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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민주당 대표 "변화와 쇄신 약속"...문재인 정권의 마지막 조타수
송영길 민주당 대표 "변화와 쇄신 약속"...문재인 정권의 마지막 조타수
  • 오수연
  • 승인 2021.07.18 11: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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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새 대표로 5선의 송영길 의원이 선출됐다. 지난 5월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35.60%의 종합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를 기록한 친문(친문재인)의 핵심인 홍영표 후보(35.01%)와는 불과 0.5%포인트 차이의 힘겨운 승부였다. 문재인 정권의 마지막 조타수가 된 그는 내년 대선(3월 9일)까지 당정청의 관계를 조율하면서 정권 재창출의 중임을 떠맡게 됐다. 그는 2017년 문재인 대선 캠프 총괄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냈지만 친문 핵심 의원들과 비교하면 계파색이 옅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 대표는 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대통령과 민주당의 이름만 빼고 다 바꿀 수 있어야 한다”며 당의 전면 쇄신을 약속했다. (Queen 6월호. 2021)

 

PART 1. 송영길이 걸어온 길
 

‘황소 같은 정치’ 꿈꾸는 5선 정치인

송 대표의 별명은 ‘황소’다. 커다란 키에 산만한 덩치만큼이나 우직한 성품 때문이다. 송 대표는 2003년 발간한 저서 ‘그래, 황소처럼 이 길을 가는 거야’를 통해 “얄팍함과 영악함을 거부하고 돌팔매를 맞고 때로는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나의 길을 가야한다. 황소처럼 말이다”라고 적었다. 그에게는 과거 사회주의와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던 ‘투사’와 구 소비에트연방 붕괴 이후 현실 개혁을 위한 ‘인권변호사’, 그리고 5선을 역임한 노련한 ‘정치인’의 모습이 혼재돼 있다.
 

5·18 민주화운동 인생 전환점

송 대표는 1963년 3월21일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에서 면서기였던 송병수와 어머니 김광순 사이에 4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송 대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인근 대도시인 광주로 전학을 갔다. 이 시기 송 대표는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하천변 단칸방에서 둘째 형과 할머니를 모시고 자취생활을 했다고 한다.

송 대표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통해 성장했다. 당시 대동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계엄군에 친구가 사망하는 아픔을 겪는다. 이를 계기로 그의 인생은 큰 전환점을 맞는다. 광주 민주화 항쟁 이듬해인 1981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1984년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된 뒤 민정당사 점거농성 사건으로 구속됐고 학교에서 제적됐다.
 

노동운동에서 인권변호사로 변신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돼 서대문구치소에서 옥살이를 한 그는 1986년부터 인천과 연을 맺고 본격적인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부평 대우차 르망공장 건설현장의 배관 용접공으로 시작해 주안 5공단의 벽시계 공장, 계양구 면장갑 공장과 택시기사 등 송 대표는 7년 세월을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보낸다.

이 시기 그의 소회는 남달랐다. “첫 월급날 육체노동으로 번 돈으로 동료들과 맥주 한잔을 마시는데 왠지 눈물이 흘렀다. 나도 이제 어엿한 임금 노동자가 됐다는 감격이 복받쳐 올랐다.”

하지만 그에게도 정치적 변화의 시기와 닥쳤다. 1990년 구 소비에트연방이 붕괴하자 현실 개혁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즈음 그는 한 달간 배낭여행을 통해 동유럽의 실상을 돌아본 후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2년 공부 끝에 나이 서른에  1994년 제36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변호사가 된 후에도 그는 노동현장을 떠나지 않고 노동·인권 변호사로 지역에서 활동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가입한 후 노동자의 법적 분쟁 500여 건에 무료 상담이나 무료 변론 활동을 벌이다가 1996년 민주당에 입당한다.
 

16대 국회 입성 후 5번의 금배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것은 지난 1999년 계양 지역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부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출마한 이 선거에서 그는 고배를 마셨지만 이듬해인 2000년 1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17,18,20,21대 총선에서 내리 승리, 모두 5번의 금배지를 달았다.

