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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필립보 생태마을 관장 황창연 신부,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법
성 필립보 생태마을 관장 황창연 신부,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법
  • 송혜란
  • 승인 2016.12.15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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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단 안팎을 오가며 일 년에도 수백 번의 강연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한 황창연 신부. 그는 늘 행복한 삶에 대해 설파한다. 어릴 때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다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부르심을 받고 신부가 된 그는 꽤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파란만장한 인생이 토양이 된 그의 행복론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인생의 본질을 담은 이야기가 다소 무겁게 느껴질 법도 한데 구수하면서도 재치 있는 그의 입담은 뭇 청중들의 시선을 압도하기 충분하다.

취재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황창연 신부의 행복론을 듣기 위해 멀고도 먼 강원도 평창의 성 필립보 생태마을을 찾았다. 평창강이 휘도는 절경 위에 조성된 생태마을에 발을 디디자마자 구수하게 익어가는 청국장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들판 위에 펼쳐진 새빨간 고추가 햇살을 벗 삼아 천천히 말라가고 새들이 재잘재잘 노래하는 이 아름다운 풍경은 도심을 막 탈출한 기자에게는 신선함 그 자체였다. 태양을 등지고 환하게 웃으며 걸어오는 황 신부는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구원자이리라….

환경운동? 그냥 자연 속으로

성 필립보 마을은 사제 서품 후 뒤늦게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그가 생활 환경운동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직접 유기농 작물을 가꾸는 공간이다. 지금은 매해 5만 명이 넘는 도시인들이 그의 강의를 들으러 왔다가 생태체험까지 하고 가는 힐링 명소가 되었다. 인근 지역에서 생산되는 국산 콩으로 만든 청국장 가루 매출만 해도 연간 45억 원이 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옛날에는 환경 운동한답시고 머리에 띠 두르며 데모도 많이 했는데요. 제 성향이 투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더라고요. 그러면 나는 어떻게 환경 운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자연 속으로 들어왔어요. 친환경적으로 키운 우리 농산물을 많이 소비하고…. 환경 운동을 제 삶 안에 다 들여다 놓았지요.”
이러한 생태마을을 더 확장하기 위해 그는 현재 경기도 여주에도 생태마을 조성 공사를 시작했으며, 아프리카 잠비아에는 이보다 훨씬 넓은 땅에 농업대학을 비롯해 생태도시를 만들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수년째 잠비아 봉사활동을 다닌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잠비아 대통령으로부터 무려 1000만평에 이르는 땅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그 위에 어떻게 생태도시를 조성할지 큰 과제를 껴안고 동분서주하는 그에게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났다. 거대 자산가인 한 할머니로부터 100억 원을 기증받은 것이다.
“강도에게 납치당한 할머니가 한동안 자신의 자동차 트렁크에 갇혀 끌려 다녔는데, 강도들끼리 서로 죽이자고 수군대더래요. 그때 한 명이 자동차 안에 있던 ‘화가 나십니까?’라는 제 강연 CD를 틀었는데 트렁크에 있던 할머니가 깔깔깔 웃으니까…. 제 강의가 진짜 재밌거든요.(웃음) 결국은 두목이 어릴 때 자기 할머니가 성당 나가던 옛 생각이 난다며 그분을 그대로 살려줬답니다. 할머니는 저 때문에 살 수 있었다며 좋은 일에 쓰라고 100억 원을 선뜻 내놓았어요.”

