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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에 가고 싶다-춘천 삼악산
그 산에 가고 싶다-춘천 삼악산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5.01.11 2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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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삼악산

꽃비처럼 흩날리는 낙엽, 가을과 이별하다

▲ 등선폭포로 이어지는 협곡의 멋진 풍경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 강원 춘천시에 위치한 삼악산(三岳山)이 꼭 그랬다. 높이는 해발 654m로 그다지 크고 웅장한 산은 아니지만 "악" 소리가 날 만큼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고, 정상에 서면 의암호와 호반의 도시 춘천의 시내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빼어난 조망을 자랑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풍경과 깊게 내려앉은 늦가을의 서정은 쓸쓸하면서도 애틋해 그리움이 물씬했다. 수도권에서 하루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는 호반의 도시 춘천이 품은 명산이다.

글 사진 | 유인근(스포츠서울 기자)

물의 도시가 품은 보물 같은 산

지난 가을, 산의 나그네들은 물 만난 고기였다. 저마다 단풍지도 하나를 보물지도처럼 가슴에 품고 이 산 저 산으로 특별한 가을풍경을 찾아 다녔다. 그 단풍물결에 동참해 지난 가을 찾은 산은 대둔산과 치악산, 그리고 삼악산이었다.
너무 일찍 찾은 대둔산은 푸름이 강해 단풍이 덜 여물었고, 절정기에 찾은 치악산은 만산홍엽이라고 온산이 붉게 타올랐지만 지나치게 화려한 것이 오히려 낯설었다. 그러나 가을의 끝자락에 만난 삼악산은 좀 달랐다. 겨울로 넘어가는 쓸쓸한 듯 고즈넉한 산 분위기가 마음을 울렸다. 꽃비처럼 날리는 낙엽이 어느새 산길 위로 하나둘 쌓여 그 길을 걸어가는 이들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삼악산은 낙엽 진 뒤가 더 아름답다는, 가까운 지인이 들려준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물의 도시 춘천에 삼악산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특별했다. 춘천에는 소양호, 의암호, 춘천호 등 세 개의 큰 호수가 있고, 이 호수 물은 춘천호반에서 모였다가 의암댐을 거쳐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그래서 춘천지역 산행은 이들 호수와 뗄 수 없는 관계인데, 그 중 최고의 풍광이 바로 삼악산에서 바라보는 호수 조망이다. 겨울이 성큼 다가서면서 더욱 깊어진 가을, 짙은 가을빛이 내려앉은 산과 그 산을 담은 호수의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정상에서 바라보는 호수 조망이 압권

▲ 정상에서 내려보이는 의암호. 붕어섬과 멀리 춘천시내도 아스라이 보인다
삼악산은 정상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산세가 험한 바위로 된 경사면이 있는가 하면 푹신한 육산으로 이뤄진 능선도 있다. 가파른 바위산을 헉헉거리며 올랐다가 산책로 수준의 내리막길로 하산할 수 있다.
산행은 크게 두 가지 코스다. 보통 의암댐 쪽으로 올라 정상을 찍고 등선폭포로 내려오는 상원사 코스가 무난하다. 아예 강촌역에서 올라 등선봉-정상-의암댐으로 내려오는 코스도 있지만 내려올 때 아찔한 급경사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 여성들이나 어린이가 동행했을 경우 안전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할 정도로 난코스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를 때는 부담이 덜한 상원사 코스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새 역사가 들어선 강촌역에서 의암댐행 버스를 타고 상원사 매표소로 향한다. 의암댐 입구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지 않고 직진하면 곧 등산로 입구가 나타난다. 등산로는 초입부터 가파르지만 그다지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매표소를 지나 20여 분이면 상원사에 이른다.
상원사는 큰 절은 아니지만 산 중턱에 자리한 고즈넉한 산사여서 잠시 둘러보며 땀을 식히기 좋다. 산길은 산사 뒤로 난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경사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제법 급해진다. 그래도 계단이 잘 나있어 걷기에 큰 무리는 없고 20여 분이면 고갯마루에 이르게 된다.
처음 삼악산을 찾는 사람들은 이 고갯마루에서 오르막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본격적인 깔딱고개는 이제부터다. 지금까지는 두 발로 걸었다면 앞으로 ‘네발’을 모두 사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바라보니 아찔하다. "악"소리 날 만큼 가파른 바위길이 하늘로 향해 있다. 바위는 삐죽삐죽 날카롭다. 곳곳에 발을 디딜 지지대가 박혀 있고, 힘들면 잡고 오르라고 중간중간 밧줄이 내려온다. 오르는 동안 바위틈을 비집고 솟은 기이한 모양의 소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그렇게 오르다보면 어느새 정상 아래 철계단에 이르게 된다.
철계단에서는 반드시 뒤를 돌아봐야 한다. 붉게 물든 산 아래로 까마득하게 의암호가 펼쳐져 있다. 코발트색 물결이 햇빛에 반사돼 더욱 반짝거린다. 그 풍광에 취해 오르는 동안 힘들었던 기억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철계단 너머 능선으로 올라서면 정상이 지척이다. 삼악산 정상은 용화봉(645m)이다. 능선을 따라 청운봉, 등선봉이 배치돼 있다. 이 세 봉우리를 합쳐 삼악산으로 부른다.
정상에 서면 조망도 절정으로 치닫는다. 탁 트인 경관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압권이다. 멀리 춘천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고 그 앞쪽으로는 널따란 호수가 펼쳐져 있다. 호수 한복판엔 의암호 명물 붕어섬이 자리 잡고 있다. 춘천시 뒤로는 용화산, 오봉산, 부용산이 병풍처럼 서 있다.

