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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귀 교수 '행복한 완벽주의자 VS 불행한 완벽주의자'
이동귀 교수 '행복한 완벽주의자 VS 불행한 완벽주의자'
  • 박소이 기자
  • 승인 2021.07.10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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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보다 최선을 다하는 것에 집중하라

 


빨리빨리 문화와 경쟁을 권하는 사회, 한국. 한국인의 대다수는 완벽주의자다. 그중 일부는 자신의 성향을 잘 활용해 성공으로 이끌지만, 누군가는 강박감을 이기지 못해 우울하고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

무엇이 자꾸 우리를 불행의 늪으로 밀어내는 것일까? 오래전부터 완벽주의를 연구해온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와 최근 <네 명의 완벽주의자>를 함께 쓴 그의 연구팀을 만나 궁극적으로 행복한 완벽주의로 거듭나는 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위의 영상을 클릭해 보세요)

 

이동귀 교수 '행복한 완벽주의자 VS 불행한 완벽주의자'
이동귀 교수 '행복한 완벽주의자 VS 불행한 완벽주의자'

 

 

이동귀 교수는 심리학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해왔다. 대개 우울증, 불안증 환자들이었다. 특히 최근엔 코로나 블루를 앓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됐다는 이 교수.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불안 증상자들이 늘어났는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바로 완벽주의적 생각을 많이 하는 데 있었다.

“주변에서 다들 ‘그만하면 잘했다’라고 하는데도 막상 본인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누가 봐도 날씬한 여성들도 스스로 살이 쪘다고 여기더라고요. 심지어 자기 얼굴의 오른쪽, 왼쪽의 대칭이 안 맞는다는 점에도 상당히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이어트에 성공해도 기뻐하기는커녕 더 높은 목표를 잡아 강박적으로 노력한 뒤 기어코 실패하게 되면 그 화살을 온전히 자신에게로 돌려 자기 비난, 우울증으로 빠지는 사례도 허다하다고 이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이렇게 표면적으로 우울한 사람들은 쉬이 우울증이 호전되지 않는다. 이는 이 교수가 한 단계 더 내려가 그들의 사고방식인 완벽주의를 연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다.

“완벽주의가 성향으로 굳어지면 잘 안 변해요. 자신을 완전히 바꾸고 싶어서 새해에 무리한 계획을 세우지만 사실 그런 일은 만화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적으로는 어렵지요.”

이와 달리 그는 변화의 개념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꾸라고 제안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장점을 살리면서 새로운 확장 팩을 점차 추가해 가자는 뜻이다. A를 B로 바꾸는 게 변화가 아니라, A에 A-1, A-2, A-3처럼 더하기를 하는 게 오히려 자긍심 향상에 도움이 될 거라고 그는 덧붙였다.

“완벽주의가 자기 고통의 근원이 되느냐, 아니면 새로운 변화의 기폭제가 될 것이냐? 선택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완벽주의자 vs 불행한 완벽주의자

 

봉준호는 이러한 완벽주의 성향을 잘 활용해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마더>라는 영화를 촬영할 때 한 테이크만 스물여섯 번을 찍었다는 것으로 유명한 봉준호. 김혜자 같은 대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이라고 예외는 없었다고 알려졌다.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 힘든 과정이었을 터. 그럼에도 봉준호와 작업한 배우, 제작진들은 그의 일하는 방식을 묵묵히 지켜보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렇게 고생해서 나온 결과물에 모두 만족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봉테일’이야말로 프로페셔널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도 최고로 뽑을 줄 아는 아주 긍정적이고 행복한 완벽주의자가 아닐 수 없지요.”

반면 영국의 명의 알렉산더 리딩은 전형적인 불행한 완벽주의자로 불린다. 알렉산더 리딩은 인공관절 수술 성공률이 90%가 넘는 인공관절 수술 분야의 최고 권위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다른 과와 협진하며 수술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실수를 했는데, 합병증으로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엄밀히 따지면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는 수술이 완벽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100명의 환자 중 90명 이상의 환자의 삶을 구원했는데도, 그는 실패한 사례 하나를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외에도 미국 하버드대, 예일대 등 소위 아이비리그와 국내 카이스트 학생들 중에 자살자가 많은 이유도 불행한 완벽주의자의 특성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더욱이 완벽주의자에게는 가면 우울증이 많아 극단적인 선택을 막기 어렵기 때문에 그 결과는 참혹한 편이다.
 

눈치백단 인정지향형이라면
자신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것부터 찾아야
 

그래도 분명한 점은 완벽주의에는 부정적인 면뿐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공존한다는 것이다. 실수에 대한 지나친 염려, 행동에 대한 의심, 강박감 등이 완벽주의자들의 단점이라면 철저한 계획력, 꼼꼼한 업무처리 능력, 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 등은 그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주 받는 칭찬이다. 더 나아가 이동귀 교수와 함께 완벽주의를 연구한 손하림 연구원은 그 정도에 따라 완벽주의자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당신은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할 때 주로 누구의 목소리를 듣는가? 내면의 목소리 혹은 타인이 해주는 말들인가?/당신이 무슨 일을 할 때 더 잘하기 위해 애를 쓰는 편인가? 아니면 실수를 줄이는데 집중하는 편인가?’ 두 질문은 네 유형으로 나누는데 주요 기준이 된 축이다.

