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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우의 음악이 있는 삶, 아재 탤런트의 청춘 클래식
강석우의 음악이 있는 삶, 아재 탤런트의 청춘 클래식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7.05.15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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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스타에서 배우, 라디오 DJ로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무른 남자, 강석우. 어릴 적 음악 시간만 되면 유독 신이 났다던 그는 일찍이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어린이였다. 중학생 시절 외계어 같은 음악가 드보르작의 이름을 듣고 킥킥거리던 까까머리 아이가 어느덧 아재 탤런트가 되었다. CBS FM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DJ로 맹활약 중인 그는 자신의 인생과 클래식 음악을 버무려 각박한 세상에 위안을 주고 있다.

“들리나요? 위로의 목소리가.”
매일 아침 9시면 어김없이 들리는 그의 따뜻한 목소리, 그리고 클래식의 아름다운 선율. 사람들은 그가 들려주는 음악과 인생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 시대 힐링 클래식의 명사 강석우. 최근 에세이 <강석우의 청춘 클래식>을 펴낸 그를 선릉역 인근의 한 북카페에서 만났다. 아버지 같은 포근함이 물씬 느껴졌던 그는 여느 방송 때처럼 편안한 말투로 음악 인생에 대한 예찬을 찬찬히 풀어놓았다.

음악이 있어 아름다운 삶

강석우에게 있어 음악은 고단한 삶을 지탱해 준 지렛대였다. 문화의 빙하기라고 해도 무방할 지난한 시대를 산 그가 음악교육을 제대로 받았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음악은 마치 운명처럼 그에게 조금씩 다가왔다. 어쩌면 아예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밖에 지나가던 차에서 ‘빵!’ 하는 클랙슨 소리가 난 적이 있어요. 선생님이 저 음이 뭔지 아느냐고 묻기에 ‘솔’이라고 대답했죠. 풍금 뚜껑을 열어 솔 음계를 찾던 선생님이 제게 잘 맞혔다고 하는 겁니다. 그날의 기억은 제가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데 큰 용기를 줬어요.”

이후 매일같이 음악에 둘러싸였던 그는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항상 음악으로 치유했다. 지금도 그때 그 시절 들었던 음악이 흘러나오면 아려한 풍경이 흑백필름처럼 휘돌아 간다고 한다.

“요즘도 가끔 파블로 데 사라사테 <지고이네르바이젠>의 화려하고 격정적인 선율을 들으면 ‘따라라라~, 딴, 딴, 따라라라, 따단!’ 선생님의 음성이 오버랩 돼 귓가에 메아리칠 때가 있어요.”

겨울만 되면 떠오르는 한 편의 그림 같은 장면도 있다. 거실 한가운데 아버지는 난로를 놓고 어머니는 김장하며 월동 준비를 하던 한옥 생활부터 시린 손을 호호 불며 해가 저물도록 썰매와 스케이트를 타던 기억, 꽁보리밥도 없어 형제들과 고구마, 가래떡을 구워 먹던 추억은 음악이 있어 아름답게 빛을 발했다. 이제는 결혼해 번듯한 가정을 꾸린 그는 주말에라도 잠시 짬을 내 가족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을 켜 주곤 한단다.

“과거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들을 그리워하며…. 자식들의 모습을 보며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회상도 하지요. 저에겐 그 시간이 굉장히 소중해요.”

언제까지나 그가 아이들과 함께 듣고 싶은 곡은 베토벤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로망스 2번이다.

 


그대의 찬 손

물론 그가 처음부터 클래식이라는 특정한 장르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청춘 시절 포크송부터 월드 팝까지 모든 분야를 총망라한 그다. 그런 그가 클래식 애호가가 된 것은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선생 덕분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그는 음대를 다니던 친구와 인연이 닿아 우연히 김 선생까지 만났다고 한다. 음악회에 초대받을 정도로 김 선생과 부쩍 가까워진 그는 음악을 접할 기회도 덩달아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겨울 국립극장에서 본 지아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 공연이 그의 인생에 날아와 고스란히 박혀 버렸다.

“<라보엠>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촛불이 꺼지는 순간 열쇠를 찾다 미미의 손을 잡게 된 주인공 로돌포의 ‘그대의 찬 손’ 아리아예요. 이 외에도 <라보엠>에는 좋은 아리아가 참 많습니다. 불현듯 푸치니의 오페라를 처음 만난 추운 겨울날 국립극장 2층에 앉아 있던 제 모습이 떠오르네요.”

전자음에 베이스가 들어가거나 비트가 강한 팝, 가요보다 잔잔하게 흐르는 클래식은 시끄러운 것 싫어하고 점잖은 그에게 더 어울리는 듯했다.

