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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불교 역사의 산실, 해인사 장경판전
세계문화유산-불교 역사의 산실, 해인사 장경판전
  • 유화미 기자
  • 승인 2017.03.29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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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불교 연구가들이 하나같이 최고로 꼽는 팔만대장경은 제작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오늘날까지 온전히 남아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에 담긴 선조들의 노력 덕분이다. 장경판전에 담긴 역사의 나날 속으로 들어가 보자.

부처의 힘을 빌려 국난을 극복하고자 했던 고려

고려는 불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불교 국가였다. 백성들의 마음속엔 부처님이 깊게 자리 잡았고, 국가는 팔관회 등의 불교 행사를 직접 주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라에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부처님의 힘을 빌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려는 거란족과 몽고족, 여진족 등 북방 지역의 나라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았다.

거듭되는 침략의 위기 속에서 당시 고려의 왕이었던 현종은 부처님의 힘을 빌려 북방 오랑캐들의 공격을 이겨 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1011년, 대장경을 제작하라는 명을 내리게 된다. 부처님의 은덕 덕분이었는지 팔만대장경을 제작하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침입해 왔던 거란의 군대가 고려에서 물러났다. 

가장 완전한 불교 경전의 집성,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은 1251년, 길고 길었던 제작 기간을 거쳐 비로소 완성되었다. 완성된 대장경은 강화도에 있던 대장경 판당에 보관되었다가 선원사로 옮겨 보관되었다. 이후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한양의 지천사로 옮겨졌다.

이때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국왕이 대장경의 이송을 직접 감독하기 위해 지금의 한강으로 행차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장경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후에 합천에 위치한 해인사로 옮겨져 오늘날에 이르렀다.   

팔만대장경은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 중요한 문화재다. 일단 그 규모 면에서 다른 문화재들과 비교된다. 경판 수는 자그마치 8만 1,258판에 달하며, 경전의 종류만도 1,500여 종에 이른다. 팔만대장경판에 새겨진 글자 수는 5,200만 자에 달한다. 좌중을 압도하는 규모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그 가치가 뛰어나다.

당시에 볼 수 있었던 북송관판, 초조대장경, 거란본 등  모든 불교 경전들을 철저히 비교하고 분석해 오류를 교정했으며, 누락된 한자들을 빼놓지 않고 채워 넣었다. 그리하여 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한자로 새겨진 대장경들 중 가장 완전하고 정확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의 불교 연구가들이 중국 불경을 연구하며 팔만대장경을 참고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번뇌’의 철학이 담겨 있는 장경판전

‘잔잔한 바다 위의 명상’이라는 해인삼매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해인사에는 두 개의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다. 기록유산으로 기록되어 있는 팔만대장경과 이를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이 바로 그것이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장경판전이다.

장경판전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장경 보관용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 덕분에 팔만대장경이 제작 당시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현재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장경판전은 해인사 내부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햇빛을 잘 받고 습도와 공기 유통을 매우 적절하게 할 수 있다.

자연 환기가 되고 온도와 습도를 대장경판의 보관에 알맞게 조절되게끔 설계되어 있는 매우 과학적인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장경판전에는 총 108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108 번뇌를 상징한다. 번뇌는 불교에서의 깨달음을 의미한다.

장경판전은 그 우수한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Queen 유화미 기자]│사진 서울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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