다. 흔적도 없이, 페이드아웃(fade-out)” 처음 세상에 왔을 때처럼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가 꿈꾸는 아름다운 사라짐이라고 말한다. 남아 있는 것보다 없어지는 것에 의미를 두고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아 있는 것은 ‘한계’가 있으나 그 이후는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답이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후배들 만났을 때 나 죽은 후에 장례식 치르지 말라고 하면 비웃어요. 누구는 그러더라고요. ‘형이 죽은 후에 일은 형이 관여할 일이 아니니깐 신경 쓰지마’라고요.”(웃음)조영남다운 생각이지만 그의 팬으로서 너무도 쉽게 말해버리는 그에게 서운함마저 든다. 그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걱정하지 말라고 한마디 덧붙인다. 친구들끼리 하는 말이 있는데 아직 자기 차례는 멀고 멀었다는 것이다.“리스트를 쭉 만들었어요. 전유성, 그 다음이 아침이슬에 김민기, 이장희 이렇게요. 이 사람들 다 술을 너무 좋아해요. 알코올 중독이에요. 요즘 김민기는 손까지 떠는 게 심상치 않더라고요. 아, 한 명 빠질 뻔했는데 소설가 최인호도 제 친구인데 그 친구도 조마조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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