삼악산 산행이 주는 마지막 선물

▲ 삼악산에서 본 의암댐
그동안 올랐던 길이 거칠었기 때문에 그 보상이라도 하는 걸까. 하산 길은 훨씬 편안하다. 333계단을 내려서면 쭉 평탄한 산길이 이어진다. 길이 편하니 오를 때 힘들어 외면했던 가을풍경도 본격적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누가 일부러 그린 것도 아닌데 노랑물감 빨강물감을 풀어놓은 듯 온 산이 수채화처럼 울긋불긋하다. 저 모퉁이를 돌아서면 또 어떤 가을풍경을 만날까, 설레는 마음으로 산길을 걷는다.
어느 시인은 단풍잎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의(壽衣)'라고 했다. 한 줄기 휙 부는 바람에 단풍잎들이 꽃비처럼 낙화한다. 지금껏 화창한 봄날 흩날리는 꽃비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한줌 바람에 살랑이는 단풍잎들이 그 아름다움에 못지않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한적한 산길을 따라 작은 개울을 건너니 작은 사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비운의 왕 궁예의 전설이 깃든 흥국사다. 철원에서 패퇴한 궁예는 이곳에서 왕건과 싸우며 후고구려 부흥을 위한 마지막 일전을 벌였다. 주변에 삼악산성을 쌓아 한때 춘천 지역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얘기도 전해 온다.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수천 년의 역사와 전설로 살아 숨 쉬고 있다.
흥국사를 지나면 삼악산은 나그네에게 마지막 비경을 선물한다. 서서히 물소리와 함께 계곡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생경한 협곡이 눈앞을 가로막고 기이한 풍경을 풀어놓는다. 웅장하다고 하기에는 조금은 부족하지만 산행 말미의 노곤한 발걸음을 위로해주기는 과분한 선경(仙景)이다. 청명한 물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등선폭포가 멋진 자태를 뽐낸다. 이 계곡을 따라 선녀탕, 비선폭포, 등선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들이 늘어서 있다. 이렇게 멋진 선경이 삼악산 끝자락에 숨어 있을 줄이야. 뜻밖의 선물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찾아가기

-대중교통이 편하다. 춘천행 지하철을 타고 강촌역에서 내리면 그 앞에 정류장에 의암댐 행 버스가 있다. 의암댐 입구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지 않고 직진하면 왼쪽으로 등산로 입구가 나타난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좀 복잡하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강촌나들목에서 나와 403번 지방도로를 탄다. 강촌리에서 46번 국도를 타면 얼마 안 가 왼쪽으로 삼악산 등선폭포 입구가 나타나고, 길을 더 달리면 의암댐 지나 왼쪽에 등산로 입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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