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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 서양고전을 탐독하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 서양고전을 탐독하다
  • 송혜란
  • 승인 2017.04.06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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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 교수.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다루는 이 학문은 우리의 삶에 어떠한 이로움을 줄 수 있는가? 그 뿌리에는 또 어떠한 가치가 숨겨져 있는가? 그리하여 이 시대는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가? 질문에 꼬리의 꼬리를 무는 이 원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서양고전학자인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를 찾아가 보았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 열풍의 시대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를 벗어나 어느 정도 풍요롭고 윤택한 삶을 살게 된 이들이 조금씩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대학 내 인문학 교양 과목의 니즈도 대단하다. 특히 서울대 ‘그리스 로마 신화’ 강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 중심에는 김헌 교수가 있다. 그의 강의는 서울대생 사이에서 일단 듣기 시작하면 강의 도중에 거론되는 수많은 서양 고전을 읽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하는 수업으로 유명하다. 최근 이러한 강의의 내용을 집대성한 저서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를 출간한 김헌 교수를 어렵사리 만났다.

김교수는 인문학의 의미를 자연과학과 비교해 설명했다. 
“자연과학은 진리의식을 찾아간다는 목표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능력이 중요한 학문이죠. 반대로 인문학의 힘은 구성적인 것에서 나온다는 특징이 있어요.”

예를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성격마저 비뚤어진데다 가정환경까지 안 좋은 아이가 있다고 하자. ‘너는 아이큐가 몇이니?’, ‘집안이 별 볼 일 없구나’와 같이 냉정한 현실을 말하는 것이 자연과학. 인문학은 이를 토대로 ‘너는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으니 자유로운 사고를 했을 것 같아’, ‘어쩌면 너는 그 틀을 벗어나려는 점에서 창의적인 아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 ‘앞으로 너는 이러이러한 일을 하면 아주 잘할 것 같은데?’와 같이 미래를 그려준다. 아이가 이를 받아들이고 노력하게 하는 힘. 이를 인문학의 구성적인 힘이라고 부른다고 그는 설명했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그려주는 것,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해주는 것. 인문학의 힘은 거짓말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열광하면 곧 사실이 되기도 하지요. 그래서 좋은 인문학은 사실이 될 거짓말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미래를 구성하는 상상력이야말로 진정한 인문학의 힘이에요.”

죽음의 불안도 잠재우는 인문학의 힘

이러한 인문학의 가치와 힘을 깨우치면 그 아무리 무서운 죽음도 그리 두려운 것이 아니게 된다. 죽음 또한 어떻게 그려주느냐의 문제로 접근하면 되기 때문이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죽음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죽음은 없기 때문이지요. 왜 죽음이 없느냐? 그가 말하기를,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살아있으니까 죽음이 없고, 우리가 죽으면 죽음을 느낄 우리가 없으니까 죽음이 없다. 고로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자꾸 상상하니까 그렇지요. 에피쿠로스의 명언은 살아있는 시간을 죽음에 대해 걱정하며 소비하는 데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이를 철저하게 받아들이면 죽음에 대한 불안 없이 오로지 지금의 삶에 충실할 수 있어요.”

‘인생이 외로운 것은 평생을 두고 읽을 고전이 한 권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위대한 인문학의 힘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그 뿌리를 찾아 현대철학은 물론 근대철학을 집요하게 파고든 그는 그 끝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 고전을 만났다. 고전은 인문학의 또 다른 힘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었다. 인생을 살며 당면한 크고 작은 문제를 풀 실마리가 고전 속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고전도 책인데 누군가가 썼을 거 아니에요. 그렇다면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가 있었을 테고, 또 자신만의 삶의 조건이 있었겠지요. 그러한 틀 안에서 과연 그 사람이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살았을까요? 그랬다면 아마 책을 쓰지도 않았을 거예요. 크게는 사회적인 문제부터 시작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원대한 문제에 직면하며 끊임없이 고민한 끝에 자신만의 답을 찾았을 겁니다. 그 고민의 과정과 결론을 정리한 게 고전이에요.”

