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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임재범의 사랑과 화해
가수 임재범의 사랑과 화해
  • 백준상 기자
  • 승인 2017.08.12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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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떠나보낸 임재범, 부친 임택근과 화해했다
▲ 임재범.


부인상을 당한 가수 임재범이 부친 임택근 씨와 화해한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임택근 씨는  송영남 씨 장례식장에 참석해 세상을 일찍 뜬 며느리를 애도하고 아들을 위로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재범 씨와 부친과의 왕래가 몇 년 전부터 지속된 것도 밝혀졌다. 가수 임재범의 사랑과 화해에 대한 스토리.

가수 임재범(55)이 부친인 임택근(85) 전 아나운서와 화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임택근 씨는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최근 며느리 송남영 씨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택근 씨는 한국 최초의 스타 아나운서로, 1951년 KBS의 전신인 중앙방송국에서 아나운서 활동을 시작해 1961년 MBC 개국과 더불어 이직해 MBC 아나운서 실장과 상무, 전무이사를 지냈다. 혼외자인 임재범과 손지창의 부친이기도 하다.

임택근 씨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며느리가 나보다 먼저 가 크게 속상했다”며 심경을 드러냈다. 이어 “아들 재범이에게 뭐라 위로했지만, 중요한 건 본인이 마음을 잘 다스리는 거다”라며 아들을 걱정했다. 아들 내외와 그동안 왕래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다른 가족들만큼은 본 것 같다. 명절 때면 아들 내외가 다녀갔었다”고 말했다.

가수 임재범의 슬픈 가족사는 가수 임재범과 임택근 씨 모두에게 멍에가 되었으며, 종종 언론매체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최근 한 종편채널에서도 송남영 씨의 장례식을 소개하며 혼외자 얘기를 화제로 올려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남의 가정사를 속속들이 알기 힘들고, 그 또한 허심탄회하게 다룰 수 없는 게 언론이다. 권장할 사안은 아니나 1960년대에 벌어졌던 일들을 현재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당시에는 대를 잇거나 아들을 들이는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중요하고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가수 임재범과 같은 혼외자 케이스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언론에 접근해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할 수 있는 임재범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의 혼외자들은 사회의 냉대를 감내해가며 숨죽여 지내야 했다. 임택근 씨는 “슬픈 가족사 얘기는 그만 하고 싶다”며 말을 끊었다. 그동안 언론에 수시로 오르내리며 한 마음고생이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임재범과 부친의 재회에는 전조가 있었다. 임재범은 지난 2011년 MBC 토크쇼에 나와 그동안 아버지와 왕래가 없었다고 털어놓으며 아버지를 찾아뵙겠다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한때 ‘밖에선 100점, 집에선 0점짜리 아버지’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찾아뵐 때가 된 것 같아요.”

당시는 임택근 씨가 사고를 당해 하반신 불수가 됐고 이후 담석 수술을 하며 힘든 시기였다. 임재범은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겼다. 부친 임택근 씨를 찾아 그동안의 회포를 풀고 그 후 명절 때면 아버지를 찾아뵌 것으로 밝혀졌다. 임택근 씨도 아들을 다시 보게 된 것이 2011년 이후라고 확인해 주었다.

가수 임재범과 부친 임택근 씨의 재회는 고 송남영 씨의 가는 길에도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이 불행한 가족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 가정의 충실한 가장이자 연예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 임택근 전 아나운서.


부친 임택근 전 아나운서와의 화해

“사랑 그 사랑 때문에 / 그 사람 때문에 / 내가 지금껏 살아서
오늘 오늘이 지나서 / 그 사람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어쩌죠
그 많은 인연에 왜 하필 우리 만나서 / 사랑하고 그대 먼저 떠나요 /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함께한 시절 / 잊진 못할 거야
늘 곁에서 함께 하잔 말도 / 내 목숨처럼 한 그 약속도 / 해줄 수 없어서 난 지킬 수 없어서 / 미안하단 말도 해줄 수 없을 것 같다 … ” - 임재범의 ‘사랑’

