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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신라 문무왕의 뜻...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
부석사, 신라 문무왕의 뜻...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
  • 유화미 기자
  • 승인 2019.01.26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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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산사 4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 부석사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 부석사

경상북도 영주시 봉황산 중턱에 자리 잡은 부석사는 신라의 불교 역사를 품고 있다. 통일 신라의 주류적 사상이 된 화엄종의 시조라 불리는 의상이 직접 창건한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서 무구한 세월동안 같은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 산사 4번째 부석사를 만난다.

의상과 선묘의 영화 같은 사랑이야기가 담긴 창건 설화

부석사는 역사적인 가치 외에도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담긴 창건 설화로도 유명하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부석사의 창건 설화는 의상과 선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의상이 당나라에서 불교를 배우기 위해 유학하던 중 머물렀던 집의 딸이었던 선묘는 의상을 사모하게 되었다. 선묘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였지만, 이미 불교에 귀의하기로 결심한 의상은 선묘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나라가 신라를 공격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신라로 돌아가는 배 위에 오른 의상을 보호하기 위해 선묘는 바다에 뛰어들어 용으로 변해 배웅했다.

신라로 돌아온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하기 위해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한 무리의 도적떼가 위협해 절을 짓기가 어려워졌다. 용이 된 선묘는 이번에는 바위로 변해 공중에 띄워 도적떼를 몰아냈다. 의상은 용이 바위로 변해 무사히 절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하여 절의 이름을 부석사라 지었다.

부석사 주불전인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바로 이 바위가 용이 된 선묘가 다시 바위로 변한, 바로 그 바위라고 한다. 의상에 대한 선묘의 지극한 사랑은 부석이라는 바위로 남아 오늘 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신라 문무왕의 뜻을 받들다
의상이 창건한 부석사

1 아름다운 부석사의 가을 전경 2 고려시대 목조건물인 부석사 무량수전 3 고려 공민왕이 직접 썼다고 전해지는 무량수전 현판
1 아름다운 부석사의 가을 전경 2 고려시대 목조건물인 부석사 무량수전 3 고려 공민왕이 직접 썼다고 전해지는 무량수전 현판

당나라 화엄사에서 불도를 닦던 의상이 670년,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신라로 돌아온다. 이후 문무왕의 명을 받들어 676년에 부석사를 창건한 뒤 화엄종의 중심 사찰로 삼았다.

이 곳에서 의상은 훌륭한 제자를 많이 배출했다. 의상의 제자 중 하나였던 신림은 화엄종을 크게 중흥시킴과 동시에 수많은 화엄대덕들을 양성해낸다. 이 화엄대덕들은 국가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아 부석사를 대규모 사찰로 키워갔다.

부석사와 왕권의 돈독한 관계는 신라왕의 초상화를 새겨놓은 벽화가 부석사에 있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벽화는 후삼국이 전쟁을 벌일 때 궁예가 부석사에 이르러 칼로 내려쳤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원융대덕이 부석사에서 대장경을 찍었는데, 지금 부석사에 전해지는 화엄경판이 원융대덕 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때 부석사의 많은 건물들이 중창되거나 창건되기도 했다. 아마도 공민왕 7년에 입은 왜적의 병화로 전각들을 다시 세워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석사 무량수전 정면에 걸린 편액은 공민왕의 글씨다.

조선시대 때는 부석사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잦았다. 근래에 들어서는 1919년에 무량수전과 조사당을 해체, 수리하였으며 취원루를 동쪽으로 옮기고 취현암이라 하였다. 1977년부터 1980년에 걸쳐 전체적으로 정화하면서 일주문, 천왕문, 승당 등이 새로 지어졌다.

아미타여래를 모신 국보 제 18호 무량수전

4 안양루 계단에서 바라본 무량수전 앞 석등 5 무량수전 동쪽 언덕에 세워진 부석사 삼층석탑
4 안양루 계단에서 바라본 무량수전 앞 석등 5 무량수전 동쪽 언덕에 세워진 부석사 삼층석탑

부석사에는 역사적으로 가치가 뛰어난 중요 문화재들이 많이 존재한다. 국보 제 17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국보 제 18호 무량수전, 국보 제 19호 조사당, 국보 제 45호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국보 제 46호 영주 부석사 벽화 등의 국보 외에도 여러 개의 보물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가 있다.

이 중에서도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하는 것은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 ‘무량수전’이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몇 개 되지 않는 고려 시대 목조 건물 중 하나다. 우리나라 불교 건물의 형식과 구조를 연구하는 기준이 되는 가치 있는 문화재다. 서방 극락을 주재한다는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다 하여 ‘무량수불’이라고도 불린다. 이런 무량수불을 모신 전각이기 때문에 무량수전이며, 무한히 수를 누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다.

관람 정보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관람료 : 어른 1,200원 / 청소년 1,000원 / 어린이 800원
●주차요금 : 승용차 3,000원

[Queen 유화미 기자] 사진 영주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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