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민정수석, 그가 살아온 이력과 매력

2017-07-16     백준상 기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하다 문재인정권에서 중책을 맡은 조국 민정수석. 실력과 외모 겸비한 새 정권의 개혁가로서 검찰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의 살아온 이력과 매력에 대해 알아봤다.

취재 백준상 기자 | 사진 서울신문DB, 온라인 커뮤니티


새로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조국 민정수석(52·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가 수장을 맡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새 정부의 개혁과제 1순위인 검찰 개혁을 추진할 부서로 꼽히는 곳이다.

조 수석은 자리에 임명된 지 불과 며칠 만에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는 검찰 개혁을 끝내야 한다”고 개혁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진보적 성향의 소장파 법학자로서 그동안 여러 방면으로 검찰 개혁을 주장해온 그는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고 검찰을 개혁하는데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 수석은 2010년 공저로 펴낸 책 ‘진보집권플랜’에서 진보정권의 성공을 위한 과제로 사회/경제 민주화, 교육 민주화, 남북문제 전진과 함께 검찰 개혁을 꼽은 바 있다. 평소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로 문 대통령의 ‘멘토’로 불렸다.

그는 지난 2012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며 문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문 대통령의 더불어민주당 대표시절에는 혁신위원으로 활동하며 당 혁신 작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찬조연설에 나섰으며, 대선을 앞두고 홍익대 앞에서 진행된 ‘프리허그’ 행사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일 오전 페이스북에 “12년 대선보다는 덜 했지만, 이번 대선도 온/오프라인 일선에서 뛰었다”며 “예상대로 다시 한번 온갖 욕설, 조롱, 비방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정권교체와 사회개혁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컸기에 기꺼이 감수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학인(學人)으로서의 삶을 사랑하는 제가 ‘직업정치인’이 될 리는 만무하겠지만, 언제나 ‘참여형 지식인’의 책임은 다 하겠다. 우리의 삶이 유한의 운명이지만 아름답듯이, 정치도 난투극의 운명이지만 소중하다”는 글도 남겨 관심을 끌었다. 그의 예상과는 빗나갔지만, 그의 정치인으로서의 행보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글이 아닐 수 없다.

후배 박종철의 죽음으로 지식인의 역할에 눈떠

부산 출신의 조국 민정수석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법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로스쿨에서도 법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울산대 전임강사로부터 시작해 동국대 법대 조교수, 서울대 법과대 교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거쳤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등을 지내기도 했다.

한겨레신문 선정 ‘한국의 미래 열어갈 100인’, 경향신문 선정 ‘한국을 이끌 60인’, 동아일보 선정 ‘2020년을 빛낼 대한민국 100인’ 등에 선정되며 국가의 미래에 희망을 가져다 줄 지식으로서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 왔다.

조 수석은 남부럽지 않은 집안 출신에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화려한 학력과 경력의 지식인이다. 그럼에도 현재 살고 있는 서초구에 빗대어 ‘강남좌파’라고 불리고 있다. 그의 진보적 성향은 대체 어떻게 형성된 걸까?
 


조 수석의 진보 성향은 지난 70, 8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조 수석이 보낸 고등학교 시절에는 부마항쟁(1979년), 10·26사태(1979년), 서울의 봄(1979~1980sus), 5·17사태(1980년), 5·18민주화운동(1980년), 제5공화국 출범(1981년) 등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기에 고교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들어온 조 수석은 더 이상 모범생이 아니었다.

1982년 16세에 서울대에 최연소 입학하여 법대 언론/학술지 FIDES 편집장으로 학생운동에 관여해 경찰의 사찰을 자주 받았다. 캠퍼스에 항상 경찰이 주재하는 당시 상황에서 한 번은 경찰서에 끌려가 이유 없이 두들겨 맞고 소지품 검사를 당하기도 했다.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란 미국 드라마를 보고 법대를 지원했지만 대학생활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 수석이 사법시험을 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것도 그때였다. “당시 육법당(육사 출신과 법조인이 가득했던 민정당을 비꼰 말)이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부산지역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다 서울대 대학원 시절이던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터졌다. 박종철은 그의 고등학교 1년, 대학교 2년 후배였다. 자신의 옆에 있던 사람, 자신과 알고 지내던 사람, 게다가 학생운동을 쉬고 있던 후배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제 활동을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종철이가 있는 것 같아요. ‘종철이가 살았더라면, 이런 일을 했을 것 같다’, 일종의 부채의식일 수 있는데, 종철이가 바랐던 세상에 대해 일종의 기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죠. …”