이미 시대를 거듭하며 버려지지 않고 현대까지 전해온 만큼 고전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고귀하다. 이는 지은이가 봉착했던 어려움이나 문제를 다음 세대에서도 비슷하게 겪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큰 장애물을 만났을 때 먼저 그 길을 걸은 사람을 찾아가 그 비법을 구한다. 만약 주위에 조언을 구할만한 어른이 없다면? 그때 참고하면 좋을 만한 책이 바로 고전인 것이다.

“저 또한 외롭고 힘들 때 평온을 되찾기 위해 고전을 읽습니다. 고전 읽기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저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잊곤 하지요. 운이 좋을 때는 그 속에서 제가 가진 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도 해요. 제가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이 외로운 것은 평생을 두고 읽을 고전이 한 권도 없기 때문이다.’”

고전의 독법

고전 읽기의 중요성은 애초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재차 강조되어온 바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아직도 고전을 접근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기며 등한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 오죽하면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도 ‘고전이란 누구나 읽어야만 하는 책이라고 하면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고 말했겠는가.

“고전이 좀 어렵긴 하죠. 아마도 지은이가 고민한 문제가 아주 깊어서일 거예요. 삶의 문제만큼은 쉽게 써줬으면 하는데…. 인생이 어디 그리 쉽던가요? 매우 복잡하지요. 이 복잡한 문제를 쉽게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탐구해 분석했기 때문에 고전이 어렵게 다가오는 겁니다. 인생 자체가 어려우니 인생의 문제를 다룬 책도 어려울 수밖에요.”

고전 속 배경이 시대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 것도 고전을 어렵게 만드는 한 요인이라고 덧붙이는 김헌 교수. 아무래도 시대적 배경을 모르고 책을 읽으면 자신이 사는 나라, 시간과는 아주 먼 이야기로 다가올 테니 그도 그럴 터. 이에 그는 이것을 읽어낼 수 있는 ‘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법이란 어떻게 책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방법론이에요. 어려서부터 습관화되지 않으면 터득하기 어렵지요. 우리나라 교육이 잘 되고 있는가는 반문을 안 가질 수가 없습니다. 단편적인 글을 읽고 빨리 문제를 푸는 교육만 받아왔으니…. 국내 교육 시스템 자체가 고전을 읽고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아내게끔 완비가 안 되어 있어요. 독법은 계속적으로 교육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자신도 중고등학교 때까지 고전의 독법에 대해 잘 모르다가 대학에 와서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후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서양고전학자가 될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 김헌 교수. 그는 독법 교육의 일례로 미국의 한 대학의 수업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대학에서는 수업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책 100권만 읽힙니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토론하고요. 졸업생의 안목은 엄청납니다. 사회 어디를 나가도 큰 그림을 그려가며 지도적인 역할을 해요. 고전의 가치는 질문하는 능력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을 읽고 그것을 자기 삶과 비교해가며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인문학 열풍 속 인문학의 위기, 국가적 지원 절실하다

인문학의 중요성과 현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이어 그는 마지막으로 인문학 분야에 대한 연구의 절실함에 대해 설파했다. 학교 밖, 학교 내 교양 과목의 수준에서 그치는 인문학의 열풍의 이면에는 인문학과의 존폐위기 등이 가려져 있다고 말하는 김헌 교수. 사실상 그는 인문학 위기의 시대가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말한 인문학의 열풍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대학 밖에서의 인문학 열풍은 당연하고요. 대학 내에서는 교양 과목 외 현실적으로 인문학을 지속할 후속 세대가 없어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어요. 단순히 교양으로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학문으로 접근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괜찮은 교양 교육을 할 수 있는 인력조차도 없어질까 걱정이에요. 국가적인 지원이 절실한 때입니다.”


[Queen송혜란 기자]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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