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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이 만난 사람33 믿음의 연결고리, 따뜻한 ‘돈키호테’
이재만이 만난 사람33 믿음의 연결고리, 따뜻한 ‘돈키호테’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3.10.17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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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 심장 뛰는 떨림
주변을 빛나게 하는 힘
시작, 겸손한 아름다움으로
오늘, 미치도록 사랑하리

백용기
희망 중심
행복 중심
그의 기개와 신명은 맺힘과 풀림
사람을 품은 착한 기업인

대한민국 행복 경영인

백용기
그의 해학과 풍자는
세상의 꽃이 되고 바람이 되어
태양을 품고 대륙을 항해
힘차게 뻗어 오르고
세상을 향해 날아가리

백용기
한바탕 어우러져
살 맛 나는 한 세상
그의 향기는 만리에 퍼지니……

鉅鵬 백용기
만나면 행복한 사람
만나면 이웃이 되는 사람

2013. 9. 20.
변호사 靑波 이재만

“대만과의 교류, 건강과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떤 분야든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고 싶습니다”

그는 대만 입법원으로부터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입법원 외교 영예훈장을 받았으며, 대만 외교부가 주는 외교훈장도 받았다. 지난 2009년에는 대만 경제부로부터 경제전문훈장을 받기도 했다. 대만 정부로부터 3개의 훈장을 받은 경우는 그가 유일하다.

남다른 혜안으로 일군 성공 스토리
백용기 회장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바탕으로 약관의 나이인 20세에 첫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초보 사업가에게 세상의 벽은 높았고 실패의 쓴맛을 본 적도 있다. 그 이후로도 사업가로서 시련과 아픔의 순간을 경험했지만 백 회장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 태백컴퓨터 아카데미를 세워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기업의 이윤보다 기업의 가치 정립을 중요시하는 인물로 의료, 교육, 에코 분야를 거붕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삼을 정도다. 따뜻한 기업으로 기억되기 위해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경영철학을 토대로, 그는 오늘도 신명 나는 열정을 쏟는다.

