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후손 25명, 광복절 맞아 대한민국 국적 취득

2017-08-11     백준상 기자

일제 강점기 국내·외에서 일제에 항거하다 목숨을 바친 독립유공자들의 후손 25명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법무부는 11일 오전 11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그동안 외국국적으로 살아오다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독립 유공자 후손 25명을 대상으로 국적증서 수여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독립유공자 남자현 선생, 김규면 선생, 이승준 선생 등의 후손 25명이 국적증서를 받았다. 이번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국적법 제7조 규정에 따라 그 직계존속 등이 독립유공으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포장 등을 받은 사실이 있어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특별귀화허가를 받은 사람들이다.

남자현 선생은 1919년 3·1운동 참가 후 만주로 망명하여 서로군정서에 참가했다. 1925년 서울에서 일제총독 암살을 계획하다 미수에 그치자 만주로 돌아가 양기탁 등이 재만 독립운동단체의 통일을 발기하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32년 국제연맹 조사단 조사 시, 왼손 두 마디를 잘라 조사단에 보내 우리의 독립정신을 국제연맹에 호소하였다. 1933년 일본대사관 무토 노부요시를 격살할 계획 하에 무기와 폭탄을 운반하다 체포된 후, 1933년 8월 22일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김규면 선생은 1919년부터 대한신민단 단장으로 활동하였고, 동년 11월 중순 블라디보스토크에 독립단을 조직하여 무장독립운동 전개했다. 1920년 10월 대한의민회, 대한국민회, 대한광복단을 병합하여 총판부를 조직하고, 1921년 창해청년단을 조직하여 단장으로 활동했다. 1924년 5월에는 임시정부 교통차장 및 교통총장에 대리에 선임되고, 이후 모스크바, 끄르임(크림반도,Qırım) 등지에서 생활하다 1969년 사망했다. 200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이승준 선생은 1924년부터 1934년까지 쿠바에서 대한인국민회 마딴사스 지방회 구제원으로 활동했으며, 1928년에는 한인동포 국어교육운동을 전개했다. 1930년 광주학생운동을 원조한데 이어 1931년경부터 1945년에 이르기까지 독립금 약 44원 58전을 지원했다. 2011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됐다.

[Queen 백준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