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옥인동 박노수 가옥 이야기
2014-10-09 이윤지 기자
문화예술인 생가 탐방 1
도심 속 박노수 화백의 작업실을 만나다
취재 이윤지 기자 | 사진 양우영 기자
70여 년간의 긴 세월동안 풍파를 겪으며 증축, 수리를 거쳤고 남정 박노수 화백이 소유해 2011년 말까지 거주했다. 박노수 화백 소유 이후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자료로 지정돼 보존하고 있다.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박노수 가옥의 집에 들어서면 아담한 정원과 빨간색 2층 벽돌이 눈에 띈다. 정원에는 엄나무와 향나무, 살구나무, 매화나무 등 각종 나무들과 여러 개의 수석들, 석등 등이 정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박노수 화백의 작품 ‘사색의 순간’에 담긴 백모란의 실제 모습도 볼 수 있다. 박노수 미술관은 서울시 제1종 미술관으로, 박노수 화백의 작품을 비롯한 컬렉션 총 1천여 점(작품 500점, 수석 379점, 고가구 및 애장품 115점)을 볼 수 있는 예술품의 보고다. 종로구는 박 화백이 오랫동안 살던 집에 이들 작품을 들여놓아 아름다운 미술관을 만들었고 미술관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와 다양한 연계 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1층에는 응접실과 거실, 안방, 식당과 부엌이 있고 2층에는 화실 겸 서재와 공부방, 다락방, 지하 1층에는 방이 2개 있다. 1층은 적벽돌, 2층은 회벽에 수성페인트를 칠했고, 지붕은 기와를 얹은 데다 2층에 발코니가 달려 있다.
1층 전시관에서는 강가에서의 사색을 표현한 작품 ‘고사’, ‘수변’, ‘강변’을 볼 수 있다. “동양의 산수화는 자연의 재현이 아니고, 무한히 생동하는 작가의 세계를 희구하는 것이며 작가는 그림 속 산수에서 노닐고자 한다”는 생전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깎인 언덕과 언덕 위의 빨간 지붕 집이 인상적인 ‘고사 2’는 가운데에 곧은 나무를 배치해 배와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어 독특하다. 이외 연작과는 달리 사람이 강에 뜬 배를 등지고 오른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으며, 푸른빛으로 칠한 나뭇가지들도 오른쪽으로 늘어져 있다. ‘고사’ 연작, ‘강변’과 ‘강’ 연작 등 수변을 그린 연작들에서 그 구도의 변화폭을 크게 주지 않은 박 화백에게 이 그림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대체적으로 이 연작들은 멀리 바라보고 느리게 생각하는 사색, 산책을 표현하기 위해 인물의 시선을 먼 곳에 두도록 하고, 배에 올라 있거나 바라보는 쪽에 띄워놓아 일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고사 2’는 다소 선명한 대비를 써서 배와 인물을 서로 등지게 두고 인물이 강을 바라보지 않고 있어 남다르다. ‘세마도’의 경우 밝은 연둣빛의 언덕이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다른 작품과 비교할 때, 조금 작은 판형에 세로로 뺀 구도와 봄을 맞은 듯 한껏 투명한 산수가 오랫동안 마음을 사로잡는다.
박노수 화백의 막내딸이자 이 미술관의 학예사인 박이선 씨는 “햇빛이 쏟아지는 이곳의 창문을 열어 정원을 내려다보며 화탁에 서서 그림을 그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평생에 걸친 산수화 작업은 산을 사랑해 가까이 두고자 했던 작가의 마음과 닿아 있다”고 소개했다.
수목이 우거진 한국화 속으로 사람이 빨려 들어가는 장면인 1980년 작 ‘류하’에는 파란 버드나무 밑으로 이제 막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한 소년이 서 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소년의 발걸음을 따라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이곳에 걸려 있는 그의 산수화는 산을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꾸며 강렬하게 표현한 반면 주변은 담백하게 색을 입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림에서 알 수 있듯 박 화백은 전통적인 소재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했다.
1956년부터 7년간 이화여대에서, 1962년부터 20년 동안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한 박 화백은 1982년 교수직에서 물러나 전업 작가의 삶을 선언했다. 그 뒤 ‘달과 소년’, ‘고사’, ‘월화취적’ 등 그를 대표하는 수많은 대작을 완성했다. 도쿄, 스웨덴, 미국 등 다수의 국제전과 10여 차례 국내외 개인전을 가졌으며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회원으로 선정됐다.
전통적인 화제를 취하면서도 간결한 운필과 강렬한 색감, 대담한 터치 등의 독자적인 신화풍을 구축해 전통 속에서 현대적 미감을 구현한 작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1년 사회 화원에 뜻을 품고 종로구와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 설립을 위한 기증 협약을 맺었다.
“조원자(造園者)는 무릉도원이나 봉래선경에서 노닐고자 한다. 이는 아름다운 낙원을 동경하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또 사람이 보다 사람답게 살자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박노수 화백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정원’의 의미에 관해 이와 같이 밝혔다. 집 주변에 심은 대나무, 감나무, 배롱나무, 단풍나무, 목련, 두충나무, 백일홍, 모란, 작약 등의 갖가지 식물, 화가가 직접 수집해 정원 곳곳에 배치한 각양각색의 정원석과 수석, 석등, 석상, 향로석 해태상 등은 그의 ‘낙원’에 대한 표현을 증명한다. 집 앞의 정원은 박 화백의 정갈하면서도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철학과 미감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직접 제작한 정원석은 단순하면서도 안정적인 구조가 인상적이다.
앞으로 종로구는 박노수 미술관과 함께 주변 ‘윤동주 문학관’, 겸재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수성동’ 그림의 배경이 된 수성동 계곡, 한옥마을, 골목, 공방과 갤러리 등을 연계한 프로그램들을 계획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