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에서 이름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할 때면 내용은 다르되 사회적으로 성공한 그들 공통의 철학과 신념, 덤으로 특유의 긍정의 기운까지 전해받곤 한다. 그리고 이번엔 하나 더, 그이가 걸어왔을 길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찬찬히 되짚어보기도 하였다. 차는 우리에게 너무나 일상이며 친숙해 그 실제를 대한다는 것이 오히려 낯선 아이러니한 분야다. 그러한 대상을 평생 묵묵히 연구해 온 모습…. 복작대는 도심 안 외딴섬 같은 삼청동, 골목 사이로 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한 한옥마을이 나온다. 차 연구가 오양가 원장은 이곳에 사랑하는 지인들과 함께 행다에 집중하기 위해 사용할 다실을 마련했다. 아담한 안뜰과 ‘ㄱ’자형 본채, 독립된 별채로 나누어진 이 집의 이름은 ‘무이현당(無二金賢當)’.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더러움과 깨끗함도 매한가지이듯 결국 모든 것이 하나라는 진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집이란 의미다. 올해로 ‘차랍(불가에서의 나이를 법랍이라 부르듯 차와 만나게 된 이후의 햇수를 그렇게 불렀다)’이 스물다섯이 되었다는 그이. 처음 차를 공부하러 간 날, 어릴 적 손님이 올 때면 엄마와 늘 하던 것이라 마치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단다. 다도는 한 마디로 ‘차상에 표현되는 종합예술’이기에 차를 공부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문화 전반을 공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한 잔의 차를 완벽히 내기 위해서는 그에 어울리는 음악, 꽃꽂이, 복식, 시, 도기, 음악 등 배워야 할 영역이 무척 많았기 때문. 대개 어떤 분야든 알 만하다 싶으면 꾀가 나기 마련인데 다도는 모든 영역을 복합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늘 새로운 학문인 것이다. 1 전통 한옥에서 볼 수 있는 정겨운 댓돌과 고무신.
1 오양가 원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그이와 함께 다도를 공부하는 다인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서울 시내 대부분의 한옥이 상업 공간으로 이용되는 마당에, 간간이 비워두곤 하는 이 집이 아까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격조 높은 우리 차를 보여주는 것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그 너머의 가치임을 안다. 누구나 외국에 갔을 때 그 나라의 제대로 된 차를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정해진 절차처럼 인사동을 찾지만 그 조차 중국 것이 대부분이라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때문에 오 원장은 늘 최고의 도기에 최상의 차를 대접하고자 한다. 한국을 방문한 OECD 장관들에게 차를 대접할 당시, 그들이 마시는 다기를 가리키며 “1천 살밖에 안 되었습니다”했더니 다들 깜짝 놀라더란다. 우리는 작아도 문화가 있는 나라이기에 차 한 잔에도 오랜 자존심을 담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우리 전통차의 격을 높이는 것이 그녀가 품은 대의적 목표라면, 또 다른 소망은 생활 속에서 보다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픈 노력이다. 음악회, 전시회 등에서 와인을 마시듯 차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결코 어려운 것으로 치부되지 않고 편안한 장소에서 만나 상대에 대한 배려와 예절이 이뤄지는 매개체로서 말이다. 그래서 그이는 요즘 티 파티 플래너, 티 테이블 코디네이터 등 후배들을 위한 직업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사상이나 인문 중심의 고루한 학문이 아닌 실생활에서 즐겁게 향유하는 대상이어야 발전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까닭이다. 지극히 한곳을 오래가면 그 길은 다 통한다고, 이 길의 끝에서 저 길이 닿기 위해서는 걸어온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많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 원장의 말에 의하면 그릇은 도공이 만들지만 다기는 다인이 만드는 것이란다. 그리고 그이가 꾸밈과 쓰임이 동시에 이뤄지는 최고의 다기를 만드는 ‘다인’임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1 가끔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차 시연을 보이기 위해 단을 높이 만들었다. 의자처럼 자유롭게 앉을 수도 있는 활용도 높은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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