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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종이컵! '상상가’ 김영세 회장의 에코 철학
굿바이 종이컵! '상상가’ 김영세 회장의 에코 철학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01.27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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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세 회장.
김영세 회장.

김영세 회장은 디자이너이자 사업가, 상상가다. 상상으로 디자인하고, 사업도 하는 국내 1세대 산업디자이너. 이노디자인을 이끌며 삼성전자 가로 본능 휴대전화, 라네즈 서울 슬라이딩 팩트, LG 양문형 냉장고 등 히트 상품을 줄줄이 만들어 낸 그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성화봉, 성화대도 바로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후 한참 조용했던 그가 불현듯 종이컵 안 쓰기 운동에 나섰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영세 회장을 만나기 위해 찾은 이노북카페에는 기분 좋은 커피 향으로 가득했다. 언제 보아도 유쾌한 면모가 역력한 김 회장은 여유롭게 차 한잔을 즐기고 있었다. 유난히 커피를 사랑하는 그는 어느 순간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신 후 나올 때 쓰레기통에 종이컵 하나씩 버리고 나오는 자신을 발견했다는데….
“저는 하루 평균 세 번씩 카페에 가요. 제가 일 년에 버린 종이컵만 천 개가 되는 셈이죠.”

이는 비단 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미국 리서치 자료를 보면, 1 년에 없어지는 커피 종이컵이 약 580억 개에 이른다. 무려 나무 2,000만그루에 해당하는 양이다.
“와,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자수한 겁니다. 더 이상 종이컵을 버리지 않겠다고요!”

환경 감수성에 눈 뜨다

뒤늦게나마 환경 감수성에 눈을 뜬 김 회장. 특히 산업디자이너인 그는 디자인을 통해 ‘굿바이 페이퍼 컵(goodbye paper cup)’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아예 종이컵이 필요 없는 드립커피 메이커 겸 텀블러를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제품명은 모래시계란 의미의 프랑스어 ‘샤블리에(Sablier)’. 커피를 만들고 담는 원리가 모래시계와 비슷해 붙인 이름이다. 디자인도 모래시계를 닮았다.

실제 한쪽 면이 드립커피 메이커로 구성됐다. 거름 막에 분쇄한 원두커피 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로 우려낸 뒤 뚜껑을 꽉 덮은 채 뒤집으면 반대편을 커피 텀블러처럼 활용할 수 있다. 일반 드립커피 메이커와 달리 종이 필터도 필요 없다. 첫 스케치부터 시작해 제품 개발까지 약 2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간단한 기술을 접목해 설거지도 편하다. 텀블러를 뒤집어도 반대쪽으로 물이 안 새는 디자인은 이미 특허 등록까지 완료됐다.

“요즘 ‘자연 친화’라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요. 디자인 역시 예쁘게 만들어서 많이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세상을 아름답도록 만드는 게 디자인의 생명이에요. 디자인하면서 쓰레기가 많이 생기면 곤란하죠. 샤블리에라면 커피 문화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머지않아 카페에 종이컵을 버리면서 나오는 사람들이 미개한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싶어요. 세련된 사람이라면 돈 낭비, 시간 낭비 안 하고 자신이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며 환경까지 보호할 거라고 믿어요.”

이어 굿바이 페이퍼 컵 캠페인을 통해 조성된 수익 2%는 친환경 모금 운동에 기부한다고 그는 전했다. 샤블리에는 와디즈 크라우드 펀딩에서 한 시간 반 만에 목표치를 달성할 만큼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수익금 일부는 아프리카 커피 농장에 지원하려고요. 그들의 커피를 사다가 가공, 로스팅, 패키칭해서 다시 파는 거지요. 커피 문화 자체가 하나의 에코 비즈니스 모델이 되는 겁니다.”

세이빙 더 얼스 바이 디자인

바야흐로 공유 경제 시대다. 그의 말처럼 산업 디자이너가 그 중심에 선다면 어떨까? 이번 작품으로 인해 자신의 디자인 철학까지 모조리 뒤흔들렸다는 김영세 회장. ‘세이빙 더 어스 바이 디자인(Saving the earth by design)’. 이제는 이 문구가 그의 디자인 목표가 되었다.

“디자인으로 지구촌을 보호하자. 이게 제 모토가 되어 버렸어요. 앞서 이야기했듯 디자인은 세상을 더 편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요. 동시에 자연을 보호하는 것도 디자인의 몫입니다. 이 제품이 히트를 친다면 저희 카페도 망할 거예요. 그럼에도 저는 친환경 운동에 동참할 겁니다. 제가 나무를 심진 않아도 최소한 자르지 않는 데 일조하면서요.”

