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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철학자’ 김광식 서울대 교수의 행복철학 ‘가수 김광석의 슬픈 노래로 행복 철학하기’
‘문화철학자’ 김광식 서울대 교수의 행복철학 ‘가수 김광석의 슬픈 노래로 행복 철학하기’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7.05.05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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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으로 슬픔을, 생각으로 생각을 치유했던 가수 김광석을 기억하는가? 김광석은 채움보다 비움을, 만남보다 헤어짐을, 머묾보다 떠남을 노래하는 철학자였다. 서울대 김광식 교수가 다시 그를 끄집어내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묻는다. 문화철학자 김광식 교수의 행복 철학.

김광식 교수는 여러 문화현상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문화철학자로, 현재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로 있다. 서울대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독일 베를린공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를 거쳤다.

철학에 대한 인문학적 열풍이 부는데도 대학 내 철학과나 인생 상담소와 같았던 철학관은 점차 사라지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그는 거대담론의 철학보다 일상을 이야기하는 철학을 꿈꾼다. 삶과 격리된 동굴 속 철학이 아닌 삶의 작고 큰 고통을 함께 나누는 철학을 지향하는 것이다.

“몸의 병을 물리치지 못하는 의술이 아무 소용없듯이, 마음의 고통을 물리치지 못하는 철학 또한 아무 소용이 없다.” 그가 에피쿠로스의 말을 빌려 말한 철학의 의미다. 실제로 김 교수는  2011년 KBS <TV특강>에서 ‘행복을 위한 철학콘서트’ 강연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왜 노래와 철학인가?

그런 그가 이번에는 저서 <김광석과 철학하기>를 통해 철학에 노래를 버무렸다. 왜 노래와 철학인가?

“우리가 슬프고 아플 때 위로를 받기 위해 찾는 것은 무엇인가요? 바로 이야기입니다. 미술이나 영화, 소설, 시 등 다양한 예술 장르가 모두 스토리를 품고 있지만, 정말 힘이 들 때는 그것을 찾아볼 여력조차 없어요. 가장 쉬운 것이 노래이지요. 시각적인 예술과 달리 노래는 청각을 통해 감정에 호소하는 효과도 훨씬 큽니다.”

그럼에도 흔히들 노래와 철학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노래는 감성이고, 철학은 이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아픈 마음을 엮고 푸는 씨줄과 날줄은 감성과 이성이다”고 강조했다. 노래는 감성으로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철학은 이성으로 아픈 마음을 헤아려준다는 것이다.

“마음이 아플 때 노래를 들으면 아픔이 가라앉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프지만요. 노래가 아픔의 증상만 가라앉혔을 뿐 아픔의 원인을 찾아 해결한 게 아니라서 그래요. 아픔의 원인을 찾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감성이 아니라 이성입니다. 둘이 한데 어우러졌을 때 치유 효과가 극에 달하지요.”

슬픔으로 슬픔을 치유하는 음악

그런데 수많은 노래 중에서도 김 교수는 왜 하필 김광석의 음악을 골랐을까? 그는 “슬프기 때문이다”고 즉답했다. 슬퍼서 오히려 마음속 슬픔을 차분히 가라앉게 하는 것이 김광석 노래의 특징이라고. 그래서 김광석의 노래를 ‘슬픔으로 슬픔을 치유하는 음악’이라고 하나보다.

“독일에서 유학할 때였어요. 후배 집에서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들었는데 너무 슬픈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들으면 들을수록 그 슬픔이 차분히 가라앉는 겁니다. 슬픔을 슬픔으로 치유하는 거지요. 김광석의 노래에 담긴 슬픔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뿌리 깊은 불행을 만나게 돼요. 그 불행의 뿌리를 깊이 파헤쳐 보면 그 궁극의 원인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행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슬픈 노래가 주는 행복의 미학

이즈음 되면 슬픈 노래가 행복을 위한 철학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는 행복을 위한 철학은 불행한 이들을 위한 철학이라고 단정 짓는다. 이미 행복한 이들은 행복을 위한 철학이 애초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행복 철학에 어울리는 노래는 행복한 느낌이 드는 노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행복 철학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행복 철학은 행복보다는 불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입니다. 왜 행복한지가 아니라 왜 불행한지 그 궁극적인 원인을 캐묻지요. 그래서 기쁨을 이야기하는 노래보다 슬픔이나 아픔을 이야기하는 노래가 행복 철학에 더 어울리죠.”

