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빛과 회화의 물감이 빚어낸 크로스오버’ 사진작가로 변신한 이상벽 & 서양화가 이두식 교수

2009-06-19     매거진플러스

오래된 인연

한 사람이 태어나 여러 가지 일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모작도 모자라 인생 삼모작을 성공적으로 일궈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방송인으로 유명한 이상벽이 그 주인공이다. 또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인데, 한평생 미술계에 몸담으며 국내외에 추상화로 널리 이름을 알려온 이두식 교수의 삶이 그러하다. 40년 지기인 두 명사가 함께한 작업은 그래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취재_ 황정호 기자  사진_ 우미진(프리랜서)


“대학 동기로 맺은 인연, 서로 다른 분야에서
최고를 지향하던 두 사람이 만들어낸 우정의 하모니”

KBS ‘아침마당’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탁월한 진행 솜씨를 자랑했던 방송인 이상벽. 누가 뭐라 해도 방송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있던 그가 3년 전, 돌연 사진작가로의 전업을 선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선택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방송인이 되기 전, 모 일간지 기자로서의 경력도 존재하기 때문. 게다가 사진작가는 그가 방송인, 기자로 활동하기 이전부터 가슴속에 품어온 꿈이었다. 홍익대학교 디자인학과를 다니며 부전공을 했던 기억으로부터 무려 40여 년이라는 세월을 돌아 다시 시작한 사진. 그러나 어느새 마이크 대신 카메라가 들려 있는 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성공적인 변신을 하며 신진작가로서 프로필을 더해가고 있다.
3년 차 사진작가로 그가 이제까지 주제로 삼아온 것은 ‘나무 이야기’. 일곱 번의 전시회를 개최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그가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사진과 회화의 혼합을 시도한 것. 바로 그의 40년 지기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양화가 이두식 교수의 제의로 이뤄진 공동작업이다.
홍익대학교 65학번 동기로 처음 만난 이두식 교수는 이상벽과 죽이 잘 맞는 최고의 친구이자 예술가. 방송계에서 이름을 떨친 친구 이상벽 못지않게 이 교수 역시 오래전부터 국내 화단에서 입지적인 명성을 쌓은 것은 물론 추상화의 대가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다. 40년 우정의 두 사람이 함께한 작업은 모두 10점의 특별한 작품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이상벽+이두식展’이라는 이름으로 그 첫 시작을 알리며 서울 인사동 김영섭사진화랑에서 만난 두 사람의 얼굴은 흐뭇한 만족감과 적잖은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우정으로 의기투합, 이심전심으로 개최한 뜻깊은 전시회
“대강 방송을 접어놓고, 학창시절 디자인을 전공하고 그나마 카메라를 부전공으로 만질 수 있었던 추억으로 유턴하게 된 것만 해도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감성도 살아 있어야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면 건강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이두식 교수 같은 훌륭한 친구가 거들어주기까지 했어요. 이런 전시회가 성사된 것만으로도 전 대단히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의 수준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경력이 일천한데도 친구이기 때문에 함께해준 이두식 교수에게 감사합니다.”
와이셔츠 소매까지 걷어붙이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이상벽의 얼굴에는 연신 미소가 번졌다. 방송을 뒤로하고 사진작가로 첫발을 내딛을 때만 해도 생각지 못했던 자리이기에 더욱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카메라를 잡은 후, 매일 동트기 전에 일어나 40년 동안 미뤄둔 한풀이를 하듯 사진을 찍었다는 그. 생방송으로 진행된 ‘아침마당’을 할 당시에도 단 한 번의 지각을 하지 않았던 그의 부지런함은 사진작가가 된 이후에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런 친구의 욕심과 열정을 아는 이두식 교수 역시 이번 전시회가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평생 화가로서 한길을 걸으며 국내외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가졌지만 우정으로 시작된 이번 전시회는 예술가의 욕심을 떠나 유쾌하기 그지없다.
“대개 전시회를 한다면 미학적, 조형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오늘은 이상벽과 저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처음 사진작가로서 개인전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갔을 때가 기억납니다. 물론 좋은 작품일 거라 생각을 했는데, 그 이상이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반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문득 ‘이 친구의 사진에 내가 가필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스치더군요(웃음). 오늘에서 그걸 실현하게 된 거죠. 오늘 걸어놓은 작품을 보니 사실 제 입장에서 부끄럽기도 합니다. 이 친구의 좋은 작품에 괜히 장난치듯 칠해놔서 좋은 사진을 버린 게 아닌가 하는 당혹감도 들고요.”
신진 사진작가로 변신한 친구와 함께하는 감회 또한 남다르다는 이 교수. 대학 동기 시절부터 만나 기자와 방송인의 삶을 살아온 친구의 인생을 지켜보았기에 그러한 변신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방송을 했지만 홍익대학교 미대 시절부터 보아온 친구 이상벽의 감성은 이미 당시부터 조형적인 감각이 완성돼 있었다.
“이상벽이 카메라를 잡는 것이 어색한 일은 아니었어요. 이번 전시 역시 늘 서로 토론도 하고 같이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성사가 된 겁니다.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사진과 회화의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미술사를 보자면 미국의 만레이와 같은 초현실주의 작가가 자신이 작업한 사진에 직접 회화적인 요소를 가미했던 선례도 있고요. 그런 것을 보자면 사진과 회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지금은 양쪽이 너무 갈리다 보니 마치 다른 장르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죠. 사진도 예술입니다. 아무튼 친구가 만족을 한다니 저 역시 좋습니다(웃음).”
이번 전시의 주제 역시 이상벽이 사진작가로 나서면서부터 고집해온 나무에 관한 것이다. 그의 감성으로 포착된 나무의 목소리는 이 교수의 감성이 덧입혀져 독특한 작품으로 완성됐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이번 작업은 즐거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상벽에게는 이 교수의 가필 작업을 염두에 두며 사진을 찍는 과정을 통해 비구상적 사진으로 작업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나무는 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부터 생활의 연장선상이었잖아요. 열매도 얻고 농기구부터 시작해 자치기, 팽이, 땔감까지 모두가 다 나무였죠. 그런 의미에서 나무는 우리 세대에게 아주 익숙한 소재예요. 이번에는 그런 나무의 목소리를 사진화했어요. 작업을 하다 보면 저나 이 교수나 그런 나무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보이기도 했죠.”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독특한 매력을 풍기고 있다. 정적인 이상벽의 사진은 이 교수의 가필로 동적인 생명력까지 포함하게 된 것. 그렇게 두 사람의 손길이 닿은 작품의 한 귀퉁이에는 그들이 쌓아온 우정을 상징하듯 나란히 각자의 서명이 자리하고 있다.
 
서로를 ‘재담가’라고 칭하는 그 시절의 유쾌한 기억
굳이 우정을 바탕으로 한 친구로서가 아니라도 두 사람의 작업이 가능한 이유는 또 있다. 1947년생 동갑내기로 같은 세대의 시대적 경험과 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 더구나 학창시절을 함께 보내고 군대까지 ROTC 장교로 함께한 동료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말솜씨와 죽이 잘 맞는 성격 탓에 대학시절부터 명콤비였다는 두 사람. 서로를 재담가였다고 표현하며 지난 이야기를 꺼내놓는 그들의 얼굴에는 유쾌한 웃음이 가득했다.
“예술가에게 보이는 두 가지 특징이 있어요.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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