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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이사회 경영' 강화 ... 총수 대신 인사·전략·감사 등 경영 핵심 의결
SK, '이사회 경영' 강화 ... 총수 대신 인사·전략·감사 등 경영 핵심 의결
  • 김정현 기자
  • 승인 2021.10.12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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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이사회 중심 책임 경영 도식 (SK 제공)
SK㈜ 이사회 중심 책임 경영 도식 (SK 제공)

SK그룹이 그동안 총수 등 경영진에게 집중됐던 기업의 경영을 이사회 중심으로 바꿔 선진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한다. 최고경영자(CEO) 인사 평가와 중장기 전략 수립 등 경영 핵심 분야에 대한 권한을 각 계열사의 이사회에 본격적으로 부여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11일 SK그룹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이사회 경영을 강화하는 '거버넌스 스토리'(Governance Story)를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태원 회장과 13개 관계사 사내·외 이사들은 지난 6월부터 최근까지 3차례에 걸친 워크숍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그룹 지배구조 혁신 방안을 결정했다.

거버넌스 스토리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서 지배구조(G)를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혁신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과 전략을 말한다. 올해 초 최 회장이 주요 경영 화두로 제안한 바 있다.

인사·전략·감사 등 3대 영역을 기업 경영의 핵심으로 꼽는데, 대부분의 국내 기업에서 이런 주요 업무는 그룹 총수 등 경영진에게 집중돼 있다. 이사회의 역할은 이를 견제하는 것이지만 단순히 감시하는 정도에 그칠 뿐더러, 그마저도 이사회 구성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총수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기업의 경영과 관련된 주요 사안에 대해 독립적인 결정을 내리는 건 더욱 어렵다. 기업의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SK의 결정은 경영진이 도맡았던 이런 역할을 이사회가 최고 의결기구로서 수행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동안 기업 지배구조의 정점에 총수가 있었다면, 앞으로는 이사회를 두겠다는 것이다.

우선 인사권을 버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SK그룹 계열사들은 올해 연말부터 CEO 평가·보상을 각사 이사회 산하의 '인사위원회'가 결정한다. 인사위원회는 CEO 평가·보상뿐만 아니라 CEO 후보 추천 등 선임 단계부터 관여한다.

지금도 이사회에서 이를 결정하고 있긴 하지만, 사전에 SK수펙스추구협의회 등 그룹과 조율한다는 점에서 그룹 총수가 계열사 임원 인사를 좌지우지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인사위원회가 100% 독립적으로 판단·결정하고, 이를 그룹에 통보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경영에서도 이사회의 입김이 세진다. SK그룹 관계사들이 거버넌스 스토리의 모델로 삼고 있는 SK㈜의 경우 이사회 내 'ESG위원회'가 투자 안건 검토 기능을 맡고 있다. 회사의 중장기 경영 전략이나 중요한 투자 관련 사항들은 누군가의 독단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이곳의 검증을 거쳐야만 통과된다. 총 6명인 위원회 구성원도 사내이사(1명) 대신 사외이사(5명)가 다수다.

이 때문에 그룹 총수의 표가 이사회에서 소수 의견이 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8월20일 SK㈜ 이사회에서 한 해외투자 안건에 대해 사내이사인 최태원 회장과 이찬근 사외이사 등 2명은 반대했지만, 나머지 사내이사 3명(조대식·장동현·박성하)과 사외이사 4명(장용석·염재호·김병호·김선희)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안건이 가결됐다. 그룹 총수가 반대한 투자 안건에 대해 SK그룹 임원 전원과 외부 인사 대부분이 찬성해 통과시켰다는 얘기다.

재계에선 사내·사외이사를 막론하고 이사회에서 총수와 다른 의견이 제시되는 게 드물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한다. SK그룹 관계자는 "이사회의 독립성과 경영 투명성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관계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9일 SKC 이사회에선 영국의 음극재 기업인 넥시온과의 합작사 설립 안건이 상정됐지만, 반대표를 던진 이사들이 더 많아 부결되기도 했다. 보통 사전에 조율을 거치는 이사회 안건에서 이사들 사이에 표대결이 벌어진 것도 국내 기업에선 자주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현재 SK그룹의 17개 관계사 중 증시에 상장된 10개사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중은 60%에 가깝고, 이 중 7개사는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SK그룹은 경영진 감시와 견제를 위해 사외이사들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한 사외이사 역량 강화 △전문성 등을 갖춘 사외이사 후보 발굴 △회사 경영정보 공유 및 경영진과의 소통 확대 등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최 회장은 거버넌스 스토리 워크샵에서 "거버넌스 스토리의 핵심은 지배구조 투명성을 시장에 증명해 장기적인 신뢰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며 "각 사가 글로벌 최고 수준의 선진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데 사외이사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Queen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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