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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 출신 봉사자, 케이시 라티그 TNKR 대표 '그가 탈북자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이유'
미국 하버드 출신 봉사자, 케이시 라티그 TNKR 대표 '그가 탈북자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이유'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8.11.23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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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 출신 봉사자, 케이시 라티크는 탈북자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미국 하버드 출신 봉사자, 케이시 라티크는 탈북자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일상 속 소소한 자유. 이를 위해 먼 이북 땅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이들이 있다. 탈북자. 그러나 이들은 어렵사리 발을 디딘 한국에서조차 의사 불통으로 또 다른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외래어 때문이다. 영어가 탈북인들에게 생존 문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흑인인데다 미국에서 교육 자유권에 대한 커리어를 지닌 케이시 라티크 씨가 이를 모른척할 리 없었다.

미국인인 케이시 라티크 씨는 1992년 짧은 여행 차 한국에 처음 왔다. 공식적으로 오래 머무른 것은 2010년 자유기업원(CFE) 비지팅 펠로우 때였다. 2년간 CFE에서 일했던 그는 이후 온라인 매거진, 프리덤 팩토리 등으로 옮기며 한국에 정착했다. 탈북자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게 된 데는 작은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한 탈북인이 그가 미국에서 온 줄 알고 영어를 알려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하버드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으며 원래 교육 자유권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였다.

“특히나 탈북인들은 오로지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도망쳐온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을 위해 영어를 가르쳐 주는 것은 제게 기쁨이었어요.”

그렇게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학생들은 하루하루 불어갔다. 홀로 그 많은 학생들을 케어 하는 데 한계를 느낀 그는 2014년 TNKR(Teach North Korean Refugees)를 설립, 자원 봉사할 영어 선생님 모집에 나섰다. 4년이 지난 지금 무려 400여명의 탈북자가 이곳에서 영어 교육을 받았다. 이 기간에 영어를 가르친 자원봉사자는 600명에 이른다. 그들은 서울 전역에 퍼져 영어로 어려움을 겪는 탈북인들과 1대 1로 만나 무료로 영어를 교육하고 있다. 기초가 없는 그들이 그룹 단위로 이뤄지는 학원 수업은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무실엔 탈북자들이 그에게 쓴 감사 편지가 가득했다. 지금도 이곳에서 영어를 배우겠다고 대기하고 있는 학생 이름이 웨이팅 리스트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탈북자들의 정체성까지 찾다

그동안 꽤 훌륭한 학생들도 많이 배출했다는 케이시 라티그 대표. 세계100대 여성에 뽑힌 박연미 씨도 TNKR 출신이라고 그는 자랑스러워했다. 박 씨는 2014년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북한 장마당 세대의 희망’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 북한의 식량 배급망이 무너진 1990년 이후 태어난 북한 장마당 세대의 특성을 소개하기도 한 인물이다.

“연미는 굉장히 잠재력 있는 친구였어요. 이곳에서 팟캐스트도 같이하며 세계적인 북한 인권 활동가로 책을 쓸 만큼 훌륭했지요. 지금도 TNKR에서 연미는 거의 신화적인 명사입니다. 어린 탈북자들이 연미를 보며 자신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요.”

물론 박 씨 말고도 TNKR에서 인생의 큰 돌파구를 찾은 탈북인들은 셀 수 없이 수두룩하다. 그는 박은희라는 친구도 매우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TV에도 활동하는 아이인데요. 그 친구는 여기서 영어 실력뿐 아니라 자기 정체성까지 찾은 케이스예요. 처음엔 자기 얼굴도, 이름도 가렸던 은희가 자원봉사자들과 만나면서 ‘내가 왜 얼굴을 가리고 살아야 하지?', ‘북한에서 온 게 뭐가 창피하다고?’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거든요. 지금은 저와 영어로 대화하는 데 전혀 문제 없을 정도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상당히 높아졌답니다.”

영어는 곧 생존권

케이시 라티그 TNKR 대표.
케이시 라티그 TNKR 대표.

인터뷰 내내 자기 제자들을 언급할 때면 미소 일색인 케이시 라티크 대표. 문득 하버드를 졸업한 그가 다른 좋은 기회를 마다하고 한국에서 봉사활동에만 전념하는 진짜 이유가 궁금했다. 실제로 그는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카토(CATO) 인스티튜트라는 싱크탱크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교육 정책 전문가로 활동한 덕에 높은 연봉으로 유혹하는 기관이나 연구소도 꽤 있었을 터다.

“여기서 탈북인을 돕는 게 그저 제게 올바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에 대한 보람도 지금이 더 크고요.”
이유는 단 하나. 자유를 찾고자 목숨까지 걸었던 그들에 대한 경이로움. 어릴 적 미국 흑인 역사 교육권에서 자란 그이므로 그도 그럴 터. 물론 정부 차원에서 탈북인을 지원하는 정책은 많다. 단지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봉사로 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영어는 그들에게 생존권이지 않은가. 북한에서는 영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알파벳도 모르는 이들에게 한국에서는 자연스럽게 녹아든 오렌지, 바나나, 버스, 커피 등 생활 영어, 즉 외래어도 매우 생소하게 들린다.

“이러한 단어만 툭 던지면 당체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거지요. 요즘 대학들은 영어 강의도 많은데요. 수능 없이 인터뷰만으로 입학한 탈북인들이 10년 이상 영어를 배운 한국 학생들과 경쟁이 될 리도 만무하지요. 대학을 졸업 못하면 취직도 힘들잖아요. 탈북자들에게 영어는 경쟁력이기 전에 생존권 문제입니다.”

소박하지만 간절한 꿈

이에 그들에게 보다 큰 도움을 주고자 단체를 설립한 케이시 라티그 대표. 프로그램을 기획, 선생님들을 모집한 후 이를 학생들에게 제공했을 때 그들이 혜택을 받아 삶이 변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행복을 느낀다고 그는 덧붙였다.

“마치 요리사가 음식을 대접했을 때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뿌듯함을 느끼는 것과 매한가지예요. 제 인생철학은 ‘내가 즐기는 것을 하자’인데요. 지금 탈북자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게 딱 그 일입니다.”

그의 꿈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이 단체가 지속적으로 탈북민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따로 학생을 모집하지 않거든요. 그들의 꿈도 사실 소박합니다. 한국 학생들처럼 외국으로 유학 가 더 공부하고 싶어 하고,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영어로 인해 자신감, 스스로 만족감을 얻으려고 해요. 직장 다니는 사람은 승진이 목표고요. 그들의 꿈과 앞으로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

문제는 예산이다. TNKR은 케이시 라티그 대표의 자비와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간혹 들어오는 후원금이 있기는 하지만 매달 기복이 심해 단체를 운영하기에는 다소 버겁다고 그는 호소했다. 탈북자들이 사회에 무사히 정착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도 분명 도움 되는 일이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해 보인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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