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낸 대한민국 최초 앵커 봉두완 내가 만난 대통령·명사와의 추억

2005-01-04     매거진플러스

신문기자, 앵커맨, 국회의원, 대학교수 등 각기 다른 곳에서 세상과 조우했던 봉두완 회장이 고희를 맞아 회고록 ‘앵커맨’(랜덤하우스중앙)을 냈다. 봉사활동으로 여전히 바쁜 그를 만났다.

 

글 _ 신규섭 기자
사진 _ 박해묵 기자

 


‘설교는 짧고 소시지는 긴 것이 좋다고 했다. 나도 그 말을 따르려 한다. 아름다운 뒷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어하는 늙은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세상에 보낸다.’
고희를 맞아 내놓은 회고록 ‘앵커맨’의 서문에서 봉두완 회장은 그렇게 밝혔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평생 한국 최초의 앵커맨이란 자부심을 가슴에 안고 살았다는 봉두완 회장. 정치인, 대학교수 명함을 가졌던 그를 만난 곳은 가톨릭회관 내 작은 사무실이었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천주교 한민족돕기회 회장이라는 직함이 인쇄돼 있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는 나환자촌 돕기와 북한주민돕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여전히 바쁘다고 했다.
그는 인생을 총정리하는 기분으로 이번 책을 집필했다. 그렇다고 그의 삶의 연대기가 아니니 자서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수필집은 더더욱 아니다. 내 삶을 키워드로 삼아 우리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본, 봉두완의 세상 구경 혹은 세상 간섭 정도로 보는 게 좋을 듯하다.
책을 통해 최근 한국 사회를 우려하는 신보수주의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전공(?)을 살려 한미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봉두완이 만난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한 이야기’이다. 그 중 그를 한국 최초의 앵커맨으로 만들어 준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과의 인연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이병철과 박정희의 견제 사이에서
자유롭게 방송


대학 졸업 후 신문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가 ‘쓰는 기자’에서 ‘말하는 기자’로 변신한 것은 이건희 회장과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주미 한국일보 특파원으로 있을 때 이건희 회장은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공부하며 결혼도 하고 첫아이도 낳으며 조용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