특히 공유 경제 시스템 안에서 디자이너가 만들어 낸 새로운 생각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할 터. 어쩌면 커피 농장이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잘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는 미래를 내다봤다. 자연 친화적인 측면에서 더 이상 나무를 자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이다. 생산하는 사람과 비즈니스 모델을 더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지금의 커피 문화로 돈을 많이 벌고 있는 모 기업들의 축이 앞으로는 다른 경제 모델로 옮겨질 수도 있겠다. 디자인 하나로 자연도 보호하고 새로운 경제도 창출할 것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김 회장.
“타깃은 밀레니엄 에이지 그룹이에요. 20~30대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커피 문화를 세계적으로 확산시켜 나갑시다. 그 시작점이 한국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어요?”

디자이너의 상상력과 추진력의 원천
 

김영세회장.
김영세회장.

언제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엉뚱한 생각으로 세상의 변화를 선도해 온 김영세 회장. 1986년 실리콘밸리에 디자인센터를 세우고 디자인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미국 ‘IDEA(International Design Excellence Awards)’에서 금·은·동을 휩쓰는 진기록을 남긴 그에게 거는 사람들의 기대가 사뭇 크다. 더욱이 그는 디자이너이자 사업가, 상상가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남다른 창의력으로 혁신가로 평가받는 그가 평소 어디서, 어떻게 디자인 영감을 얻는지 궁금했다.

“아무 때나요. 비교적 한가할 때? 또는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도 아이디어가 스치지요. 제 영감의 반은 남에게서 나와요.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우선 상대방과 대화하다 동기가 만들어지고, 그러다가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단초가 생기지요. 이는 사람을 만나든 예쁜 경치를 보든, 상상을 하든 마찬가지예요.”

샤블리에의 경우 어느 한가로운 오후에 커피를 마시다 번쩍 떠올라 디자인했다고 한다.
“하도 심심하니까 별생각을 다 한 거죠.(웃음)”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발명가에게는 기발한 아이디어뿐 아니라 추진력 또한 필요한 법. 그의 추진력은 또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일단 혼자서 상상하며 새로운 것을 찾은 후 이걸 드라이브할 때는 이 제품이 탄생할 때를 상상해 보면 된다고 그는 독려했다.

“그럼 힘이 생겨요. 샤블리에를 만든 2년 동안 저도 이 상상을 끊임없이 했어요. 디자이너의 가장 커다란 기쁨이 자기 아이디어로 사람들이 편리해 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거예요. 엄청난 보람을 느끼죠. 이런 생각을 하면 절대 중간에 멈출 수 없어요.”

이는 오늘도 그가 새로운 디자인을 연구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일이 하기 전부터 설레고, 하는 동안 몰입할 수 있으며, 자신이 열심히 해 온 결과가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점보다 ‘줄긋기’에 답이 있다

다시 일하면서 설레는 사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남을 설레게 하는 사람 이야기. 이들을 가리켜 그는 ‘퍼플칼라(purple collar)’라고 말했다. 퍼플칼라는 화이트칼라(white collar), 블루칼라(blue collar)와 구분되는 다른 종류의 직업인으로, 직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이 진짜 할 수 있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뜻한다. 올해 팬톤 회사에서 꼽은 2018년 컬러 역시 퍼플이다.
“퍼플은 신비로우며 혁신적이고 생각이 깊은 색상이지요.”

특히 핵심은 디자인적 사고에 있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 김 회장. 여기서 디자인의 출발점은 생산자가 아니라 사용자여야 한다.
“디자인은 미술이나 그림 그리기가 아니에요. 사용자가 뭘 원하는지 찾는 게 1순위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고민이 있다면 점보다 선에서 답을 찾아보라고 그는 강조했다.
“지금 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나 정해 놓고 자꾸 키우려는 데만 시간을 보내지 마세요. 자기가 하고 있는 게 하나의 점이라면, 그 주위에 있는 수많은 점들도 함께 봐야지요. 잠시 자기 점을 키우려고 애쓰는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점과 남의 점을 연결해 보는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 선에서 답이 나올 수 있어요. 이를 저는 일명 ‘줄긋기’라고 표현하지요. 점보다는 줄긋기에 비결이 있더랍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젊은이들에게 특히 더 절실한 것 같습니다.”

빅 디자이너 김영세 회장이 앞서 보여 줄 혁신의 삶을 더욱 기대해 본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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