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0:05 (금)
 실시간뉴스
뉴요커를 사로잡은 김훈이 셰프, 보육원생들에 요리 가르치는 이유는?
뉴요커를 사로잡은 김훈이 셰프, 보육원생들에 요리 가르치는 이유는?
  • 김은정
  • 승인 2018.11.30 17: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리 천사
뉴욕에 된장 냄새를 풍기는 남자, 뉴요커를 사로잡은 김훈이 셰프.
뉴욕에 된장 냄새를 풍기는 남자, 뉴요커를 사로잡은 김훈이 셰프.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뉴욕. 그만큼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뉴요커들에게 정통 한식으로 승부를 건 남자가 있다. 김훈이 셰프. 세상의 잣대를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선택, 그 길에서 아름다운 행보를 하고 있는 그를 만나 봤다.

몇 해 전 한국에서 방송 프로그램을 촬영하다 보육원 아이들의 현실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아이들이 18세에 보육원을 나가고 나면 직업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는 소리를 원장으로부터 듣고 뭔가 도움을 줄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일회성으로 요리를 해 주는 것은 그때뿐이고 내 만족이더라구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그냥 가르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동참하는 셰프들의 식당에 취업해 아이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 목표죠.”

그래서 그는 함께 동참하고자 하는 셰프들에게 몇 년 하다 그만 둘 것 같으면 시작하지도 말라고 했단다. 섣불리 시작했다 쉽게 끝나면 아이들에게 상처만 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훈이 셰프의 취지에 동참하는 셰프들이 하나둘 모였고 지난해 7명, 올해는 14명으로 늘었다.

그중 청담동의 한 레스토랑은 직원들을 위한 기숙사도 지원해 보육원을 졸업하는 아이들의 자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얼마 전에는 영부인 김정숙 여사도 요리천사의 취지에 공감, 보육원 요리 봉사에 참여해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도 요리천사는 매주 요리 봉사는 물론 취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속적인 요리 교육을 펼쳐 갈 계획이다.

의사 가운 대신 조리복을 입은 이유

지극히 모범생이었던 김훈이 셰프는 어머니의 바람과 함께 본인도 의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의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막상 병원에서 일을 해 보니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기 싫은 일을 하다 보니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마음도 지쳐 갔다.

스트레스와 두통으로 시달리다 결국 휴학한 후 잠시 쉬는 동안 평소 관심이 있던 프랑스 요리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요리는 너무나 재미있고 적성에 맞아 힘들어도 즐거웠다. 이게 나의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일도 그렇지만 요리도 힘들긴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싫은 일을 해서 힘든 건 더 힘들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힘든 건 문제가 되지 않았죠. 싫은 일을 해 보고 요리를 선택했기에 어쩌면 요리를 계속했을 수도 있어요. 그만큼 요리도 힘든 일이거든요.”

요리를 한다고 했을 때 아들이 의사가 되길 바랐던 어머니의 반대는 심했다. 하지만 아내는 적극 그를 응원했다. 대형 로펌의 변호사였던 아내는 본인도 자신의 일을 싫어했기에 남편만이라도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길 바랐다.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그가 문을 두드린 곳은 미슐랭 3스타의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인 ‘대니얼’. 요리학도들이 돈을 안 줘도 좋으니 인턴으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줄을 서는 곳이다.

“레스토랑이 우리 집 근처에 있었어요. 그래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니 나오라는 거예요. 3일 동안은 셰프 얼굴도 못 봤는데 어느 날 저를 불러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묻더군요. 그리고 2주간 일을 했더니 보수를 받는 정식 직원으로 출근하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딱 하루 고민하고 ‘예스(yes)’라고 했죠.”

그의 실력을 알아본 것일까, 까다롭기로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몇 달간의 인턴 생활을 하기도 전에 2주 만에 그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 것이다. 그곳에서 충분한 경력을 쌓은 후 그는 동양 요리를 해 보고 싶어 MASA라는 고급 일식당으로 옮겨 최고의 재료로 요리를 만들며 실력을 쌓아 갔다.

뉴욕에 된장 냄새를 풍긴 남자

김훈이 셰프.
김훈이 셰프.


