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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의 ‘디지털 아트 10년사’
‘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의 ‘디지털 아트 10년사’
  • 박천국 기자
  • 승인 2014.12.12 0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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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디지털 아트 전문 미술관, 아트센터 나비를 15년째 직접 운영 중인 노소영 관장이 대한민국 디지털 아트의 21세기 첫 10년사를 직접 기록하고 정리했다. 최근 노 관장이 정리한 내용은 <디지털 아트>라는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한국 디지털 아트의 현 시점에 대한 지도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이 책은 대한민국 디지털 아트 역사를 회고하는 중요한 성과물로 평가받는다.

취재 박천국 기자 | 사진 매거진플러스 | 참고서적 디지털 아트

디지털 아트의 개념은 기계와 기술을 통해 일상을 바꾸고 세계를 바꾸는 예술로 축약해 표현할 수 있다. 즉, 미술관 밖으로 나가 대중 속에서 사회와 예술 간의 긴장과 교류를 만들어내고, 평범한 일상에 비범하고 창의적인 예술적 발상과 감각을 적용시키는 것이 디지털 아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아트는 영역의 한계를 확인하고 확장하는 최전선의 예술로서 예술적 경계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한다. 노소영 관장은 자신의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멀티미디어 예술에 관한 ‘지식 지도’는 없을까? 적어도 아트센터 나비가 활동하는 영역, 한국 디지털 아트의 현 시점에 대한 그런 지도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항상 변해가는 기술적 여건 위에 펼쳐지는 문화 예술적 흐름에 어떤 방향성이 있는지를 탐색해보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디지털 아트가 만들어내는 융·복합의 미학

‘대한민국 최초의 디지털 미술관’으로 불리는 아트센터 나비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설립됐다. 노소영 관장은 미술관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아트센터 나비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사실 노 관장은 미술 전공자는 아니다.
1980년 서울대 공과대에 입학하고 1984년 미국 윌리엄&메리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노 관장은 1989년 시카고대 경제학과 박사 과정, 1990년 스탠퍼드대 교육학과 석사 과장을 마쳤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노 관장은 1993년 대전 엑스포를 통해 ‘아트&테크놀로지’ 전시팀장을 맡으며 예술과 기술, 산업의 접목에 눈을 뜨게 된다. 노 관장은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대전 엑스포 때 당시 오명 조직위원장은 정보통신부 장관을 오래 하며 초고속 네트워크 등 우리나라 정보 통신 인프라를 만든 분이죠. 당시 함께 일을 하면서 예술과 기술이 접목되는 사회에 대한 비전을 봤습니다.”
노 관장은 1998년 시어머니 박계희 여사로부터 워커힐 미술관 관장 직을 물려받게 된다. 하지만 회화와 조각이라는 전통적 개념의 미술과는 달리 그이가 전공한 공학과 경제학과 밀접하게 관련된 디지털 아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밀레니엄 시대를 앞두고 디지털 아트가 태동하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결국 2000년 아트센터 나비를 개관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디지털 미술관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아트센터 나비가 세워진 과정을 통해 ‘노소영과 디지털 아트’의 접목이 단지 우연적 만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노 관장이 설명하는 디지털 아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아트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성이 있다. 디지털 아트는 흔히 ‘미디어 아트’ 혹은 ‘뉴미디어 아트’와 혼용되어 사용된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컴퓨터와 네트워크로 대변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예술의 물적 기반으로 하는 예술을 지칭한다고 말할 수 있다. 더불어 미디어라는 범용적 용어를 사용하는 미디어 아트보다는 일명 ‘아날로그 아트’인 전통적 예술과 구분될 수 있는 ‘디지털 아트’라고 표기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의견도 있다.

