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기행-명륜동과 혜화동 사이

대학가 골목과 문화재의 이색 정취를 즐기다

2021-02-06     최하나 기자

 

고궁을 찾기엔 아직 춥지만 오래된 골목들을 걷다 우연히 만난 고궁 같은 느낌의 문묘는 이색적인 골목 여행 경험을 안겨다 준다. 명륜동에서 혜화동까지 걷는 길엔 대학가 주변 좁은 골목의 아가지기함도 문묘의 고풍스러움도 모두 있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동물원의혜화동이란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노래 속에 담긴 정서에 공감했다. 혜화동은 서울 중심가의 오래된 주거지역으로 서울이 지금처럼 넓은 지역을 아우르지 않고, 학교나 많은 시설들이 강남으로 옮겨가기 전 서울 토박이들이 많이 살던 동네였다. 혜화동은 도성의 4소문 가운데 하나인 혜화문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삼선동과의 경계 지점에 혜화문이 있고 그 아래 쪽, 광화문으로 가는 방향에 혜화동이 있다.

 

그 옆 동네 명륜동은 또 어떤가. 역시 마찬가지다. 명륜동은 이름 그대로 명륜당에서 유래한 지명인데 명륜동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지명과 관계된 단어는 성균관이다. 조선시대 유학 기관인 국립대학 성격의 성균관 유생들의 캠퍼스였던 곳이 바로 여기 있다. 사실 우리에겐 성균관하면 드라마성균관 스캔들이 먼저 떠오를 지도 모르겠다. 남녀 주인공과 꽃 같은 성균관 유생들이 젊은 날을 보내던 곳이 성균관, 명륜당임을 생각하며 뜰을 걸어본다면 서울의 그 어느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기분에 젖을 것이다.

명륜당이 있는 성균관은 성균관 대학교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서 조금만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지점부터는 마치 민속촌으로 갑자기 보내어진 듯, 아니면 조선시대로 타임슬립된듯 한 기분이 들게 된다.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돌담과 당연히 몇 백 년은 되어 보이는 건물을 이루고 있는 목재들, 기와 등이 이제껏 걸어온 골목길과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이곳에 다른 목적 없이 산책만을 위해 들어선 이들이라면 별다른 사전지식 없이도 무엇엔가 끌린 듯 성균관 그리고 명륜당까지 발길을 옮기게 될 것이다. 사실 명륜당은 가을에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잘 아는 사람들이 꼭꼭 숨겨놓은 도심 속 단풍 명소라고 해도 좋을 만큼 노랗고 붉은 단풍들이 오래된 고적인 성균관, 명륜당과 어울려 근사한 풍경을 만들어내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겨울에도 명륜당은 한번쯤 찾아볼만 하다. 인적이 드물어 조용한데다 고궁보다 작은 규모의 고건물은 그동안 방문했던 고적들과는 차별되게 색다른 느낌을 준다.

명륜당 안에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들도 전시해놓았으므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찬찬히 하나씩 둘러보는 것도 좋다. 성균관은 교육기관이기도 했지만 유교를 창시한 공자를 비롯해 많은 유학자들의 신위를 모셔 제사 지내는 문묘이기도하다. 성균관 안의 명륜당에는 오늘날의 도서관격인 서재가 있고 앞마당에는 몇 백 살 혹은 천 년이 넘었을 지도 모르는 은행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앞에 서면 누구나 저절로 겸허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명륜동에서 조선시대를 경험한 후엔 성균관을 나와 계속 걷던 방향을 향해 걷는다. 대학가 주변을 벗어나면 상가는 줄어들고 한적해지는데 그것이 오히려 산책을 좀 더 사색적으로 만들어준다.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명륜동에서 혜화동으로 넘어가는 길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커브를 틀면 혜화동 로터리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혜화동 길은 60~70년대 같은 야트막한 담의 주택들이 늘어서 있는 옛 동네 골목 모습이 다. 그 탓에 한국의 근현대를 만날 수 있다. 자질구레한 완구와 문구용품을 파는 문구점도 있고 아직도 빨간색과 파란색이 어우러진 표시등이 돌고 있는 옛날 간판의 이발소도 있다. 앞서 얘기한 동물원의혜화동이 생각나는 풍경이다. 이런 저런 구경으로 시선을 돌리며 걷다보면 눈에 띄는 벤치 하나를 만나게 된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중년의 신사 동상이 책을 들고 벤치 끝에 앉아 있는데 벤치에 앉은 이는 제2공화국 총리였던 장면 총리이다. 그 뒤로 그의 집이 보이는데 혜화로5길에 있는 장면가옥이다. 낮은 담의 근대 가옥 형태를 보여주는 장면가옥은 등록문화재 357호로 1930년대 건축된 것인데 그대로 보존되어 건물 양식만으로도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장면가옥 외에도 성균관로 쪽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집터가 있어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서울의 한 자락이다.

 

대학가의 생기 있고 활기찬 분위기와 문묘에서 보내는 고즈넉한 오후 그리고 근현대 풍경 속을 거니는 골목여행을 할 수 있는 명륜동에서 혜화동 길. 이곳을 찾으려면 전철 4호선 혜화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와 성균관 대학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 산책로를 잡는다. 또는 1번 출구로 나와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 혜화동 길을 따라 성균관 방향으로 걷는 두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글 사진 최하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