이로써 나온 첫 번째 유형은 ‘눈치백단 인정지향형’이다. 눈치백단 인정지향형은 자기 평가 소재가 외부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슨 일을 하든 향상에 초점을 두 는 유형을 말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므로 인기가 많고 호감형으로 비친다. 사교적이고 친화적이다.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 좋은 성과를 낸다는 게 강점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유형이 눈치백단 인정지향형이었다고 손하림 연구원은 설명했다.

문제는 그만큼 상대방의 행동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에너지 소모가 크다는 데 있다. 자신도 챙김을 받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면 공허함과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 이에 인터뷰 자리에 함께 나온 김서영 연구원은 “눈치백단 인정지향형의 경우 자기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어떤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실제로 그것을 통해 직접 에너지를 채우려고 노력하는 게 주효하다”고 조언했다.

“단 그 답이 매우 구체적이어야 해요. ‘나는 안국역의 모 카페에서 라떼 한 잔과 함께 어떤 음악을 들으며 에너지를 충전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요.(웃음)”
 

스릴추구 막판 스퍼트형은
자기만의 ‘시작 의식’을 만들어라
 

눈치백단 인정지향형처럼 자기 평가 소재가 외부에 있어 다른 사람의 칭찬을 중요시하지만 무엇인가 행동을 할 때 실수를 예방하는 데 역점을 두는 유형은 ‘스릴추구 막판 스퍼트형’에 속한다. 어떤 일에 실패할까 봐 걱정이 많은 막판 스퍼트형은 마감이 닥칠 때까지 일을 미루는 수동적인 꾸물거림을 보인다. 이로 인해 일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이다.

이들의 경우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 큰 덩어리의 일을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 일단 시작부터 하는 게 좋다고 김서영 연구원은 조언했다.

“이른바 ‘15분 계획법’을 활용하는 건데요. 세 시간이 필요한 일을 15분 단위로 줄여서 하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또는 진짜 데드라인에서 이틀을 뺀 날짜를 자기만의 마감기한으로 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마지막 순간에는 정말 몸이 아프거나 하는 변수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특히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는 자기를 시작하게 하는 의식을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5’, ‘4’, ‘3’, ‘2’, ‘1’. 마치 우주선이 출발할 때처럼 카운트다운을 세다가 몸을 힘껏 일으키는 건 어떨까요?”
 

현상 유지와 안전을 최우선시 하는
한국형 완벽주의, 방탄조끼 안정지향형

 

세 번째 유형은 자기 평가 소재가 내부에 있으면서 예방에 초점을 두는 ‘방탄조끼 정지향형’이다.

이들은 되게 신중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과묵하면서도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해내곤 한다. 한국형 완벽주의자로, 직장에서 두 번째로 많이 볼 수 있는 유형이다. 이에 대해 손하림 연구원은 “우리가 동료로 만나면 제일 든든하게 여길 수 있는 유형이 방탄조끼 안정지향형이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현상 유지와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형 완벽주의자는 도전, 가변적인 상황에 노출되면 위축되고 스트레스를 받기 쉽다. 이들의 경우 그동안 자신이 놓친 안타까운 기회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 다시 도전하기 위해 어떤 자원이 필요할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유익할 것이라고 손 연구원은 덧붙였다.
 

강철멘탈 성장지향형
동료와 잘 지내는 대화법 숙지가 관건
 

마지막 유형은 강철멘탈 성장지향형. 이들은 자기 평가 소재가 내부에 있으면서도 항상 일의 초점을 성장에 맞추는 특성이 있다. 국내에 가장 적은 유형이지만 행복 수준이 제일 높고 상대적으로 불안감은 덜한, 그야말로 행복한 완벽주의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이동귀 교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국보다는 서구에서 좀 더 긍정적으로 보는 면이 많은 유형이에요. 자기가 세운 목표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루려고 노력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 눈에도 잘 띄고요.”

그러나 동료와 잘 어울리는 게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는 이들을 ‘늘 뭔가 자꾸 하자’고 말하는 피곤한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에 강철멘탈 성장지향형 완벽주의자들은 자신과 협업하는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요구된다. 구체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기, 상대의 의도를 함부로 추측하지 않고 비판단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대화는 늘 ‘너가 이래서 이렇게 됐잖아’ 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는 아이(I) 메시지로 하기 등이 있다.
 

더 멋진 완벽주의자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속담부터 한때 주목을 받았던 책 제목 <시작의 기술>, 선택장애·번아웃증후군, 잦은 실패로 인한 무력감과 우울증까지. 완벽주의 성향이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수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이때 ‘완벽보다 완성이 낫다’라는 페이스북의 사훈이 교훈을 주는데….

“사실 완벽을 추구한다는 게 참 비현실적이에요. 무슨 일이든 하다 보면 마음에 안 드는 게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완벽보다 최선을 다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맞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수, 결점이 생겼을 때 이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는 이동귀 교수. 실수와 실패를 잘 구별하고, 거기서 최선을 다했던 자신을 발견하는가 하면 그 속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통찰해보는 게 더 멋진 완벽주의자로 거듭나는 길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누구든 처음부터 100%를 다 잘 해낼 수 없으니 퍼즐을 눈앞에 둔 채 1000 피스를 지난한 삶의 일부로 느끼지 말고 아웃라인부터 서서히 맞춰보며 오늘은 30%, 내일은 50%, 내일모래는 70%

로 완성도를 높여가는 게 인생입니다. 자녀를 둔 부모들도 은연중에 아이들에게 완벽주의를 대물림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는 그 어떤 순간에도 ‘사랑’임을 잊지 마세요.”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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