임재범(55)의 노래 ‘사랑’은 부인의 죽음을 미리 염두에 둔 것처럼 안타까움과 절절한 마음이 잘 묻어난다. 가수 임재범이 최근 부인상을 당함에 따라 그의 사랑과 가수 인생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임재범의 부인인 뮤지컬 배우 송남영 씨는 갑상선암이 간과 위로 전이돼 암 투병을 이어오던 중 향년 45세의 나이로 지난 6월 12일 별세했다. 임재범은 두문불출하고 부인을 간호하고 임종을 지켰으며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송 씨의 발인식은 14일 낮 12시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 있었으며, 장지는 에덴낙원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남영 씨는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으로 뮤지컬 ‘하드락카페’ ‘겨울나그네’ ‘페임’ ‘명성황후’   ‘스타가 될거야’ ‘쇼 코메디’ ‘브로드웨이 42번가’ ‘코러스라인’ ‘아가씨와 건달들’ 등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였다. 또 ‘락희맨쇼’ ‘오월의 신부’ ‘DMZ 퍼포먼스’ ‘2007. 겨울이야기’ 등의 연극에 출연했으며, ‘마고’라는 영화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지난 2000년 광주20주년 기념공연인 ‘오월의 신부’에 함께 출연했던 연극인·탤런트 이대연 씨는 송남영 씨를 “노래 잘 하는 연극인이었다”고 기억했다.
임재범은 1999년 ‘하드락카페’에서 연기한 송남영 씨를 보고 반해 2년 열애 후 2001년 결혼했다. 슬하에 딸 지수 양이 있다. 송 씨와 결혼한 임재범은 평범한 가정을 꿈꿨고 한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임재범은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했고 제가 먼저 좋아했다. 아내는 성격이 쿨한 편이고 잔소리가 없어 남자 같은 성격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오히려 잔소리는 제가 더 심한 편이다”라며 방송에서 부인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송남영 씨는 결혼 10주년 기념일을 즈음해 병원에서 갑상선 암을 진단받고 갑상선 암을 제거했으나, 암이 간과 위로 전이되면서 끝내 운명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임재범은 2011년 MBC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 출연해 부인의 투병 사실을 알린 바 있다.

그는 “육체의 병보다는 아내가 무척 외롭고 힘들어할 때, 한 여인의 남자로 남편으로 많이 아프고 힘이 든다”고 했다. 또 “아내가 아이를 키우느라 무대에 서지 못하는 스트레스로 암 선고를 받은 것이 아닌가 싶은 죄책감이 들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평생의 반려, 부인 송남영 씨와의 사랑

가수 임재범은 허스키한 톤이 매력적인, 한국의 ‘마이클 볼튼’으로 불린다. 유니크 한 목소리 창법과 음악적 독특함으로 동시대 어느 가수 못지않은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친화적이지 못한 성격과 상업성과의 타협 거부 등 그의 독특한 개성은 그를 음악계의 주류에 오래 머물지 못하도록 했고, 이는 그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하기도 했다.

임재범은 1986년 그룹 ‘시나위’ 멤버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2년 사이로 ‘외인부대’ ‘록 인 코리아’ ‘아시아나’ 멤버로 자리를 옮긴다. 한 그룹에 오래 있기에는 그의 친화적이지 못한 성격이 받쳐주지 못했던 것이다. 급기야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90년대에는 마약 투약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각종 루머에 휘말리면서 활동을 잠정 중단한 바도 있다.

이러한 그의 행위들은 불우한 성장과정과 무관하지 않은데,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 그를 반항아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가 너무 바르고 교과서적이다 보니 틀을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고 마찰을 빚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지인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장과장에서의 고통과 반항성은 그의 음악적 자양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는 한 방송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고통에서 영감이 나온다고 토로한 바 있다.
“슬픈 노래를 할 때 평생 편하게만 자라면 절대 표현을 못 합니다.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짓누를 때가 있습니다. 이건 끝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길이 열립니다. 많은 음악적 생각이 그걸로 많이 쌓입니다.”

노래도 결국은 ‘연기’의 한 영역이다. 노래에 감정이 실리지 않으면, 가수가 가사에 감정이입을 시키지 못하면 노래는 범작에 그칠 수밖에 없다. 임재범의 불우한 성장기와 파란만장한 삶이 그의 음악을 단련하는데 일조했다는 것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하지만 솟아오른 영감이, 음악에 대한 열정이 그의 가난을 어쩌지는 못했다. 임재범은 결혼 후 생활비가 없어 겨울에 난방을 제대로 못하고,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딸에게 TV는 한 시간만 보도록 부탁할 정도였다. 물 값을 아끼려 딸만 씻기고, 담배꽁초를 주워 피우기까지 했다고 토로했다.

그의 가난은 결혼 후 10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적을 때는 한 달 수입이 저작권료 7700원에 불과했어도 로커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 행사 같은 곳에 나가지 않았다. 무기력한 남편으로 6~7년을 보냈다고 했는데, 그의 심각한 우울증과 조울증도 그에 한몫했다.

하지만 부인의 암 진단과 투병은 그에게 가족을 지키고 돌봐야한다는 생각을 뒤늦게나마 갖게 만들었다. 그에게 큰 인기를 안겼던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했던 것도 아내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픈 생각에서였다.

임재범은 그 후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반항아 기질을 가지고 호불호가 강한 자신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아내가 위대하다”고 말했다. 부인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자신을 위해 원망 없이 묵묵히 사랑으로 자신을 보듬었다고 했다. 부인의 바람대로 성경을 읽으며 우울증도 극복할 수 있었다.
평생의 반려를 일찍 잃은 가수 임재범. 그가 현재의 시련을 딛고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Queen 백준상 기자] 사진 서울신문, MBC방송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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