이재만 거붕그룹 회장으로 계시는데, 거붕그룹은 어떤 회사인가요?
백용기 거붕그룹은 경남 거제 소재 백(白)병원과 경기 과천 우정병원, 경기 화성 화도중학교,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토보콤, 음식물처리기 제조 기업인 지비앤디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대에 사업을 시작하여 현재의 거붕그룹이 되었습니다.
이재만 거붕그룹을 이루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도전했던 사업은 무엇이었나요? 백용기 도금 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했어요. 전자 부품이나 시계 등을 도금하는 공장을 운영했죠. 그 사업에 투자해서 6개월 정도 하다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사업을 접어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제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대법관이라고 별명을 지어주셨을 만큼 아들이 법조계 일을 하길 바라셨는데 제 스스로 그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어 그 이후로도 꾸준히 사업에 도전을 했어요.
이재만 최초로 컴퓨터 설계 소프트웨어인 오토캐드를 도입해서 큰 성공을 거두셨지요. 성공에는 항상 고난과 역경이 따르기 마련이잖아요. 그동안 사업가로서 경험한 위기의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백용기 많은 사람들이 저를 겉으로만 봤을 때는 평탄하게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경영에 성공한 경영인 2세로 봐요. 하지만 저는 그 과정에서 신산한 삶도 살았고, 사업을 하면서 수십 번 넘어지고 깨져 보기도 하고 처절한 아픔도 겪어본 사람입니다. 특히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랑스러운 게 하나 있는데, 우리나라가 IT 기반이 없을 때 태백컴퓨터 아카데미를 설립했다는 겁니다. 당시 타자학원에서 전산으로 전환될 시기에 대만에서 조립한 500대의 컴퓨터를 활용해 컴퓨터 아카데미를 세운 것이죠. 한 4년 정도 운영했는데 워낙 앞서가다 보니 큰 성공을 거뒀지요.
이재만 현재 거붕그룹의 사업 영역을 보면 교육, 의료, 친환경 분야 등 다방면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백용기 제가 태백컴퓨터 아카데미를 운영해서 엄청난 성황을 이룬 후 어려움을 겪는 과정 속에서도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학교와 병원을 운영한다고 하니 당시 의외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병원 사업을 검토 중인 단계에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의 충격을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아내의 모교인 연세대에 가서 병원을 둘러보며 어떤 의료기관을 설립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차에 세브란스 병원 설립 기반이 된 거액 기부자 L.H. 세브란스가 감사패를 받으며 남긴 소감을 보게 됐어요. ‘받는 당신들의 기쁨보다 주는 나의 기쁨이 더 크기 때문에 내가 더 감사할 따름’이라는 세브란스의 말은 제가 하고 있는 일의 모든 원칙이 되고 있을 만큼 강렬하게 다가왔죠. 물론 기업가로서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이 없던 건 아니었어요. 그렇게 고민하다 최근에서야 음식물처리기 사업에 뛰어든 것입니다. 앞으로 3~4년 동안 기업가로서 전력투구해 볼 생각입니다.
이재만 환경보존을 위한 음식물처리기 사업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백용기 과거에 함께 일했던 직원 한 명이 회사에 좋은 아이템을 소개하겠다고 온 적이 있어요. 그 아이템이 바로 음식물처리기 사업이었죠. 당시에는 주위에 있던 직원들조차 놀랄 정도로 격하게 반대했어요. 그러던 차에 시간이 좀 지나 음식물 잔반은 1992년부터 땅에다 묻을 수 없도록 법적인 규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것을 얼마 전까지 먼 바다에 나가 버려 왔는데, 올해 1월 1일부터 런던협약에 의해 해양 투기가 금지되었죠. 그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병원이란 70~80% 정도는 환자를 치료해서 회복시키는 것이고 그 나머지는 예방 및 검진을 통해 발병을 예방하는 것인데, 병의 원인은 결국 전염과 오염에서 오는 것이거든요. 그런 결론에 다다르고 보니 병원보다 더 고결한 것이 음식물처리기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명분과 실리가 있는 훌륭한 일이라는 느낌도 왔고요.
이재만 한국 음식은 반찬 가짓수가 많아서 잔반이 상당히 나오는데, 잔반은 국가적으로도 자원으로 재활용될 가능성이 많지 않습니까. 백용기 우리 제품의 강점이 슬러지를 바로 유기농 퇴비로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조금만 가공하면 연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데 있어요. 앞으로 우리나라 2천 만 세대 중 1천 만 세대를 바라보고, 그중 500 만 세대 정도를 책임지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 가장 애착을 갖고 ‘올인’하는 사업 분야이기도 합니다.
이재만 음식물처리기 사업은 전 세계인의 건강은 물론 후손에게 살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한 친환경 사업의 대표적인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음식물처리기와 관련된 신제품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면서요. 백용기 기존에 4개 제품은 만들어진 상태이고, 2개의 신제품이 11월에 출시됩니다. 조금 늦었지만 올 12월에는 업소용 제품을 발표해서 중국 시장을 공략할 계획입니다.
이재만 거붕그룹의 사업 분야가 매우 다양하여 타 기업과 차별화되고 독특한 것 같습니다. 경영을 하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백용기 사람을 대할 때 항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어렸을 적에 아버지께 배운 게 있어요.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 당시에 밥을 얻어먹기 위해 가난한 이웃들이 집에 찾아오는 걸 많이 봤죠.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행랑어멈에게 ‘손님 오셨으니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찾아온 이웃에게 불손하게 대하면 아버지께서 혼을 내셨던 기억이 선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사람을 절대로 겉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격적인 부분을 가지고 평가해야 된다’는 것이었죠. 그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제 인생철학에는 측은지심을 기반으로, 거기에 열정이 더해집니다. 열정 있는 곳에는 신명이 있기 마련인데, 제 속에 있는 에너지에 신명이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재만 거붕그룹이 어떤 기업으로 성장하길 바라시는지요. 백용기 훈훈한 찐빵에 비유할 수 있겠네요. 겨울철에 손이 꽁꽁 얼어붙었을 때 따뜻한 찐빵을 손에 안으면 추위가 눈 녹듯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따뜻한 기업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음식물처리기 제조기업의 사명을 지비앤디(Grace Base & Dream의 약자)라고 정하고 ‘지극한 감동을 전하고 꿈을 실현하는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만 총통이 인정한 민간 외교가
백 회장은 대만을 친구의 나라라고 부른다. 어려서부터 선친의 영향을 받아 신의를 강조하는 대만인들의 성품을 누구보다 잘 안다. 컴퓨터를 수입한 것을 계기로 대만과의 교류를 시작한 그는 서울타이베이클럽을 창립하고 경제와 문화 협력의 장을 넓혀 나가는데 주력해 왔다. 특히 대만과 공식적인 외교 단절에도 ‘대만의 눈물’을 근거리에서 닦아준 민간 외교가로서 사익보다는 대만과의 신의를 중요시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결과 그는 현재 대만 총통은 물론, 정재계 인사들이 인정하는 민간 외교가로서 한국의 이미지를 크게 개선해 왔다.