행복이란

그간 황 신부가 베푼 덕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이곳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몇달씩 예약이 가득 차 있다는 그의 말이 놀라울 따름이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재물은 벌 만큼 벌었는데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공허한 거예요. 그것을 채우려고 인문학 특강을 찾아가 듣고, 법륜스님을 찾아다니며 또 생태마을로 향하는 거지요. 해가 질 무렵 모닥불 하나만 켜주는데도 사람들이 너무나 행복해합니다.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청국장을 만들며 소소한 즐거움도 느끼고요. 국민 한 명이라도 더 행복하게 해주는 게 제 목표에요.”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을 터. 황 신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되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심한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았다. 중학생이 되자 아예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학교도 갈 수 없었던 그의 유일한 놀이터는 집 근처에 있는 성당이었다. 그저 심심할 때마다 찾은 그곳에서 그는 굳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기도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렇게 한 1년쯤 지났을까? 어디선가 그에게 ‘이곳이 네 집이다’라는 부르심이 들렸다고 한다.
“그게 무슨 뜻일까 한참 생각하다가 성당이 내 집이고, 내가 성당에 산다면, 나는 신부가 아닌가! 깨달음이 있었어요. 그때 제 나이가 15살이었는데, 52살인 지금까지 제 인생은 신부가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신부가 되면서 류마티스 관절염은 많이 호전되었지만 곧 다른 병, 위암이 찾아와 6년 전에 위의 3분의 1을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기도 한 황창연 신부. 수술 후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그는 1년에 500회 정도 하던 강연도 반으로 확 줄였다. 그래도 1년에 200회씩 꼭 강의를 다니는 그의 스케줄은 올 12월 말까지 빽빽하게 차있다.
“행복이요? 스스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지요. 오늘도 새벽에 미사를 마치고 물안개가 산에 걸린 모습을 보는데 무척 행복하더군요. 신학생 시절 군 면제를 받고 1년간 서울 상계동에서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지낸 시간도 행복했어요. 내 눈으로 무엇이든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큰 행복감을 느끼는지 몰라요.”

정작 중요한 것은 ‘나’와 ‘지금’

황 신부는 1년에 한 가지씩 주제를 가지고 강연을 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던 2년 전 그의 강연 주제는 단연 ‘죽음 껴안기’였다. 한국 사람이 특히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미성숙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조건 죽음을 두려워하고 단절, 절망, 어둠으로 보며 밀어내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사실이다. 그러나 죽음은 밀어낸다고 밀어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죽음은 곧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삶을 충실히 산 사람은 죽는 순간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며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요즘 엄마들이 딸에게 늘 하는 말이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잖아요. 왜 그렇게 죽나요. 앞으로는 죽을 때도 딸에게 ‘너도 엄마처럼 잘살다가 나중에 따라와라’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한 죽음이지요.”
그렇다면 생애 마지막 죽음을 맞이할 때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나온다.
“자기 삶을 끌어안으세요!”
지난해 그의 강연 주제이기도 했던 ‘삶 껴안기’는 최근 도서 <삶 껴안기-황창연 신부의 행복 공감 에세이>로 출간된 바 있다. 부모가 자식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그는 정작 중요한 것은 ‘나’ 그리고 ‘지금’이라는 의미심장한 가르침을 전했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까요? 엄마가 자식에게 희생한다? 그건 주는 게 아니라 뺏는 겁니다. 자신이 희생한 만큼 나중에 자식에게도 본인을 위해 희생하라고 강요하잖아요.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함께 행복해야 합니다.”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 알아야...

행복을 이야기할 때 누군가와 함께 먹고 마시며 노는 일의 중요성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생태마을에는 그와 상담을 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이 찾아든다. 그 중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자녀가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으로 유학 보낸 한 부모가 있었다. 아이의 출세를 위해 부모는 20여 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먹고 마시며 논 적이 없다. 부모와 교감도 하지 못한 채 자란 아이는 과연 부모를 어떻게 대할까?
“어릴 적 미국으로 유학 가 개중에는 성공한 사람도 꽤 있지만, 대부분은 마약에 빠져 불행한 삶을 삽니다. 극단적으로 교도소에 끌려가 정신병자가 되거나 심지어 부모를 때리기도 하지요.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모자식이 한데 모여 먹고 마시며 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것 같아요. 선진국의 경우 그게 가장 중요한 행사입니다. 부모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은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순수해요. 무엇이 진정 중요한 지 깨달았으면 합니다.”
그의 주된 봉사활동 지역인 잠비아에는 우리나라 고시원 정도 크기의 집에서 7~8명의 가족이 함께 부대껴 산다. 전기나 수도,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을 리도 만무하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행복여건이 잘 돼 있는 편이에요. 사시사철 아름다운 대자연에 둘러싸여 있잖아요. 왜 더 출세하려고 하고 일등 못 해서 안달이고 돈 더 못 벌어 야단법석인지 모르겠어요. 애들 학원 보낼 시간에 가족끼리 모여 저녁 식사 시간을 즐기세요.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지금 가진 것을 보며 이를 어떻게 누릴지를 고민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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