15년 현장 고민이 담긴 문화예술인의 진솔한 기록

노소영 관장의 신간 <디지털 아트>는 디지털 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고 기획한 바를 가감 없이 적은 일종의 ‘기록서’에 가깝다. 노 관장은 “지난 15년 디지털 아트의 현장에서 이론과 실천을 함께 고민해온 한 문화예술인의 어설프지만 진솔한 기록으로 읽힐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고 말한다.
노 관장은 저서에서 아트센터 나비를 개관하기 전 디지털 아트를 공부하기 위해 찾아가 만났던 이론가에서부터 디지털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아트 관계자들에 관한 에피소드부터, 아트센터 나비에서 기획한 다양한 행사들, 그리고 국내외 전시장에서 기획한 프로젝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개한다. 결국 이 책 자체가 책의 경계를 허문 노소영 관장의 ‘디지털 아트’임을 깨달을 수 있다.
노 관장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에 근원을 두고 20세기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 눈부신 속도로 함께 성장해온 예술 영역인 디지털 아트에 대해 그 대략의 역사를 짚어가며 주요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살핀다. 특히 디지털 아트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서 ‘디지털 아트의 발전소’를 자임해온 아트센터 나비에서 어떤 방식으로 디지털 아트 분야의 초기 활동을 개척해갔는지를 정리했다.
노 관장이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쓴 만큼, 디지털 아트에 대한 문제의식과 예술 철학적 논의 등 디지털 예술에 심혈을 기울여온 애정이 곳곳에 묻어난다. 노 관장은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지난 10년 간 과학 기술과 예술의 결합으로 탄생한 디지털 아트가 전개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오히려 예술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하게 됐다. 현란한 기계 장치 속에서 어떤 공허를 보게 된 것이다. 즉 의미(기호)보다는 현상(과학 기술이 제공하는 새로운 장치들)에 몰두해서 만든 수많은 작업들을 보고, 그 기술적인 현란함에 비해 결과의 공허함에 놀라고 당황하면서, 도대체 무엇이 모자란 것인가를 수없이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멋진 비주얼과 훌륭한 사운드, 그리고 흥미로운 인터페이스를 가진 작품은 많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서 한 번 경험하고 나서 다시 돌아가서 보고 싶은 디지털 아트 작품들은 그리 흔치 않았다. 작품이 가진 의미 구조가 뻔하기 때문이다. 요는 기호의 빈약함이다.”

디지털 아트 세계의 이해를 돕는 입문서

20세기 현대예술의 역사는 예술가와 예술 작품이 아날로그 미술관의 화이트 월(하얀 벽)에만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채널인 TV와 인터넷을 타고 거리로, 일반 대중의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노 관장은 이러한 사실에 주목하고, 로이 애스콧, 크리스토퍼 랭턴, 모리스 베나윤, 그리스타 소메레 & 로랑 미뇨노, 줄리언 오피, 노재운, 아이님, 이준, 장재호 등의 여러 디지털 아티스트의 예술 세계를 이야기한다. 특히 그들과 아트센터 나비의 만남을 언급하면서 지금의 미디어 예술이 과학기술과 어떻게 융·복합의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설명한다.
노 관장은 매일같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하며 스마트 폰을 잠시라도 손에서 놓지 않는 현대인의 삶가운데 ‘쌍방향성’, 즉 예술가와 관객의 상호 참여야말로 디지털 예술의 본질이고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또 현재 디지털 아트가 지닌 잠재적 가능성과 지금까지 이뤄낸 성취는 물론, 예술시장에서 직면한 문제와 지향점까지 총망라해 분석하고 의견을 피력한다. 특히 근대 이후 다다이즘, 플럭서스 그룹, 앤디 워홀의 팩토리,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등의 과정을 거쳐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어떻게 그들의 정신을 발전시켜 왔는지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디지털 아트의 세계에 입문하고자 하는 일반 독자에게 노 관장의 <디지털 아트>는 입문서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7개월간의 계속된 작업의 결과로 자연과 인간과 기술, 삼자 간의 대화라는 뜻인 <트라이얼로그>가 탄생했다. <트라이얼로그>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자연을 상징하는 물고기와 작가·관객을 포함하는 인간, 그리고 학습 능력을 가진 가상 생명체. 이 세 주체가 각각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게끔 설계됐다. 먼저 관람객(연주자)이 광센서가 장착된 인터페이스 앞에서 손을 움직이면(연주하면) 그 입력 값에 따른 다양한 이미지와 소리가 생성된다.… (중략) 요컨대 인간과 물고기, 컴퓨터 프로그램, 이 삼자 간의 협연이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작품이었다.”
- ‘프로그래밍 예술’ 중에서

▲ 노소영 관장의 저서 <디지털 아트>
이번 책은 노 관장의 첫 저서다. 과거 ‘미디어 아트 대백과사전’으로 불렸던 총 1천 페이지 분량의 <이것이 미디어 아트다!>를 공저한 경험은 있지만, 단독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엮은 단행본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 관장의 이번 저서를 통해 디지털 아트의 교육과 생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유통까지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결국 노 관장의 디지털 아트는 자신의 이야기이자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 관장은 향후 포부와 계획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영상 시대의 예술은 지배적 미디어, 즉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을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아트센터 나비는 디지털 아트를 육성하는 기관, 즉 ‘기계와 기술을 가지고 예술을 하는 곳’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오늘의 기술은 만만치 않다. 기술을 가지고 논다고 하지만 기술에 놀아가기가 더 쉽다. 그래서 예술가의 자존심과 능력이 한층 요구된다. 이러한 예술 작업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생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나아가 사회에 유통시키는 일이 아트센터 나비의 역할이다. 전시, 교육, 생산, 그리고 유통. 디지털 아트 작가를 발굴하고, 대중에게 각광받을 수 있는 작가로 만들어내는 것, 그래서 그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아트센터 나비의 작업이 증명되는 것, 이것이 나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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