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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의 작가 김별아 백두대간 종주에서 발견한 인생을 말하다
<미실>의 작가 김별아 백두대간 종주에서 발견한 인생을 말하다
  • 매거진플러스
  • 승인 2011.06.1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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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의 전화와 날짜 조정 끝에 그이를 만날 수 있었다. 당분간은 백두대간 산행을 하며 연재하는 원고와 한겨레문학상 심사, 그외에도 마감을 맞춰야 할 글들이 자신을 빽빽하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마감을 위해 시간을 아껴 쓰는 작가에게 그나마 남은 시간을 더 쪼갤 것을 이야기하자니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하나 목이 마르면 우물가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법. 그이가 들려줄 백두대간 산행기가 뜨거운 여름날 시원하게 들이켜는 생수 같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만남을 강행했다.
차분한 어조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이. 동안에 훤칠한 키, 균형 잡힌 몸매가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이라면 나이도 직업도 전혀 짐작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몇 마디 안부와 본격적인 산행 이야기. 산의 능선처럼 오름과 내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마치 친구와 나누는 수다처럼, 옆집 언니가 다독이는 진심 어린 위로처럼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평지형 인간, 백두대간에 도전하다
여러 명의 작가들을 만나왔지만 산책이라면 몰라도 산행을 한다는 사람은 처음이다. 왜 산이었을까. 대다수 사람들의 상상 속 작가 이미지란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엉덩이 뗄 줄 모르고 글만 파고들다 가끔 동네에 마실을 나가는 것일 터.
기자를 만나기 전 주말에도 그이는 산행을 다녀왔다. 총 40차로 계획한 백두대간 종주는 이제 중반부를 훌쩍 뛰어넘었다. 10월 말에 마무리되는 산행은 이제 전체 코스에서 대략 사분의 일만이 남은 상태. 보통 2주에 한 번씩 아이와 함께 산을 오른 것이 벌써 1년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동네 뒷산조차 제대로 가본 적 없다는 그이가 백두대간을 오른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터. 기자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그이가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흔이 넘으면서 지금까지 싫어하고 꺼렸던 일, 피했던 일들에 부딪혀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흔이 되면 인생의 반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동안 익숙했던 방식으로 계속 살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나태해지고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정한 의미의 자아실현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그동안 여러 번 생각했고요. 어느 날 나이 마흔에 한 번쯤은 내 삶에 환기를 해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아서 아들이 다니는 이우학교 안에 학부모와 학생이 같이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동아리에 들어가 산행을 시작했어요.”
오랜 세월 동안 스스로의 문제에 대한 고민은 있었지만 진지하게 풀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간 해결하지 못한 문제의 해답들을 산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그이는 백두대간 종주를 다짐했다. 그러나 결심하더라도 실천으로 옮기는 데는 고민도 있었다. 더군다나 2년 동안 정기적으로 산에 올라야 하는 일이기에 초반에는 그이의 표현처럼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후회도 많았다.
“초반에는 산에 오르는 것이 두려워서 잘못 결정했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정말 힘들었거든요. 주로 새벽에 산행을 하는데 겨울에는 새벽 3시, 봄부터 가을까지는 새벽 1시에 출발했어요. 거의 잠을 못 자고 가는 거죠. 그런데 처음에만 힘들지 조금만 지나면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게 느껴져요. 그리고 캄캄할 때는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힘든 구간은 별 생각 없이 치고 올라가게 되더라고요(웃음).”
요가 12년, 걷기운동 9년, 백팔배 3년을 하면서 장시간 앉아 글을 쓰는 데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체력은 있었지만 산을 타는 데 필요한 근육은 달라 한동안은 새로운 운동(?)에 적응하느라 애도 먹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산을 타면서 얻은 것은 근력과 지구력 그리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쾌감이었다.