최고의 두 레스토랑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그는 뉴욕의 한식당들이 딱히 맛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돈을 버는 데 급급해 한식의 본래 맛을 버리고 적당히 현지식과 타협해 내놓는 한식은 한식에 대한 이미지만 실추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제대로 된 한식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한식당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릴 적 방학 때면 찾던 할머니 집에서 먹던 밥맛에 대한 향수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친할머니집이 전남에서도 배를 타고 몇 시간이나 들어가야 하는 오지 섬이었는데, 그때 할머니가 해 주시던 밥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불을 피워 가마솥에 밥을 해 주셨는데 밥 지을 시간이 되면 온 동네에 퍼지던 밥 짓는 향기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았죠.”

어릴 적 가마솥 밥의 냄새를 잊을 수 없던 남자는 이제 뉴욕에 된장 냄새를 풍기고 있다. 2010년 맨해튼의 식당가에 문을 연 한식당 ‘단지’의 메뉴는 잡채, 부대찌개, 은대구조림 등 정통 한식과 불고기, 제육볶음 등을 빵에 넣어 만든 버거류 등 퓨전 한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한식의 맛을 살리기 위해 된장, 고추장, 간장, 고춧가루 등 장류와 참기름 등을 모두 한국의 시골마을에서 공수해 오고 있다.
그 마을은 6.25 때도 전쟁이 났는지도 모를 만큼 아주 오지인 곳이라고. 그렇게 청정한 지역에서 정성껏 만든 된장과 고추장으로 만든 요리는 뉴요커들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2012년에 문을 연 한국식 ‘주막 한잔’에서는 막걸리, 어묵탕, 떡볶이, 순대 등을 내놓았는데, 뉴요커들이 한국의 대표 간식 맛에 열광했다. 뉴욕타임즈는 후니 킴의 요리를 탐험한다면 큰 기쁨을 얻을 것이라며 ‘한잔’을 뉴욕 10대 레스토랑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한식당으로 승부를 걸어 성공한 그이지만 식당 오픈을 할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처음에 문을 열고 3개월 정도는 손님이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초조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내 입에 만족스럽고 맛있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혹시라도 손님이 없다면 내가 뭔가 부족해서 그러려니 생각하면 되는 거구요. 그래서 잘 될까 잘 안 될까 불안해하진 않았어요.”

식당 오픈 후 3개월간은 한가했다. 하지만 초조해하지 않고 그 시간 동안 차근차근 식당의 시스템을 정비해 나가며 흔들리지 않았다. 그랬더니 오픈 다섯 달이 지나자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욕심을 버리고 초심으로 손님들을 맞이한 결과였다.
“마스터 세프 코리아 심사 때도 보면 많은 요리사들이 자신의 요리에 지나치게 욕심을 내고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요리사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가 없었습니다. 요리는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식재료부터 철저히 해야 진정한 셰프

김훈이 셰프는 한국에 오면 꼭 제주도에 며칠간 내려간다. 그곳 농장에서 직접 식재료를 가꾸고 재배하는 지인과 함께 좋은 식재료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있다.

“셰프의 완성은 식재료까지 생각하고 제대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은 식재료를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요즘은 농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식은 중간이 없어요. 몸에 좋거나 안 좋거나 두 가지에요. 그래서 몸에 좋은 요리를 만들려면 식재료까지 신경을 써야겠더라고요.”

그리고 식당에서 조금만 신경을 써 식재료를 다룬다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비쳤다.
“채소에 묻은 농약을 씻어 내기 위해 식초 몇 방울만 넣어 씻어도 큰 도움이 돼요. 그런데 식당들이 그렇게까지 신경을 안 쓰고 대충 씻어 요리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워요.”

김훈이 셰프의 식당에서는 식초를 넣어 채소를 씻는 것은 기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음식을 할 때 레시피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레시피보다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며 맛을 찾아간다면 굳이 정형화 된 레시피는 필요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의학도의 길을 버리고 전혀 다른 요리사의 길을 선택한 그에게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었다.
“그런 일을 막상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참 결정하기가 어렵죠. 하지만 한 번뿐인 인생인데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사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힘들게 하니까요.”

인생길을 걸어가며 누구나 한 번쯤 선택의 기로에서 방황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세상의 잣대가 아닌 ‘내가 행복한 길을 선택했기에 후회도 없고 행복하다’는 김훈이 셰프. 그의 행복 에너지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눔의 온정으로 퍼져 아름다운 빛을 발하길 바란다.

[Queen 김은정 작가] 사진 양우영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