철학은 궁극의 학문이라고 했던가. 마음속 불행의 뿌리를 깊이 파헤쳐 궁극에 이를 때까지 치유를 시도하는 김광식 교수. 그와 함께 다시 그 궁극으로부터 벗어날 행복의 실마리를 찾아 떠나보자.

꿈결처럼 산다는 것은

‘거리에 가로등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김광석의 노래 <거리에서>의 일부분이다. 김 교수는 여기서 나오는 꿈결의 철학을 행복의 열쇠로 보았다.

“‘꿈결’이란 무엇일까요? 꿈이기도 하고 꿈이 아니기도 한 넘나듦의 상태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덧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뜻하지요. 어느새 사라지는 덧없는 시간을 꿈결 같다고 하잖아요. 그러므로 꿈결처럼 산다는 것은 결국 넘나듦과 덧없음을 깨닫고 독단과 집착을 버리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김광석의 꿈결의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철학이 만난다.
“꿈결처럼 산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듯 극단에 대한 독단이나 집착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그 어떤 극단도 지나치거나 모자란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를 넘나드는 경계의 줄타기를 하는 것. 이게 바로 ‘중용’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고, 이렇게 살아야 행복하다는 게 아리스토텔레스 중용의 철학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철학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용의 철학을 통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행복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쉰 살이 넘어 낳은 늦둥이 아들에게 남긴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펼쳐보였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윤리학이라고 하지만 도덕책이라기보다 행복하게 사는 법에 관한 책이다. 김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행복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얻었다.

“행복은 라이프스타일입니다. 또, 행복은 명사가 아니라 부사라고도 하지요.”
우리는 보통 행복하면 돈이나 쾌락, 명예, 사랑 따위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게 진짜 행복이라면 그것만 있으면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한 것들은 그것이 있어도 또 다른 어떤 것을 필요로 하니 진정한 행복이라 할 수 없다. 행복이 이것 또는 저것이라고 할 수 있는 명사가 아닌 이유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일까요?

“행복이란 삶을 ‘잘’ 사는 방식입니다. 훌륭한 생활방식, 곧 라이프스타일이죠. 그래서 결혼을 하거나 어디론가 떠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이에게 우리는 ‘잘 살아라’라고 하잖아요. 스타일은 사물이 아니지요. 그 방식을 연습을 통해 몸에 배게 할 수는 있지만 물건을 얻듯 가질 수는 없어요. 그래서 행복이 부사라는 겁니다. 행복을 얻으려 하지 말고, 행복하게 사는 방식을 익히려 해야 합니다.”

행복은 맞춤옷

인터뷰 내내 행복에 대해 설파한 그는 그럼에도 자신은 행복을 절대 가르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서울대 학생들에게까지 행복학 강의를 하고 있는 그가 행복을 가르칠 수 없다니?! 선뜻 납득이 가지 않지만, 앞서 그가 말한 ‘행복이란 삶을 잘 사는 것이다’는 말의 의미를 잘 음미해보면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잘 사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맞아요. 누구에게나 똑같은 삶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요. 모두에게 통하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잘 사는 행복의 비법 같은 것은 없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방식은 사는 이의 삶에 따라 제각기 어울리는 방식이 따로 있지요. 그런 점에서 행복은 맞춤옷과도 같습니다. 제가 누구에게나 통하는 절대적인 행복의 비법을 가르치려 했다면 줄곧 한 가지 방법만 역설했을 거예요. 행복은 가르칠 수 없어요. 저마다 행복을 스스로 깨우치게 할 수 있을 뿐이지요.”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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