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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위기의 시대를 사는 법...김헌 서울대 교수에게 듣는다
코로나19 위기의 시대를 사는 법...김헌 서울대 교수에게 듣는다
  • 송혜란 기자
  • 승인 2021.08.1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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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답을 찾다
코로나19 위기의 시대, 인문학자 김헌 서울대 교수에게 듣는다

 

전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 곳곳이 어수선하다. 자영업자들은 거의 신음소리를 내고 있고, 학생들은 여전히 방구석 수업으로 답답함을 호소하는가 하면,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고 재취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모두가 위기라고 말하는 코로나19 시대를 인문학자들은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단단하게 살아간다면 두렵지 않습니다.” 오래 전부터 서양 고전으로 삶을 단단히 다져왔던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를 만나 혜안을 얻어보았다.

‘어진 사람 헌(獻)’이라는 이름에 부름이라도 받은 듯 서양고전문헌학자가 됐다는 김헌 교수. 그는 서울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철학, 서양고전학 석사학위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수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김월회 서울대 중문과 교수와 함께 <무엇이 좋은 삶인가>라는 책을 내며 끊임없이 질문하는 삶을 살고 있는 김 교수는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이런 사태가 왜 벌어졌는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첫 운을 뗐다. 이는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환경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그중 인간이 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목 하에 윤리적인 측면을 간과하고 저지른 생태계 파괴가 큰 원인이라고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기후변화가 일어났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동물들이 이동, 인간들과 공존하게 되면서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신 바이러스가 큰 문제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려고 했다면 과연 코로나 팬데믹이 생겼을까요? 코로나 사태가 주는 교훈은 분명해요. 앞으로도 우리가 같은 생명체뿐 아니라 돌 하나, 물 한 방울까지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결국 코로나를 이겨낼 방법은 이 메시지에 호응하면서 잠시 멈춰 우리네 삶을 돌아보는 데 있다. 올바른 태도로 방향만 잘 잡으면 그 뒤 기술적인 문제는 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런 점에서 위기는 또 다른 기회다. 환경, 윤리, 개발 이슈를 떠나 그간 안일했던 식생활의 위생 개념이 좋아졌고, 비대면 회의·온라인 강의 등으로 IT 기술 활용도 일상화할 수 있었다는 데 이견이 없다.

“특히 인터넷 강의의 경우 출퇴근 및 등하교 시간을 절약할 뿐 아니라 공간의 제약도 없다는 점에서 상당한 이점이 있었는데요. 향후 코로나가 없어지더라도 이처럼 장점이 많았던 시스템들은 계속 유지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김헌 교수는 지금이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기에 적기라고 말했다. 고전은 보다 깊은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도록 돕는 역할을 충분히 해준다. 예를 들어 코로나 이전에 대다수 사람들은 동일한 공간, 동일한 시간에 선생님과 학생이 모여 일정한 포맷 속에서 지식, 교훈을 전달하는 게 교육이고, 수업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 출현으로 이 같은 개념이 깨졌을 때 고전은 교육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데 필요한 고차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자기만의 답을 찾도록 길을 안내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이걸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고전이 현상적이고 기술적인 답은 못 하지만 반드시 꼭 고민해봐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심도 있게 생각하도록 해주지요.”

사실 이 모든 고민의 뿌리는 다 인간의 문제로 직결되는데….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다 ‘사람은 왜 매번 이런 어려움에 부딪혀 혼란스러워하는가?’라는 질문으로까지 도달하면 마침내 ‘사람이 뭐길래?’라는 고민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사회 대부분의 숙제를 인문학적인 맥락에서 풀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단단한 신념을 만드는 고전의 힘

 

고전을 읽는 사람은 단단하고, 단단한 사람에겐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킬 힘이 있다. 과거 신문이 한창 전성기를 누릴 때 미국의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은 ‘신문을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신문을 읽는다면 잘못된 정보를 얻을 것이다’라는 어록을 남긴 바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당연히 ‘고전’이라고 답했다.
“고전을 읽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휘둘리지 않는 가치관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고전은 다시 말해 수천 년 전의 시대를 겨냥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모색하려고 했던 텍스트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까지 통용됐다면 그 안에 단단한 삶을 만드는 신념이 있다는 뜻이다. 시대나 환경이 변해도 꿋꿋이 견디며 가치관과 판단을 지켜낼 힘 말이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절대 우왕좌왕하지 않고 조금 떨어져 그 문제를 살펴보며 자기만의 정확한 판단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게 단단한 삶이라면 그 토대를 쌓아주는 게 바로 고전입니다.”