한걸음 더 클래식으로

클래식의 ‘클’자도 모르던 소년이 어쩌다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DJ가 된 지금. 그는 자신의 에피소드가 담긴 클래식을 ‘플레이 리스트’로 만들었다. 애청자들은 그때그때 기분에 맞춰 그의 추천 곡을 골라 들으며 그야말로 힐링을 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이 주는 마음 치유 효과는 꽤 톡톡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클래식이 어렵거나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안타깝다는 강석우.

“클래식이 어렵다는 것은 즉, 음악의 멜로디나 흐름이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에요.”
이에 그는 멜로디가 쉬운 것부터 찾아 들으면 클래식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사람들이 클래식 제목은 몰라도 유명한 성악곡이나 오페라를 한번 들어 보면 따라서 흥얼거릴 수 있는 게 많아요. TV 광고에 나왔을 법한 친숙한 멜로디이지요. 그런 음악을 먼저 감상해 보고, 변형 악곡,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발전해 가면 좋을 것 같아요. 클래식 한 곡만 들어도 슬프고 기쁜 감정이 승화되는 기분입니다. 시를 읽을 때처럼요. 그다음엔 음악의 스토리, 작곡가의 삶을 들여다보며 인문 교양까지 쌓는 거지요.”

영원한 청춘

이토록 클래식을 사랑하는 그가 음악인이 되지 않고 배우가 된 데 후회는 없을지 궁금했다. 더욱이 어릴 때부터 음악이 좋아 주일학교 성가대를 자처하는가 하면 학교에서 밴드부를 만든다는 이야기에 기뻐 날뛰던 그이지 않은가.

“맞아요. 저는 클래식에 대한 소망이 컸던 사람이에요.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어른이 됐지요. 지금도 ‘클래식’ 하면 어린 시절 음악이 그렇게 하고 싶던 소년이 생각나요.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제가 음악가가 됐다면 지금보다 행복했을까요? 장담은 못 하죠. 음악은 직접 하는 것보다 듣는 게 훨씬 좋은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배우로 어느 정도 성공한 그가 연기자의 길을 택했기에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스스로 호기심 천국이라고 말하는 그는 아직도 도전 정신이 넘쳐흐른다.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해야 적성이 풀린단다. 무엇이든 해선 안 될 100가지 이유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 편이다.

“왜 사람이 늙기 시작하는 순간이 호기심을 잃을 때부터라고 하잖아요. 평소 궁금한 게 있으면 못 참는 성격이라 핸드폰 검색을 생활화하고 있어요. 주변에서는 극성이라고 난리지만요.(웃음)”

그러다 보니 무엇인가에 늘 쉽게 접근하고, 또 오랜 시간 그 일에 집중한 끝에 얻는 것도 상당하다. 10년 전 문득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악보 보는 법을 배워 색소폰을 연주한 지 올해로 벌써 20년째다. 어느 경지에 이르고 말겠다는 포부는 없지만, 노력한 만큼 실력은 일취월장했다는 데 자부한다. 가히 그에게 영원한 청춘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다.

부부의 클래식한 사랑

청춘에게는 사랑도 빛바래지 않는 걸까? 며칠 전 부부가 함께 음악회에 다녀왔다는 그는 아내에 대한 사랑도 클래식처럼 변함없어 보였다.

“아내도 제 영향을 받아서인지 클래식을 무척 좋아해요. 그저께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왔는데요. 아내를 위해 연주회에 가기 전부터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그녀에게 미리 한 악장씩 들려주며 귀에 익게 하고, 슈만과 클라라의 러브 스토리를 읊어 줬지요. 실제 공연을 보고 난 아내가 말하기를, 한 멜로디가 영화 <클라라>의 한 장면에서도 흐른 적 있답니다. 어쩔 땐 저보다 기억을 더 잘하더라고요.”

자녀들도 함께 음악회를 즐기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의 딸 다은이는 요즘 연기 공부 삼매경에 빠져 정신이 없단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겠다는 딸  아이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는 강석우.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딸에게 꿈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한 것은 제 딸이라고, 여자라도 봐주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그 나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게 참 대견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만 했으니 학업 성적도 우수하거든요. 앞으로 다은이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상상이 안 돼요. 자신이 얼마나 능력을 발휘하느냐의 문제겠지요. 다만 저는 딸을 위해 기도할 뿐입니다.”

그 역시 지금껏 해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배우, 라디오 DJ로서의 활동은 물론 서양화, 색소폰 연주자로서 부단히 나아갈 계획이다. 봄비가 내리던 날, 마지막으로 그가 추천해 준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레인 앤 티어스>를 들으며 그의 앞날을 힘껏 응원해 본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Queen  양우영 기자 ] 촬영 협조 최인아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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