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보도하는 대표 기자가 되고 싶어요" 신세민 아리랑 TV 기자

2018-08-31     송혜란기자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강한 여성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아침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를 진행하다 최근 청와대 출입기자로 발령이 난 아리랑TV 신세민 기자. 4년 만에 앵커 자리에 올랐음은 물론, 6년 차에 청와대 출입 기자까지 하는 등 그녀의 커리어는 돋보인다. 기자로 생활하며 한 인간으로서도 어마어마한 성장의 과정을 겪고 있다는 그녀를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눈에 보아도 당찬 여성상이 돋보이는 아리랑TV 신세민 기자. 지난 5월 미국의 소리 방송과 함께 전 세계에 남북, 북미정상회담 소식을 전하기도 하는 등 앵커로서 활발한 할동을 펼친 그녀가 최근 청와대 기자로 발령이 났다. 여느 앵커 같으면 그런 사실에 위축될 법도 하지만 신세민 기자의 얼굴은 오히려 밝아 보였다. 그녀는 취재기자가 더 맘에 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기자는 내 천직
“솔직히 매일 몇 시간 동안 집중한 끝의 결과물을 접할 때 느껴지는 희열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그 순간을 위해 매번 끼니도 놓치고, 어김없이 대기하며 취재하러 다니는 일상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기도 하지만요. 고단한 만큼 그 날의 수고가 고스란히 담긴 취재 결과물이 제게는 가장 큰 보람입니다. 기자로서 만족하지 않은 날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입사 4년 만에 남들이 그토록 꿈꾸는 앵커 자리에 올랐을 때도 취재 일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어 아쉬운 마음이 컸다는 신 기자.

“제 삶이 하루하루 달라질 수 있어서 기자가 되었으니까요. 매일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을 직면하고 싶었어요. 기자로서 기사를 발굴하고, 취재를 준비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모든 스케줄도 능동적으로 짜면서요. 반면 앵커는 수동적이지요. 스튜디오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직접 컨트롤 할 수도 없고요.”

이러한 그녀의 마음이 널리 가 닿은 것일까? 1년 반의 앵커생활을 마무리한 그녀는 최근 청와대 출입기자로 발령이 났다고 매우 기뻐했다.

“이제는 내근 근무가 아니라 파견직이에요!(웃음)”

이와 함께 단연 부담도 따를 터. 한 나라의 수장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며 영어 뉴스로 리포팅 해야 하는 업무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말을 영어로 바꿔 이야기할 때는 뉘앙스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달라질 수 있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저는 가타부타할 것 없이 딱 전달만 하려고 해요. 청와대라는 특성상 다른 부처보다 덜 자유로울 수 있지만 그만큼 주어지는 특권도 있다고 해요. 정말 기대되는 일들입니다.”

어느덧 6년 차가 되었음에도 그녀는 출근길에 외신 뉴스를 들으며 발음연습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하루하루가 심장 떨리는 돌발상황 연속인 데다 잠이 부족한 기자 라이프도 분명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기자가 되어 참 행복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손지애 선배님처럼

6년 차에 청와대 출입기자까지 업무가 버거울 법도 한데 그녀는 이 또한 자신이 목표로 하는 기자로 나아가는데 탄탄한 준비 과정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앞으로 그녀의 꿈은 한국을 보도하는 대표기자가 되는 것이다. 세계라는 방송 무대를 놓고 보았을 때 누구보다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사람으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그녀는 강한 포부를 밝혔다.

“해외 방송국의 한국 외신 기자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방법으로 어떤 루트를 택하는지는 상관없어요. 다만 그 기자가 어떠한 결과물을 내는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아직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누군가 ‘신세민 기자’라고 했을 때 ‘아, 한국에 대한 뉴스는 완벽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CNN 지사장과 아리랑TV 사장으로 계셨던 손지애 선배님이 가장 가까운 롤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남북 관계에 진전이 있을 때 한국 사회를 잘 아는 기자가 자기만의 언어로 세계에 보도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이점이 상당하다. 이에 늘 자신감을 갖되, 절대 자만하지 않으려고 마음가짐을 바로 잡는다는 신세민 기자. 그녀는 기자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무한히 성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각이 훨씬 넓어졌어요. 이제는 어떠한 사건도 어떠한 사람도 단편적으로 보고, 이해하지 않게 되었지요. 기자라는 직업이 제 삶에 매우 소중한 선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그녀가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보여줄 활약도 기대해본다.

 

어머니의 남다른 학구열, 엘리트 코스를 밟다

신세민 기자는 어려서부터 치마보단 바지를 즐겨 입을 정도로 보이시한 성격이 강했다고 했다. 그만큼이나 꽤 활동적이었던 그녀의 발길을 붙잡았던 것은 TV 속 뉴스.

“아침저녁마다 아버지가 보시던 뉴스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어요.”

그게 시발점이 되어 중·고등학교 방과 후 활동 때도 계속 관련 분야를 지원한 신 기자. 특정한 직업보다 직군을 먼저 정했던 그녀는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화면 밖에서 조명을 봐주는 사람, 소리를 조절하는 사람 등 다양한 역할을 경험했다. 사실 처음엔 PD가 목표였던 그녀가 결국 기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대학 학부 생활 때부터이다.

29년 전 아버지가 유학 중이던 미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전북외국인학교, 대전국제학교를 졸업한 후 방송 분야에 특화된 보스턴 에머슨 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기자라는 뉴스의 세분화된 직업군까지 알게 된 것이다.

다행히 고등학교 시절 입시를 위해 말하기대회에 나가 수상한 경력이 많았던 그녀에게 기자 지망생으로서 경쟁력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국제학교 출신에다 보스턴에서 유학까지 했으니 영어 실력은 의심할 여지조차 없었다. 기어코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 별 어려움 없이 아리랑 TV AD를 거쳐 기자로 입사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어머니의 학구열이 큰 몫을 했다며 감사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젊어서 바이올린을 전공하셨던 어머니가 결혼 후 자신이 못다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을 저에게 많이 투영하셨어요. 유치원생 때부터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씩 꼭 동화책을 소리 내어 읽도록 훈련하셨지요. 그때도 어린이가 나갈 수 있는 말하기대회인 구연동화대회에서 상을 여럿 받았어요. 아주 어려서부터 읽고 말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피치 능력이 향상됐던 것 같아요.”

이어 영어공부도 마찬가지다. 태어난 곳이 미국이었을 뿐 오랫동안 한국에서 자란 그녀는 스스로도 생활영어가 많이 부족했다고 토로했다. 특별한 영어공부 비결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여느 대치동 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명한 영어학원 다니며 닥치는 대로 공부했어요. 영화도 되도록 자막 없이 보며 듣기 실력을 키우려고 애썼고요. 대학 때 미국으로 유학 가서도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최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며 영어적인 사고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때 무조건 반복해서 읽고 듣고 말하고 쓰라던 어머니의 교육법 덕에 참 운이 좋게도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빨리 영어를 습득할 수 있었다는 신세민 기자.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참 현명하셨던 것 같아요. 앞으로 영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텐데요. 제가 어떤 일을 하든 그 부분에서만큼은 부족함 없이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주려고 하셨으니까요. 저 역시 직업을 선택할 때 영어로 인해 선택의 폭을 더 넓힐 수 있었거든요.”

그녀는 기자가 된 지금도 어머니가 자신의 방송을 직접 모니터링하며 전문가다운 조언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 촬영 협조 가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