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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태 서울대 교수의 흥미로운 자녀 진로 교육법
조영태 서울대 교수의 흥미로운 자녀 진로 교육법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01.30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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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농업고 권유하는 까닭은?
조영태 교수.
조영태 교수.

“저는 제 딸에게 농고를 가라며 설득하고 있어요. 베트남어를 공부한 후 그곳에서 사업을 해도 좋고요. 대학은 조금 늦게 가도 상관없습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의 이야기다. 국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대학의 교수가 자녀에게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게 할 법도 한데, 대학은커녕 농고와 베트남어라니? CBS 교양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과 저서 <정해진 미래>를 통해 알려진 이 흥미로운 자녀 교육법은 그가 인구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영태 교수는 슬하에 딸 둘을 두었다. 어느 한가로운 토요일 오전, 조 교수는 당시 초등하교 6학년 둘째 아이를 데리고 강연에 나선 적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당시 강연을 성공리에 마친 그는 사인회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한 청중이 옆에 있는 딸에게 ‘넌 참 좋겠다. 아빠가 이렇게 유명한 교수님이라서~’라고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때 딸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는 조영태 교수. 아이가 말하기를 ‘아니요. 저는 배가 아파요’였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딸에게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찬찬히 물어 봤어요. 자기가 유명한 게 아니라서 그랬대요. 자신도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에 말이 그렇게 나오고 말았답니다.(웃음)”

그리고 딸이 다시 그에게 물었단다. ‘나도 아빠처럼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 ‘글쎄, 연예인 말고 뭐가 있을까….’ 이후 자녀 미래에 대한 그의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미래 직업 가치를 결정하는 세 가지 요소

무엇보다 스스로 걸어 온 길을 쭉 되돌아보았다는 조 교수. 사실 그는 교수로서 꽤 일찍 자리 잡은 케이스에 속한다. 1997년 군대를 다녀온 후 대학 졸업, 미국으로 유학을 가 1999년 석사, 2002년 박사 과정을 모두 마친 그는 유타주립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2004년 바로 서울대학교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나이 만 29살에 처음으로 대학 교수가 된 것이다.

‘그래, 나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답은 자신이 했던 학문, 바로 인구학에 있었다. 2000년대 초기 미국에는 인구학자가 상당히 많았으나, 그가 박사과정을 밟을 때 베이비 부모 세대 교수들이 줄줄이 은퇴를 선언했다. 마침 미국 내 대학에서 대대적인 인구학 교수 채용에 나섰고, 그는 참 운이 좋게도 다소 일찍 대학교수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당대 한국의 상황은 어땠을까? 한국에서는 인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별로 없었을 뿐 아니라 교수를 뽑는 대학도 거의 드물었다. 그러던 어느 시기에 공교롭게도 저출산이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돼 국내에도 인구학자가 필요하게 되었고, 유일하게 딱 한 명 있었던 서울대 인구학 교수가 정년퇴임을 맞자 모든 게 준비된 그가 대체 인력으로 채용되기에 이르렀다.

“제 인생을 돌이켜 보니 미래 직업 가치를 좌지우지할 핵심은 희소성이었어요. 거기에 전문성, 실력까지 겸비해야 했지요. 즉 이 세 가지가 잘 맞아 떨어져야 좋은 직장을 얻고, 직업적 안정성이 보장되며, 경제적 보상도 높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농고를 추천하는 이유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인구학자로서 자녀의 진로교육을 제시, 주목받고 있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인구학자로서 자녀의 진로교육을 제시, 주목받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 ‘그럼 지금부터 자녀에게 교수가 될 준비를 하도록 하면 될까?’ 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 터. 그러나 인구학적으로 보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대학교수가 될 가능성은 확 감소할 것이라고 그는 경고했다. 2002년부터 태어난 아이가 대폭 줄어들어 이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쯤이면 전국 대학교 학생 정원에 비해 입학생 수가 현저히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대학의 학생 수요가 여전히 많은 데도 입학생 공급이 줄어들게 되면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더 힘들어질 뿐 아니라, 설사 되더라도 직업적 안정성이 떨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더 이상 들어올 학생이 없어 대학이 아예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를 판에 과연 대학교수의 정년이 보장될지 많은 의문이 남는 것은 물론이다. 이에 그는 아이들에게 교수를 시킬 생각은 이미 접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사업을 하라고 했어요. 나중에 나이 들어서 사업하다가 실패하면 재기가 힘드나 어릴 때는 모든 것을 쏟아붓다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요. 그런데 아이들은 사업도 좋지만 무엇인가 직업적인 성취감도 얻고 싶어 하더라고요. 여기에 희소성까지 있는 게 도대체 뭘까 고심하다 보니 농업이라는 대안이 나오게 된 겁니다.”

