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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대륙 아프리카, 그 색다른 음악의 감성을 듣다(4) 앙골라의 보석 브루나 타티아나
검은 대륙 아프리카, 그 색다른 음악의 감성을 듣다(4) 앙골라의 보석 브루나 타티아나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06.06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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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트래블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거점지역으로 수백 년 동안 수탈과 핍박에 시달려온 나라 앙골라. 앙골라는 1975년 독립된 이후 좌우의 이념 대립에서 비롯된 내전으로 50만 명이 목숨을 잃은 나라이다. 전 세계에서 지뢰가 많이 묻혀 있는 나라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 발목지뢰에 발이 잘려나간 미인들이 미인대회를 여는 나라. 이달은 앙골라의 보석 브루나 타티아나(Bruna Tatiana)를 말한다.

글·사진 김선호(세계음악 칼럼니스트)

이 나라의 음악은 수도 루안다를 중심으로 주요 대도시에서 다양한 음악의 스타일이 공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도미니카 공화국 댄스 음악 스타일 메렝게(merengue), 킬라판다(kilapanda), 카리브 해 인근 섬에서 유행하던 프랑스풍 음악 주크(zouk), 앙골라 전통음악 센바(semba), 키좀바(kizomba), 쿠두루(kuduro), 하모니카와 아코디언 반주의 음악으로 루안다 해안지역에서 유행하는 음악 리비타(rebita) 등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앙골라의 뮤지션들은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자유로운 음악 활동은 하지 못했다. 1975년 이전에는 포르투갈 식민 정권의 탄압을 받았고, 앙골라 독립 후에는 막시스트 좌파 정권 아래 좌우의 극한 이념대립의 희생물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앙골라 독립 전에는 독립을 주장하던 그룹 멤버들이 암살당하는 일이 있었고, 독립 후에도 사회 문제를 노래하던 뮤지션들이 적지 않게 살해당했다.

아무튼 이런 고난의 역사와 내전의 고통 속에서 2002년 반군 지도자 조나스 사빔비가 전사한 후 내전은 종식되었다. 또 이 시기 많은 뮤지션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오늘날 평화로운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기도 했다. 이제 앙골라의 노래 속에는 투쟁의 언어가 점차 사라지고 사랑의 밀어들이 채워지고 있다. 이런 노래를 부르는 신세대 대표적인 가수로 브루나 타티아나가 있다.

브루나 타티아나는 싱어송 라이터로 1997년 데뷔한 후 1999년 <마이 사이드 주크(My side Zouk)>이라는 앨범을 내고, 그해 앙골라 신인음악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2002년 <브루나(Bruna)>라는 표제의 음반을 내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고, 2017년에는 <Roi o Osso>, 2018년에는 <Amo-te>를 발표해서 또 다시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녀가 추구하는 음악의 장르에 대해서는 조금 애매한 평이 있다. 즉 아프리칸 ‘R&B’이기도 하고 ‘Afropop’이라고 하기도 한다.

평론가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실제로 음악을 들어보면 아프리카적이지 않고 우리에게는 친숙하게 다가온다. 말랑말랑하고 듣기 좋으면 됐지 뭐 장르는 그만 따져도 될 듯싶다. 가사도 사랑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런데 애석하게 노래는 적도 이남의 아프리카인들이 사용하는 반투족(族) 어로 부르기 때문에 사실 못 알아듣는다. 참고로, 앙골라는 국민의 95%가 반투족 어를 사용한다. 어떤 곡은 앙골라 공통어인 포르투갈어로 부른다. 유튜브에 올라온 곡들은 대부분 포르투갈어로 부른 곡이다.

한편으로, 이렇게 사랑 가득한 노래들이 내전으로 상처받은 앙골라 사람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준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김선호 대표는...
세계음악 칼럼니스트
음악 에세이 <지구촌 음악과 놀다>(2016 세종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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