조 수석은 1989~1990년 석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울산대 교수로 근무하던 1993년 사노맹 사건과 얽혀 5개월간 구속되기도 했다. 서울대 법대 1년 선배로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주도한 백태웅 씨를 돕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조 수석은 “사노맹의 내용과 강령을 보면 요즘의 진보 정당과 큰 차이가 없다”며 “의견 차이는 좀 있었지만, 자본주의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선배를 도와줬다”고 해명했다. 투옥 직후 국제 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양심수로 지정되었으며, 구속에서 풀려난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외모·실력·인품 갖춘 데다 첫사랑과 결혼까지 


조국 민정수석은 1965년 고 조변현 전 웅동학원 이사장과 박정숙(현 웅동학원 이사장) 화백과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웅동학원은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웅동중학교를 운용하는 사학재단으로, 최근 지방세 체납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조 수석의 어머니인 박정숙 이사장은 “2013년 별세한 저의 남편인 고 조변현 전 이사장께서 장기 투병하였던 관계로 여력이 되지 않아 납세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보도 이후 급전을 마련해 2200여만 원을 완납하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웅동중학교의 전신은 1908년 건립된 ‘계광학교’로, 이 학교 교사들은 독립운동에 나선 이유로 처벌받았는데 그들 중에는 조 수석의 친척 일가도 많았다고 한다. 조 수석의 아버지 조변현 전 이사장은 1985년 재정이 어려운 학교법인을 인수해 25년간 운영했고, 2010년 박정숙 화백이 이사장직을 이어받았다. 박 이사장은 “재단 인수 후 사립재단에서 흔한 이사장용 자동차, 법인카드, 활동비 등을 제공받은 적이 없다”고 밝혀 비판을 잠재웠다.

웅동중학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2001년 지인의 부탁으로 이 학교에서 ‘명사초청 특강’을 했으며 “대통령이 되면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3년 진해해군사관학교에 왔다가 웅동중학교를 재방문해 약속을 지켰다. 

부산대 간호학과를 나와 초등교사로 재직했었던 박정숙 이사장은 뒤늦은 53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 대한민국미술대전, 부산미술대전에서 입선하고 아트페어에 출전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은 화가이기도 하다. 지난 4월 부산에서 팔순기념 작품전을 열기도 했다.

조 수석은 어머니에 대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분단, 권위주의 통치를 몸소 겪으면서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헌신했다. 어머니께서 살아온 인생, 그림에 대한 열정이 참으로 놀랍다”고 언론에 말하기도 했다.

조 수석은 남들보다 2년 먼저 학교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최연소 서울대 입학과 울산대 교수 임용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어릴 적 같이 놀던 2년 연상의 형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하자 그들을 따라 청강하겠다는 생각으로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나 적응을 잘해 그냥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조 수석은 중학교 때는 전교 10위 이내를 유지했고, 고등학교 때는 전교 1, 2등을 다퉜다.

서울대에서도 연구업적은 톱 랭킹이고, 피인용지수는 법학자 중에 제일 높은 쪽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조 수석과 친한 동양대 진중권 교수는 조 수석이 “얼굴이 잘 생기고 키가 큰데다 공부도 잘하며 착하기까지 한 ‘짜증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수는 조 수석이 “주장이 센 것이 아니라 표현이 정확하며, 예절과 자세가 아주 좋아 미움을 증발시킬 수 있지만 신언서(판)이 다 있어 얄미움 유발형일 순 있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조 수석의 인격과 품위가 참 반듯한데 외모가 그에 대한 주목을 방해한다고 덧붙였다.

조 수석은 실력 못지않게 수려한 외모로도 유명하다. 대학시절 여학생들에게 많이 시달려서 외모가 오히려 콤플렉스라고 하는데, 185㎝의 키와 외모는 아버지를 닮은 것이라 했다. 조 수석의 절친인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조변현 전 이사장이 더 수려한 외모를 지녔다고 평한 바 있다.

그런 조 수석은 대학에서 자연스럽게 만난 첫사랑과 결혼하고 미국 유학도 같이 갔다. 진중권 교수가 있는 동양대학교 교양학부에서 영어영문학을 가르치는 정경심 교수가 부인이다. 다른 여학생들과 달리 직접 커피 한 잔 하자고 한 것이 인연이 되어 교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정 교수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에버딘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현재 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