국회의원 시기, 그는 젊고 합리적인 ‘386정치인’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초선의원이었던 2001년 당내 쇄신운동인 정풍운동을 주도했고 2003년에는 개혁세력의 일원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에 앞장섰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찬성과 대북송금 특검 반대 등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거침없는 행보로 그는 386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이런 거침없는 행보에 당 내에서도 그를 견제하는 이들이 많았다. ‘건방지다’, ‘잘난 척 한다’ 등 송 대표에 대한 여러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송 대표는 이런 부정적 여론에 대해 “옳다고 믿는 것은 밀고나가는 ‘황소’ 같은 성격 때문에 생긴 오해들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곤 했다.”고 밝혔다.
 

동북아를 향한 꿈을 꾸다

“좌절하지 말고 설득하고, 대화하고, 참여하고, 힘을 모아 요구해야 한다. 벽을 뚫어 문을 만들어내야 한다.”
송 대표가 정치에 입문하면서 지금까지 가슴 속에 새겨온 삶의 신조라고 한다. 그는 국회의원과 인천시장을 지내면서 동북아 정세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인천시장 재임 시 파산 상태에 직면한 재정난과 싸워야 했다. 전임 시장이 벌인 각종 개발사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인천도시공사가 시행하는 10조원 규모의 16개 사업을 취소 또는 축소했으며 송도파크호텔, 영종보금자리, 검단산업단지 등의 자산 매각을 실시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인천시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부채가 줄고 800억 흑자로 전환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천시민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2014년 인천시장 재선에 실패한 뒤 그는 중국 베이징의 칭화대와 대만 정치대학에서 1년간 방문학자 생활도 했다. 방송통신대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다시 일어일문학과에 편입하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는 러시아 전문가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 초기 러시아 특사로 파견됐고 초대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과 21대 국회 전반기 외통위원장으로 활동했다.


PART 2. 고시패스 5명 수재집안, 노동운동 하다 만난 아내
 

학생운동 시기 만난 부인 남영신

송 대표는 부인 남영신(59)씨와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그들을 이어준 것은 학생운동이었다. 이들의 첫 만남은 민주화시위가 한창이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각 연세대와 이화여대에 재학 중이던 시절 집회현장에서 인연이 시작됐다.

송 대표가 한 언론에서 밝힌 일화다. “대학 교회에서 처음 아내를 봤는데 한눈에 반해버렸죠. 어떻게 하면 사귈 수 있을지 기회만 노리고 있다가 신촌로터리에서 대규모 연합집회가 열리던 날 경찰에 쫓기던 중 아내가 넘어져서 사람들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걸 발견했어요. 달려가서 있는 힘을 다해서 끄집어냈죠. 그러고는 손을 붙잡고 계속 도망을 다녔어요. 그날을 계기로 점차 가까워졌어요. 인연이 될 사이였겠지요.”

부인 남씨의 회고다. “전 관심도 없었는데 남편이 일방적으로 저를 쫓아다녔었죠(웃음). 그런데 제가 사람들 틈에 깔려 죽을 뻔했을 때 멋지게 나타나서 구해준 거예요. 얼마나 근사해 보였겠어요. 고마운 마음도 컸고요. 그런데 알면 알수록 참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진중하고 소박하고 섬세했어요.”
 

노동운동에 투신한 부인

이들은 노동운동 중에 연애를 하면서 인연이 깊어졌다고 한다. 남씨는 가리봉동 오거리에 있는 전자회사에 다녔고 송 대표는 주안 5공단에 있는 시계공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매일같이 퇴근 후 신도림역에서 만나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사 먹으며 데이트를 즐겼다. 한번은 아내가 친구랑 사는 집에 찾아갔는데 연탄가스를 마셔서 늘어져 있는 걸 발견하고 둘러업고 병원에 간 적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1991년 결혼했다. 남씨의 술회다. “처음에는 만화방을 운영하면서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독립된 방에서 사는 거였어요. 좁은 방에 둘이 붙어 앉아 도란도란 미래를 그려보던 시간이 얼마나 좋았게요.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지만 행복하게 살아봤기 때문에 현재가 항상 소중하고 행복하단 걸 아는 거죠.”

남 씨는 세월호 참사사건 이후에 현재까지 거의 40~50만 개에 달하는 노란 리본을 만들어서 전국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5명의 사법·행정고시 패스한 수재 집안

송 대표 가족은 ‘한 집안에 고시 합격생이 무려 5명이 나온 집안’이다. 지난 2016년 설날특집으로 방송된 SBS ‘영재발굴단’에서는 ‘명문가 만들기’를 주제로 꾸며진 내용이다. 장남인 송하성 교수(행정고시 22회)를 비롯해 송영천 변호사(사법시험 23회), 송대표(사법시험 36회), 송경희 당시 방송통신위원회 전파방송관리과장(행정고시 39회)에 송하성의 아들 송승환(사법시험 49회)
까지 총 5명이 고시에 합격했다.

