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늘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 반백년을 지나온 연기 혼(魂), 국민배우 이순재

2012-02-17     매거진플러스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오래도록 찾아 헤매던 인연 인연들
  
찾을까 싶어 겨울 밤 발길 재촉하며
돌고 돌다 한숨 몰아쉬니
  
비바람 풍상 견디며
꿋꿋이 살아온 거목
그 자리를 지키네
  
국민배우 이순재
  
세상사 허망하여 누군가 의지하고 싶을 때
마지막 한 사람과 인생을 의논하고 싶을 때
만나고 싶은 사람
  
귀한 인연 맺으며
따스한 햇살 맞으며 함께 가는 소풍 길
동행하고 싶은 사람
  
이순재
 
만나면 좋은 사람
만나면 반가운 사람
만나면 이웃이 되는 사람

2012년 1월   변호사  이재만

 


배우 이순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어느덧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지만 이순재의 연기 인생에는 쉼표가 없다. 지난해부터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천 번의 입맞춤>과 한 노인의 용기 있는 도전과 희망을 전하는 연극 <돈키호테>에 이어 2월부터 방영 예정인 드라마 <한반도>, <더킹>까지 젊은 배우들도 감당하기 힘든 바쁜 스케줄을 거뜬하게 소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그는 무대 위에서 새 힘을 찾고, 삶의 의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연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후학 양성에도 큰 뜻을 품고 대한민국 문화예술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배우 이순재는 ‘열정’의 상징이자 ‘희망’의 수장이었다.

이재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 리바이벌하는 연극 <돈키호테>에서 노장 돈키호테로 열연을 펼치셔서 반응이 굉장히 뜨겁습니다. 그러고 보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동하시는 중에도 연극무대만큼은 놓치지 않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연극무대에 남다른 애정이 있으신 것 같아요.
이순재  제 연기 인생의 시작이 바로 연극이었으니까요. 1950년대, 제가 처음 연기를 시작할 무렵, 연극은 제가 연기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였습니다. 당시는 텔레비전도 나오기 전이니 드라마라는 것은 없었고, 영화도 수준이 많이 낮았거든요. 연극만이 연기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도전이자 희망이 되었던 셈이죠. 저도 그중 한 사람이었고요. 지금은 드라마와 영화가 상당히 발전을 이뤄 연극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분야가 됐지만,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상황이 될 때마다 연극 작품은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재만 한 가지 뚜렷한 가치관을 따라서 한길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돈키호테와 이순재 선생님의 공통점도 있는 것 같은데요.
이순재 돈키호테는 아시다시피 작품상 가공인물이지만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강자에게 고통 받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아요. 어떤 유혹과 계략에도 흔들리지 않죠. 제가 그 정도로 정의로운 사람이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웃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도 한 가지 어떠한 목표를 세우면, 아무리 열악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이재만 선생님은 지난 9년간 세종대 석좌교수를 지내시며 평소 후학 양성에도 관심이 깊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가천대 연기예술과 석좌교수로 위촉되셨지요?
이순재 제가 교수로서 학문적 축적을 해놓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9년 전 세종대 교수직을 제의받았을 때도 저 스스로는 적격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현역 배우로서 실습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해 교수 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교수가 되고나서 처음 시도한 것은 수업방식을 바꾼 것입니다. 일주일에 4시간 수업이 배정되어 있었는데, 그 시간 외에 일주일 내내 저녁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생들에게 연기 연습을 시켰습니다. 저도 그 시간에는 되도록 스케줄을 비워 학생들과 같이 무대 위에 섰고요. 그런데 그 수업이 상당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호응도 좋았을 뿐 아니라 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했고요. 그래서 기쁘고 보람차게 9년 동안 세종대 교수 생활을 할 수 있었죠. 가천대에는 금년부터 연기예술과가 신설됐는데, 이길여 총장님의 교육열과 비전에 반해, 석좌교수직을 수락하게 됐습니다. 900명 가운데에서 선발된 20명 정도의 신입생들이 입학을 예정하고 있는데 상당한 인재들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됩니다.
이재만 교수로서 강단에 서실 때는 어떤 것에 가장 중점을 두어 가르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순재 배우의 기본은 시대와 작품을 초월해서 단연 ‘화술’입니다. 우리 때는 국어사전 펴놓고 우리끼리 단어의 의미나 발음법을 연구했는데, 요즘은 그 정도로 노력하는 젊은이들은 찾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배우로서 발전의 한계가 있습니다. 표준어사용은 당연한거고, 언어표현능력을 기르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떤 역할이든지 어떤 신분이든지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재만 그렇다면 가장 기본이 잘 닦여 있는, 유난히 눈에 띄거나 칭찬하시고 싶은 후배 배우는 누가 있을까요.
이순재 우리 나이가 되면 젊은 친구들과 하루만 작업을 해봐도 ‘아, 저 친구는 상당히 준비를 많이 해왔구나’ 혹은 ‘오래 연기 생활을 할 친구가 아니구나’ 등이 단번에 느껴집니다. 제가 가장 칭찬하고 싶은 후배는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페이스메이커>의 김명민입니다. 매 작품마다 변신을 시도하고, 또 그 변신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친구에요. 굉장한 노력파죠. 그렇게 착실하게 실력을 쌓아가는 후배들을 보면 선배로서 참 기특하고 대견스럽습니다.
이재만 오랜 시간 연기를 해오시던 중에 1992년 14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 정치인으로서 잠깐의 일탈(?)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 시간은 어떻게 회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순재 11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당시, 탤런트협회 회장이자 저의 절친한 친구인 고(故) 이낙훈이 비례대표 제의를 받았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탤런트 나부랭이’로 불리던 배우들이 정치에 입문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는데, 이낙훈에게 그런 제의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무적인 사건이었죠. 그래서 저를 비롯한 동료들이 물심양면으로 이낙훈을 돕기로 했는데, 같이 민정당에 입당해 자기를 도와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조금 얼떨결에 민정당에 입당하게 된 셈이죠. 이후 소선거구제로 바뀐 13대 국회의원 선거 때, 서울 중랑갑 공천을 받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도 국회의원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그 지역이 당에서 포기한 지역이라 안하겠다는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