“서너 달이 지나니까 이상하게도 한계에 도전하는 쾌감이 생기더라고요. 사람이 확장되는 느낌이랄까. 사회에서 우주 속 먼지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우리가 확장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산에는 분명 이전까지 경험한 것과는 다른 쾌감이 있거든요. 육체적인 자기 한계를 넘었다는 것도 있지만 산을 내려오고 나면 끝났다는 즐거움도 있고 등산화를 벗었을 때 발가락이 시원해지는 단순한 만족감도 있어요. 거창한 게 아니라 아주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산을 타다 보면 계절의 변화도 확연히 느낄 수밖에 없다. 지난봄 소백산 산행 때는 산밑으로 신록이 올라오는데 아직도 겨울인 능선을 바라보며 자연의 신비함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산에 올라가지 않는 날이면 평지와 또 다른 모습을 갖춘 산을 떠올린다.
“여름산은 더위와 싸워야 하니 수분과의 전쟁이고, 겨울은 적막하고 고요해 죽음이 생각나지만 죽은 공간이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죠. 저는 꽃 많은 봄이 제일 아름답더라고요. 작년 봄 첫 산행을 시작할 때는 주위를 둘러볼 틈 없이 다녔는데 조금씩 여유가 생기니 야생화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이후로 산행이 더 재미있어진 것 같아요.”
계절마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평지와는 다른 즐거움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는 곳이 산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해 대하산 산행 때는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상을 100미터 정도 남겨둔 곳이 모두 절벽인지라 계속 미끄러지는 바람에 평생 다시는 오지 말아야 할 곳이라고 되뇌기도 했다.
“발이 계속 미끄러지고 헛도는 바람에 자이를 걸고 올라갔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사실 죽음에 대해 늘 생각하며 살아서 죽음에 친화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와중에 제가 본능적으로 엄청 살고 싶어하더라고요. 그제야 죽음이 아닌 삶이 본능이라는 걸 깨달았죠.”

삶에 대한 성찰과 희망을 온몸으로 경험하다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면서 그이는 생각의 전환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소소한 변화를 느끼곤 한다. 일주일의 삶이 모두 산을 중심으로 정리가 되는 것. 이러한 패턴은 산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 같다.
“금요일 밤 늦게 그러니까 토요일 새벽에 출발하다 보니 목요일부터는 몸을 만들어야 돼요. 산행이 있는 주에는 목요일부터 술을 안 마시죠.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산에 가기 위해 운동도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초반 산행은 길어야 7∼8시간이 걸렸는데 이제는 10∼12시간씩 걸리는 장거리 구간만 남았거든요. 매일 아침 두 시간씩 걸어요. 내 몸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하니까요. 하지만 가을에 산행이 모두 다 끝나면 방탕하게 살지도 몰라요(웃음).”
올해 중학교 3학년인 아들 혜준이와 함께 산행을 하다 보니 평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그전까지 비틀즈 음악과 간이역에 푹 빠져 방학이면 사진을 찍으러 다녔던 혜준이가 이제 백두대간에 꽂혔다(?)고. 산꾼의 전형적인 증상처럼 산에 오르기 전 매일 한 시간씩 지도를 분석하고 코스를 숙지하는 것이 혜준이의 주된 일과 중 하나다. 산행할 때는 함께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며 이정표까지 모두 사진으로 남긴다. 그 재미 덕에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면서부터 더 적극적이고 밝아진 모습이다. “힘든 산행을 잘 따라오는 아들을 보면 새삼스레 많이 컸다는 걸 느낀다”는 그이. 아들과의 동행에서 느낀 유대감은 일상으로도 이어진다.
“요즘에 엄마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해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 완주를 하고 있다고요. 처음에 75명으로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평균 서른 명 정도가 참여하거든요. 그중에 개근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죠. 아이가 저를 좀 강하게 보는 편이라서 ‘엄마는 스스로 잘 살아남을 것’이라는 믿음이 크더라고요(웃음).”
산행이 그이에게 가져다준 것은 한껏 더 성장한 혜준이의 모습뿐이 아니다. 아들처럼 사춘기를 겪었을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강원도 강릉에서 초등학교 교사인 부모 아래서 태어나 요즘으로 치면 ‘엄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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