이재만 대만을 아주 특별한 나라로 여기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만과의 문화경제 교류에 앞장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백용기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기 전에 만주에 계셨던 어머니께서는 항상 중국인들의 신의를 이야기하시면서 ‘대국의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셨어요. 그렇게 호기심을 갖게 되어 역사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가 나라를 잃고 상해에 임시정부를 수립했을 때 장개석이라는 사람이 엄청난 지지를 보냈고, 6·25 전쟁 당시 부산에 있던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비행기를 타고 몰래 방한해서 서로 손을 잡으며 ‘지키겠다’고 약속한 사람도 바로 장개석, 그 당시 대만 총통이었죠. 실제로 한국전쟁 때 유엔 파병 동의안을 최초로 올린 나라가 대만이기도 하고요. 저는 1992년 8월에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대만 외교 단절을 선언했을 때 대만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이런 말을 했어요. “세계 위정자들이 당신들에게 아픔을 줬지만 대한민국 99%는 대만인들이 우리에게 보여줬던 사랑과 우정을 안다. 우리 속담에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지금 슬프고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 있지만, 봄날은 올 것”이라고요. 그 당시 개인적으로 당혹스럽고 미안한 감정 때문에 그 분들이 한국에 올 때마다 정성을 다했어요. 그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와 대만 수도의 이름을 딴 서울타이베이클럽을 만든 것이죠. 우리가 만드니까 대만 측에서도 타이베이서울클럽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고, 그 모임에는 중화민국을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이 망라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재만 한국-대만 교류의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해오셨다면 특별한 인연을 유지해 온 대만 기업인들도 많을 텐데요.
백용기 1년에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적게는 30명에서 많게는 60~70명의 대군을 이끌고서 한 번은 문화 교류로 친선을 다지고, 또 한 번은 경제 교류의 장을 만들기도 했죠. 저는 원칙적으로 대만을 상대로 장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세우고 모임에 갔는데, 초기에는 의아하게 바라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저의 진심이 전달되었는지 다들 저를 인간적으로 좋아해 주시기 시작했어요. 3년 전부터는 대만 측에서 오히려 ‘친구야 사업하자’며 말하곤 합니다. 물론 속으로는 ‘기회는 지금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단순히 이익만 보고 접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재만 특히 대만과 공식 외교 단절 시기에 우리나라와 대만의 경제 외교에 관계 개선에 앞장서신 공로를 인정받아 얼마 전에는 대만 국회와 외교부로부터 특별한 상을 수상하셨지요.
백용기 사실 민간 외교라는 말은 부담스러워요. 뜻이 맞는 대만 경제인, 정치인, 정부 고위 인사들을 꼭 만나는데 그 분들도 저를 공적인 관계로 보기보다 ‘친구야, 네가 와야 우리도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며 미미한 존재인 저를 치켜세워 주시죠.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다만 제가 가지고 있는 의리와 신의, 이것 하나로 대만 왕진평 입법원장님(국회의장)이나 대만무역협회 회장인 타이베이서울클럽 왕지강 회장님 등이 저를 높이 평가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히려 대만에 갈 때마다 위안을 얻고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이재만 대만 입법원장님이 만찬 자리에서 싸이의 ‘말춤’을 추신 일화가 유명한데요.
백용기 네 맞습니다(웃음). 왕진평 입법원장님은 무려 국회의원 12선을 하고 17년째 입법원장을 역임하고 계신 정말로 훌륭한 정치인입니다. 게다가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이 특별해 그분을 추천해서 작년 11월 명예 박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 ‘SKKU Distinguished Fellow’를 성균관대학교에서 받은 적도 있어요. 그때 마음속에 있던 고마움을 조금 전달했죠. 또 10월쯤 모 대학을 통해 왕지강 회장님에게도 명예 박사학위 수여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그분은 1960년에 카이스트에서 1년간 근무한 적도 있을 만큼 과거에 우리나라에 도움을 많이 주셨는데, 그 고마움의 표시로 작지만 명예스러운 선물을 드리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죠.
이재만 2002년 서울타이베이클럽 발족 이후 대만과의 민간 교류를 추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백용기 공식적으로 외교 단절이 되면서 비행기가 오갈 수 있는 복항이 되지 않아 민간 부문에서 복항을 추진했던 기억도 나고요. 또 대만 전역에 사스가 돌았을 때 세계보건기구마저 철수한 상태라 사스 정보를 구할 방법이 없던 상태였어요. 대만인들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법적으로 세계보건기구에 가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재만 서울타이베이클럽의 수장으로서 앞으로 대만과의 민간 교류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고 싶으신지요.
백용기 중국과 대만이 같은 민족이지만 이념적으로 떨어져 있어요. 그런데 삼통(三通)이라는 걸 했어요. 상품 오고가는 통상과 우편서신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통우, 그리고 하늘길 과 뱃길을 서로 오고가는 통항이 그것이죠. 저는 대만 총통 앞에서 ‘신삼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상호 존중하자는 ‘통상’과 우의를 증진하자는 ‘통우’, 그리고 ‘통항’은 하늘길과 뱃길에 인산인해를 이뤄서 서로 자주 왕래하자는 의미를 담았죠. 이 ‘신삼통’이 제가 꿈꾸는 우리나라와 대만의 관계입니다.

