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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과 절제의 미학, 선비 악기 거문고
느림과 절제의 미학, 선비 악기 거문고
  • 전미희 기자
  • 승인 2014.05.09 0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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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리, 국악 이야기
 

거문고는 고구려 시대부터 지금까지 악기 형태가 크게 변화되지 않고 원형이 보존된 채로 연주되는 역사가 깊은 악기다. 거문고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복잡한 현대 사회인에게 느림과 절제의 편안함을 가져다 주어 ‘선비 악기’라는 별칭이 있는 이유를 가늠케 한다.
거문고는 백 가지 악기 중 으뜸이라는 찬사를 받는데, 조선 시대의 선비라면 누구나 웬만큼 거문고를 연주할 수 있었다는 전통 때문인지, 거문고 음색의 묵직한 여운 때문인지 현재도 남성들이 더 선호하는 악기다. 우리 소리, 우리 악기를 찾아서, 그 두 번째 이야기로 묵직한 선율의 매력적인 거문고를 알아보자.

글 이선용(문화칼럼니스트 sunny658@hanmail.net) 사진제공 소리여울 국악원(02-741-4002)  류충선 국악기 연구원(02-572-2626)

 
고구려의 왕산악은 중국의 칠현금과는 다르게 새로이 개량해 만든 악기가 바로 거문고다. 거문고의 어원은 ‘고 구려의 금’이란 뜻인 ‘거뭇고’ 또는 ‘가뭇고’가 세월이 지나면서 거문고로 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왕산악이 거문고를 연주하자 검은 학이 날아와 소나무 가지에 앉았다는 설화가 있을 정도로 왕산악의 거문고 연주는 신 의 경지에 올랐나 보다. 한편, 왕산악과 필적할 만한 악사로 신라의 옥보고도 그 명성을 일본에까지 떨쳤다고 한다.
옛 선비들의 교양의 일환이었던 예악으로서의 거문고는 단순히 곡을 연주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릇된 곳으로 빠지려는 마음을 다스리는 예의 악기였다.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거문고를 타는 선비의 모습을 단지 풍류를 즐기는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선비의 예로서 그림을 읽어야 할 것이다. 선비 악기라는 전통 덕분인지 거문고의 옛 악보는 지금까지 많이 전해지고 있다.

거문고 음색이 지닌 매력
거문고의 묵직한 저음을 듣노라면 악기의 탄생지가 고구려여서인지 북방민족의 기개를 느낄 수 있다. 거문고는 화음악기보다는 가락악기인 탓에 국악 관현악의 편성에 종종 제외되는 경향이 있는데, 베를린 필의 첼로만으로 구성된 앙상블처럼 우리나라의 국악팀 ‘거문고 팩토리’의 행보는 이러한 악기의 제한성을 뛰어넘는 시도로 그들의 힘찬 연주 모습과 소리를 듣노라면 대륙을 활보했던 고구려인의 기개가 연상된다.
거문고의 구조를 살펴보면 중국 길림성의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그려진 거문고는 지금의 거문고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지금의 거문고 6현보다 2현이 적은 4현 구조의 형태다.
오늘날의 거문고는 명주실을 꼬아 만든 6개 의 현 중에서 3개는 16개의 괘 위에 얹혀 있고 나머지 3개는 기러기발 모양의 안족 위에 얹혀 있다. 현을 지탱하는 나무받침인 괘는 거문고 머리 쪽으로 갈수록 괘의 간격이 좁아지고 크기도 작아진다. 6개 현의 배치에선 굵기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세 번째 현이 가장 굵은데, 바로 그 현이 거문고 본연의 음색을 낸다.
좋은 거문고 소리의 덕목은 아홉 가지인데 ‘가뿐하고, 순박한 아취의 느낌, 막힘없이 나아가며, 시냇물처럼 맑고, 건조하지 않은 윤기, 흩어짐 없이 원을 그리며, 풍경소리처럼 흔들리듯 청초하고, 균등하며, 울림이 오래가는 소리‘라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에 공자와 거문고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실려 있다. 공자에게 거문고를 가르치는 악기 스승이 다음 진도로 나아가려 해도 공자가 거듭 이를 사양하는데, 그 이유가 곡에 담긴 사상과 그 작곡자의 사상을 알아야 함을 이유로 들었다. 결국에는 그 곡의 작곡자를 공자가 추론해내자 스승은 그의 학문적 도량에 감복해서 그 자리에서 큰절을 올렸다고 한다.
거문고를 배우는 정영민(34, 회사원) 씨는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음악에 관심을 갖다가 거문고를 접하게 되었는데, 독주로만 만족하지 않고 다른 국악기와 합을 맞추는 연주에서 음악적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느림과 절제의 정서를 담은 거문고. 참 멋진 악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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