한 집안에 3명의 사법시험 합격자와 2명의 행정고시 합격자가 나온 송영길 대표의 집안의 공부법은 장남 송 교수에 의해서 공개됐다. 송 교수는 지난 2010년 출간한 저서 ‘1.3 1.3 송가네 공부법’에서 가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송씨 형제는 대대로 이름난 학자 집안이 아닌 전남 고흥 시골의 한 농부 집안 6형제로 태어나 중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도시로 진학하게 됐다. 송 교수의 동생인 송영천 변호사와 송영길 대표는 형인 송 교수의 영향으로 공부에만 전력해 모두 고시에 합격했다고 한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5월 3일 오전 서울 동작구 현충원읒 찾아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서 분향하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5월 3일 오전 서울 동작구 현충원을 찾아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에서 분향하고 있다.

 

PART 3. 향후 정치 행보는...
 

통합 협치 행보에 나선 송영길

송 대표는 지난 5월 3일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현충원을 찾았다. 특히 고(故) 김대중(DJ)·김영삼(YS)·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하며 통합 의지를 드러냈다. 송 대표는 최고위원들과 전직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들렀다. 민주화의 거목으로 불렸던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가장 먼저 참배한 뒤 방명록에 “민유방본 본고방녕(民惟邦本 本固邦寧) 국민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번영한다”는 글을 남겼다.

2015년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 묘소에선 ‘대도무문의 대통령님 사자후를 기억합니다.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겠습니다’라고 방명록을 남겼다. 박정희 전 대통령 참배를 마치고선 ‘자주국방 공업입국, 국가발전을 위한 대통령님의 헌신을 기억한다’고 적었고, 이승만 전 대통령 참배 후에는 ‘3·1 독립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하신 대통령님의 애국독립 정신을 기억합니다’라고 썼다. 민주당의 상징과도 같은 김대중 전 대통령 참배 외 나머지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한 것은 통합과 협치의 의미로 풀이된다.


국민 눈높이 맞춘 인사청문회 정국

송 대표가 취임하자마자 맞닥뜨린 인사 청문 정국은 무사히 넘겼다는 평이다. 부적격 논란이 제기된 장관 후보자 3인방을 둘러싼 거취 공방 속에 이들 중 최소 1명은 정리해야 한다는 당의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했고 결국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로 귀결됐다.

여당은 지난 5월 13일 야당이 장관 후보자 거취와 연계한 김부겸 국무총리 인준과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임명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변화와 쇄신을 약속한 송영길 지도부가 국민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청와대를 설득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집권당으로서 행정부와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무난하게 소화한 측면이 있다.
 

현실에 맞는 부동산 정책 드라이브

송 대표는 청문 정국을 넘어선 후에는 곧바로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다. 지난 5월 14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간담회에서 “내년 3월 9일 대선에서 다시 국민으로부터 신임을 받아야 문 대통령이 성공하는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부총리 출신인 김진표 의원을 당 부동산특위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도 부동산 정책 변화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재산세 감면 기준 상향 등 부동산 세부담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탈원전·부동산 중과세 등 종전 정부 정책의 노선 전환을 당이 선도하는 양상이다.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한도를 사실상 90%까지 인정하자는 그의 구상은 당 부동산특별위원회를 통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송 대표는 지난 5월12일 열린 부동산특위 첫 회의에서 “많은 분이 빚내서 집을 사라는 소리냐, 집값 올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집값 안정과 함께 조화롭게 실수요자 대책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를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그의 앞에 장애물도 적지 않다. 당내에 제기되는 대선경선 연기론이 대표적이다. 현행 180일 전 후보 확정 스케줄을 맞추기 위해선 이달 중 대선 기획단을 띄우고 경선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대선주자에 이어 원로들까지 경선 논쟁에 뛰어드는 양상이어서 지도부의 빠른 교통정리가 필요한 형국이다. 복잡한 당내 정치 지형 속에서 통합 리더십이 어떻게 발휘될지 관심이 쏠린다.


글 오수연(자유기고가) | 사진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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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물러나라 2021-07-18 13:50:21
거짓말하고 거짓공약하고 당대표 출마한거네.
당대표 부터 사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