세상을 향한 행복한 추임새, 행복 경영
백 회장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인 유산을 지금도 생활 철칙으로 지킨다. 바로 ‘항상 남을 먼저 대접하라’는 가르침이다. 지금도 그는 이 가르침을 가슴 속에 새기고 열정적인 삶의 태도에 판소리의 추임새 같은 신명을 더한 인생을 지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건강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남을 돕는 시혜적인 접근으로 선행을 베풀기보다는, 함께하는 동반자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세상의 다양한 접점마다 선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재만 여러 기업 활동을 통한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공헌 활동도 하고 계시지요.
백용기 국악에 나오는 추임새처럼 누군가 힘들 때 제가 ‘지화자, 얼씨구’하는 추임새와 같은 역할을 할 뿐이죠. 그것이 저의 도리이기도 하고요. 문화·예술 분야를 알게 모르게 ‘돕는다’고 말씀하시는데, 사실 어려서 행랑채에 들락날락했던 춤꾼들을 통해 신명과 춤사위를 본 게 있어서 그런지 문화·예술 분야를 즐기면서 에너지를 얻어요. 이를테면 1년에 두 번 정도 인간문화재 분들과 모임을 갖는데, 그분들을 돕는다기보다 제가 그분들의 소리와 춤, 악기 연주 소리를 들으면서 에너지를 얻는 거죠.
이재만 사업가로서 품고 있는 중·장기적인 비전은 무엇인가요.
백용기 하나는 다양하고 세분화된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융합과 통합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사실 진정한 통합과 융합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부터 모든 부분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 중에 일일생활권으로 엮인 지구촌에 살면서 아군과 적군, 흑백논리 등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한 시대잖아요. 그래서 친환경과 에코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고, 병원 운영에 있어서도 ‘요람에서 무덤에서까지’라는 말처럼 우리 삶에 연관된 긍정적인 접점을 찾아나가고 싶은 바람입니다. 더 나아가 요즘은 개인의 삶이 파편화되어 있어서 어떤 연결고리가 필요한데, 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만과의 교류, 건강과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떤 분야든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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