그도 그러한 것이 요즘 농촌에 가면 젊은이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또한 농업은 이 세상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원천 산업인데 사라질 리 만무하다. 반면 전체 인구의 3%가 대한민국 국민 5,000만 명을 먹여 살리고 있다. 그 3%마저도 대부분 고령자이므로 10년 안에 농업인은 약 1%로 급락할 확률이 크다고 그는 설명했다.

“어때요? 희소성은 보장되지요? 다들 나이 지긋할 때 귀농하겠다고 아우성이나 동네 주민들 배척이 심해요. 그러나 어린 친구들이 가면 무척 좋아하지요.(웃음) 제가 둘째 아이에게 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해 어릴 때부터 전문성을 키우라고 설득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꼭 단순히 농사를 짓기보다 농업을 기반으로 세계를 누비며 농유통 사업도 꿈꿔 볼 만하므로 경제적 가치까지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단 그는 농고를 졸업한 후 직접 농사를 지어 볼 수 있는 기반 등 사회, 교육 시스템이 마련되는 데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첫째 딸은 다소 이르고 둘째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시기면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선취업 후진학

혹시 너무 어려서부터 특정 분야만 파게 되면 아이의 시야가 좁아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도 있겠으나, 이는 결국 부모와 자녀가 선택할 문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공 하나를 골라 대학에 가는 것도 매한가지이지 않은가. 오히려 취업 후 대학 진학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영태 교수는 강조했다. 사실 그는 전 국민이 대학을 두 번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아직까지 대학의 수요보다 학생 공급이 많지요. 제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쯤이면 수요와 공급은 역전될 겁니다. 그동안 아무리 주장해도 실현되지 않았던 선취업 후진학의 시대가 머지않았어요. 지금 19살이 대학에 가기 위해 다른 친구들과 경쟁하려면 평가 요소가 고등학교 내신과 수능 점수밖에 없잖아요. 만약 19살뿐 아니라 25살도 대학에 지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신이나 수능뿐 아니라 다른 평가 요소가 필요해요. 입시제도가 바뀌면 수능을 안 봐도 사회 경력만으로 비교적 쉽게 대학에 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 경영학과에 지원한 두 학생 후보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한 학생은 강남에서 열심히 학원에 다니며 공부해 좋은 수능 점수를 받았다. 또 다른 학생은 비록 수능 점수는 안 좋지만 농고 졸업 후 직접 손에 흙도 묻히며 농산물 유통을 해 본 사회 경험이 있다. 이때 당신이 대학 입시 평가자라면 누구를 뽑을 것인가? 대부분 후자일 것이라고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정말 두 번째 길이 열리는 날이 올까?' 설령 그렇더라도 서울대는 아니겠지, 많은 부모의 푸념이 들려오는데….

“서울대에서도 벌써 이러한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전국 모든 대학이 겪어야 할 변화예요.”
이에 그가 딸들에게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단다.

“대학은 잠시 미뤄 두고 베트남으로 가자! 현재 인구학적으로 봤을 때 베트남의 발전 가능성을 이길 국가는 없습니다. 이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넘쳐나므로 일찍이 베트남어를 배워 그쪽 전문가가 되어도 희소성과 전문성, 실력 측면에서 다 맞아떨어지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베트남에서 한 2년간 무엇을 하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 돌아오면 대학에 가는 게 지금보다 훨씬 수월해질 거고요.”

스스로 설계하는 직업

직업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키울 수 있었던 그와의 인터뷰. 자신의 자녀 진로 이야기가 각종 매체를 통해 유명세를 치르자 그는 매일같이 ‘그럼 우리 아이에게 어떤 일을 시키면 좋을까요?’라고 묻는 이메일이 솟구친다고 호소했다.

“미래에 뜰 직업은 저도 알 수 없어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도 많이 읽으며 스스로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저는 그저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해 줄 뿐이고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엇이든 미래 가치를 판단할 때 절대 오늘을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조영태 교수. 지금처럼 마냥 사교육을 통해 열심히 스펙 쌓는 것도 결코 답이 될 수 없단다.

“현대 부모님들의 판단 기준은 옆집이지요? 그러지 말고 멀리 보십시오. 아이들 역시 인문학, 사회과학, 예체능까지 융합 능력이 중요시되고 있는데요. 이는 학교 교육만으로 불가능해요. 아이에게만 인문학서, 자기계발서를 읽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부모님이 먼저 다양한 독서를 통해 직업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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