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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의 거목, 박완서의 알싸한 유년 시절의 추억
우리 문단의 거목, 박완서의 알싸한 유년 시절의 추억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08.05.1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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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서 한국전쟁까지 암울했던 유년이
제 문학의 자양분이었습니다"

 
꿈처럼 흘러간 세월이었다. 언제나 나지막한 소리로 삶의 틈새 속에 숨어 있는 절묘한 울림을 노래하던 작가는 어느덧 팔순에 근접해 있었다. 박경리와 함께 우리나라 여성작가의 양대 산맥으로 우뚝 선 박완서 씨의 집은 구리시 아천동 아차산 기슭이다. 집 앞에는 어느새 화사한 꽃들이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고 있다. 황혼에 서 있다고 해서 마음까지 황혼은 아니다. 그이는 “해만 새로 떠도 사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식민지의 가난이 고스란히 묻어나던 고향 박적골
언제나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그이지만 아직도 그이는 보다 정직해지고 싶다고 한다. “그냥 좋고 쉬운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지금은 기운이 없긴 하지만 죽기 전에 꼭 한 번 완전하게 정직한 삶을 살고 싶어요.” 그이의 소설은 언제나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을 자애롭게 바라본다. 일상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고, 읽으면 읽을수록 찰지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서 비교적 다작의 작가임에도 그이의 소설은 나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지도 모른다. 그이의 삶은 소설의 모습처럼 질박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고 텃밭을 꾸미다가 일찍 잠이 든다. 작은 텃밭에는 상추와 고추가 자라고 그 주변으로 예쁜 야생화가 피어 있다. 부러 꾸미지 않아도 저절로 아름다운 것이 자연인 것처럼 그이의 글도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사실 그이의 글은 자극적이거나 휘황찬란한 기교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음식과도 같다. 그러나 자꾸만 음미할수록 뒤끝에 새겨지는 담백함과 깊은 향으로 인해 다시금 찾게 되는 것이 그이의 작품이다. 그래서 그이의 작품에 대해 많은 평론가들은 ‘오랜만에 오래된 흙 냄새 풍기는 어린 시절 뛰놀던 돌담길을 걷는 듯 아스팔트 냄새나 소음이 섞여들지 않은 오랜 옛길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이의 고향은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묵송리 박적골이었다.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흘러내리는 정지용의 ‘향수’ 같은 마을이 그이가 살았던 곳이었다. 그이의 작품 곳곳에 푸근한 시골 내음이 배어 있는 것도 바로 고향에서 세례받은 것이리라.
그 시절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이의 어린 시절은 식민지 말기의 암울함과 가난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누런 코가 흘러내려와 소매로 쓱 닦아 내리곤 했던 그이의 행색은 그보다 더 초라했다. ‘둥덩산 같이 솜을 둔 저고리’와 ‘솜바지 위에 어깨 허리가 달린 통치마’가 전부였다. 딱히 누구라 할 것 없이 동네 아이들의 모습은 모두 그러했다.
박완서 씨의 할아버지는 독불장군이었다. 가부장적이어서 송도라고 불리는 개성조차도 여자라고 다니지도 못하게 하면서도 양반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독특한 분이었다. 그이 집안의 여자들이 겉으로나마 할아버지를 무서워했던 반면 그이는 겉으로도 할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이에 대한 할아버지의 자애는 각별하기 그지없었다. 그이를 보는 할아버지는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여러 가지 마음이 모두 뒤섞여 있었다. 할아버지를 믿고 일부러 말썽을 부리진 않았지만 안 계시면 현저하게 풀이 죽었을 정도로 든든한 힘이 되어주신 분이 할아버지였다.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당신이 너무 오냐오냐하니까 쟤 버릇이 저 모양이라고, 당신만 안 계시면 쟤가 얼마나 고분고분해지는지 아시느냐고 타박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무섭게 화를 내셨다.

가난했어도 학교만은 좋은 학교 보내려던 어머니
“애가 믿는 데가 없어서 풀이 죽은 게 그렇게 보기 좋습디까? 으응, 그렇게 보기 좋아?” 하고 버럭 역정을 내시면서 할머니 면전에 삿대질까지 할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그이에게 아버지이자 어린 시절에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기둥이었고 힘이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출타를 하다 돌아올 때면 독특한 걸음걸이 하나만으로도 먼 곳에서도 단박에 알아볼 정도였다. 할아버지의 두루마기 주머니에는 언제나 사탕 아니면 약식이나 다과가 들어 있었다. 정정했던 할아버지는 동풍에 걸리신 이후 시름시름 앓아누웠고 졸지에 그이도 죽지 떨어진 새처럼 초라해졌다. 맏며느리에 손 귀한 집 장손을 낳아준 어머니는 대담한 사람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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