물론 꼭 고전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경험, 훌륭한 선배와 스승과의 대화, 가족·친구와의 깊은 교감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갈팡질팡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다만 혜안을 얻는 수 가지 루트 중 고전의 영향이 제일 크다고 그는 재차 강조했다.

 

김헌 교수는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절대 우왕좌왕하지 않고 조금 떨어져 그 문제를 살펴보며 자기만의 정확한 판단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게 단단한 삶이라면 그 토대를 쌓아주는 게 바로 고전”이라고 말했다.
김헌 교수는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절대 우왕좌왕하지 않고 조금 떨어져 그 문제를 살펴보며 자기만의 정확한 판단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게 단단한 삶이라면 그 토대를 쌓아주는 게 바로 고전”이라고 말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내 삶의 동반자
 

젊은 시절 고등학교 프랑스어 교사였던 김헌 교수는 서울대 교수가 되기까지 꽤 험난한 과정을 겪었다. 애초 대학교수의 꿈을 품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빨리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범대에 진학했다가 주경야독하며 철학, 서양고전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사표를 내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결혼해 아이 둘을 둔 가장으로서 무모한 도전이었으나 참 고맙게도 자신을 믿어준 아내 덕분에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아이 둘이 더 늘었을 뿐 아니라 처가의 방 한 칸을 빌려 여섯 식구가 얹혀살며 다시 시간 강사부터 시작하는 고행이 이어졌다. “제 나이 오십에 처음 정규직이 되었지요.”

누가 봐도 힘들었을 상황.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매진한 서양 고전의 힘으로 견디며 단단해졌다.
“저는 요즘도 외롭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고전을 읽어요.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을 다 잊어버릴 수 있어 마음이 편해요. 운이 좋으면 책 속에서 현재 고민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요.”

특히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셰익스피어의 <햄릿>,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인생의 동반자처럼 늘 곁에 두고 여러 번 읽고 있다는 김 교수는 10년 전에 본 책도 이제 와 또 읽으면 새로운 위안을 준다고 행복해했다.
 

삶을 슬기롭게 재구성하라
 

이에 그가 제자들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저는 학생들에게 닥치는 대로 고전을 읽으며 자기에게 맞는 책을 찾으라고 조언하곤 해요. 그리고 그 책을 평생에 걸쳐 계속 읽어보라고 하지요. 그러면 그 책이 자기 인생을 함께해주는 친구요, 동반자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삶을 슬기롭게 재구성하기 위해 과거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외출이 줄어들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현대인들.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비로소 책이 눈에 들어온다는 이들이 늘었다.

지금 딱 읽기 좋은 고전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아무거나 읽으면 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흔히 추천도서로 거론되는 플라톤의 <국가론>, 영웅전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전들은 대개 재미없어서 안 읽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고전은 누가 권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란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책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꼭 모두가 고전이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고전 대신 직접 여러 경험을 해도 좋고요. 자신만의 멘토를 찾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어린아이라면 눈높이에 맞게 어린이, 청소년 용으로 나온 고전 만화가 제격입니다. 저도 어릴 적 읽은 만화책 속 삽화, 문구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커서 고전 원문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답니다.”

오직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장기간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력감, 불안감이 엄습해올 때야말로 독서로 미래를 재기획하기 좋은 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Queen 송혜란 기자] 사진 양우영 기자


#고전 #김헌교수 #일리아스 #햄릿 #당신들의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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