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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라, 핀란드에서 온 페트리 칼리올라 "‘팬츠드렁크’ 한번 즐겨볼래요?"
행복한 나라, 핀란드에서 온 페트리 칼리올라 "‘팬츠드렁크’ 한번 즐겨볼래요?"
  • 송혜란 기자
  • 승인 2019.07.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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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리 칼리올라 전 주한 핀란드대사관 프로젝트 매니저. 핀란드의 행복한 라이프스타일.
페트리 칼리올라 전 주한 핀란드대사관 프로젝트 매니저. 핀란드의 행복한 라이프스타일.

2018년 UN 세계행복보고서가 발표한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힌 핀란드. 핀란드 사람들이 행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우수한 교육 제도, 복지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최근 팬츠드렁크 문화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방송 <비정상회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출연자로 유명세를 치른 페트리 칼리올라 전 주한 핀란드대사관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듣는 핀란드의 행복한 라이프스타일.

팬츠드렁크는 편한 옷차림으로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핀란드 문화를 말한다. 어원은 핀란드어 칼사리캔니(Kalsarikanni)에 왔다. 속옷을 뜻하는 ‘칼사리’와 취한 상태를 뜻하는 ‘캔니’의 합성어다.
“팬츠드렁크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항상 핀란드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소박한 준비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팬츠 드렁크는 덴마크의 ‘휘게’, 스웨덴의 ‘라곰’에 이은 새로운 북유럽 라이프스타일로 해외 언론의 극찬을 받고 있다. 특히 집안 인테리어 등 실제 환경을 바꿔야만 행복을 얻을 수 있는 휘게, 라곰과 달리 팬츠드렁크는 누구나 시간, 장소에 구애 없이 즐길 수 있는 생활 방식이다.

이러한 특징은 소박한 준비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퇴근 후 TV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우리의 평범한 여가 시간도 엄밀히 보면 팬츠드렁크다. 다만 여기에 알코올, 자신이 가장 편한 옷차림, 유튜브나 넷플릭스·온라인 쇼핑 등 시간 때우기 좋은 스마트 기기, 피자·타코·소시지 등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 등 몇 가지 기본 준비물만 갖춘다면 핀란드의 팬츠 드렁크 문화 혜택을 더욱 톡톡히 볼 수 있다.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

요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런 점에서 팬츠드렁크는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의미도 있어요.”

회사에서 다 같이 모여 하는 회식, 동아리 모임 술자리 등에서는 다른 사람과 맞춰야 하므로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은 챙길 수 없었을 터다. 무엇보다 팬츠드렁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즐기는 이의 ‘마음 상태’에 있다는 페트리 칼리올라.
“팬츠드렁크를 제대로 즐기려면 마음을 열고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야 해요. 온종일 자신을 시달리게 한 사람들의 기대, 고민, 걱정은 모두 잊어버리고 혼자가 되는 시간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팬츠드렁크의 목적이거든요.”

그가 좋아하는 팬츠드렁크는 햄버거를 먹고 맥주를 마시며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이다.
“주로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를 봅니다. 핀란드에 있을 때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초대했던 친구들인 빌푸, 빌레, 사미와 한 집에 모여 비디오게임을 하곤 했어요.(웃음)”

팬츠 드렁크=혼술?

이에 페트리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팬츠드렁크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한국 젊은이들이야말로 세상의 압박에서 자신을 해방시킬 시간이 절실해 보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팬츠드렁크가 한국의 ‘혼술’과도 닮은 생활방식 같기도 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다. 한국에서 ‘혼술’하면 으레 ‘청승맞다’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핀란드에서는 정부가 팬츠드렁크를 공식적으로 인정, 권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공식적인 외교 정책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2015년 12월, 핀란드 외교부는 세계 최초로 국가 이모티콘을 출시했다. ‘핀란드스러움’을 보여주는 서른 가지 이모티콘에는 속옷 차림으로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는 여자와 남자가 그려진 칼사리캔니 모습이 포함됐다. 팬츠드렁크의 상징이다. 당시 외교부 민간 외교 부서의 이사였던 예니타 크레스벨은 ‘팬츠드렁크는 사우나처럼 핀란드의 전형적인 문화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모두가 그 문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핀란드는 행복을 위해 혼술을 권하는 나라인 셈이다.

“더욱이 한국은 핀란드보다 팬츠드렁크를 즐기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잖아요.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이 있고, 전화 한 통으로 맛있는 음식이 집까지 배달되니까요. 법적으로 저녁 9시 이후 술을 절대 못 파는 심심한 핀란드에 비하면 한국은 정말 흥이 넘치는 나라예요.”

 

페트리 칼리올라 전 주한 핀란드대사관 프로젝트 매니저. 핀란드의 행복한 라이프스타일.
페트리 칼리올라 전 주한 핀란드대사관 프로젝트 매니저. 핀란드의 행복한 라이프스타일.

배우자와 함께하기도… 친밀감 높인다

그가 한국에 온 지 벌써 5년째 되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싱글이었던 그는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 후 슬하에 아이도 한 명 두었다. 퇴근 후 하루 종일 독박육아에 시달렸을 아내를 도운 뒤 잠시 틈이 날 때 그는 여전히 팬츠드렁크를 즐기고 있다.
“아이가 곤히 잠들고 나서야 비로소 와인 한잔, 맥주 한잔 즐기는 정도예요.”

가끔 아내와도 팬츠드렁크를 즐긴다는 페트리 칼리올라. 팬츠드렁크라고 해서 무조건 혼자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자 또는 연인과 팬츠드렁크를 잘 즐긴다면 관계가 더욱 깊어질 수 있다. 각자 스마트폰만 보고 있더라도 같은 공간에서 마시는 술이 서로의 친밀감을 높일 좋은 기회다. 술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서로 더 친밀해질 수 있다. 실제로 팬츠 드렁크는 사람간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팬츠드렁크>의 저자이자 핀란드의 저널리스트인 미스카 란타넨도 이야기한 바 있다.술을 마시지 못하는 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로 대신하면 된다. 혼자만의 휴식을 마음껏 누리기에 완벽한 꿀 조합이다.

뭐든 적당한 것이 좋다

다만 이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술을 완전히 취하도록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술에 취하게 되면 슬픈 생각을 하게 돼요. 헤어진 전 남친, 전 여친을 떠올리면 순간의 행복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진짜 팬츠드렁크를 잘 누리기 위해서는 적당히 마시세요.”

또한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해가 된다. 팬츠 드렁크 역시 매일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빼앗길 수 있어 자제가 필요하다.
“계속 혼자만 있으면 외로우니까요.”

그럼에도 오늘 무척 힘든 하루를 보냈다면, 저녁엔 핀란드 사람들처럼 느긋하게 쉬어보는 것은 어떨까?
“팬츠드렁크가 제안하는 삶의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무게에 짓눌린 몸과 마음을 편안히 쉬게 하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날 밤 기분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 분위기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주도할 수도 있고요. 일상이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뀌며 내일도 계속 살아갈 힘을 줄 거라고 확신합니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 촬영 협조 카페 가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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