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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징병제 논란이 던져 준 과제
여성 징병제 논란이 던져 준 과제
  • 이복실
  • 승인 2021.11.0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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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칼럼

여성 징병제 논란. 여성에게도 병역의무를 부과하자는 주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청와대 청원에 여성들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글이 올라오더니, 여당 국회의원도 이를 거들었다. 정치권에서 반응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더 커졌다.

징병제의 원래 목적이 국가안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징병제는 우리나라가 6.25 사변을 겪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도입한 불가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최근 제기되고 있는 여성 징병제 도입 주장은 국가안보 때문이라기보다는 남녀차별 논란이 커지면서 군 생활에 대한 보상의 미흡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내가 군대를 갔다 오지 않아서 가늠하기 쉽지는 않지만, 옆에서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장기간 병역의 의무가 남성들을 짓누르는 무게를 알 것 같다.

최근 군대 내 성추행 사건들, 부실 급식 논란 등 연일 터지는 문제를 보니 십 여 년 전 대통령의 발언이 생각이 난다.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대 갔다 오면 썩는 것 맞지요?” 그 발언에 대하여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할 소리이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화끈하고 시원하다고 하면서 이번 기회에 제도 개선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2007년도의 일이다. 국무회의에 ‘병역제도개선’ 추진 계획이 보고된 적이 있다. 계획에는 여성과 수형자 등도 ‘사회복무’ 형식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보통 국무회의에 상정되기 전에 부처 간 의견수렴을 거치기 때문에 그 안건도 부처 간에는 합의가 다 되었을 것이다. 2008년 말까지 병역법을 개정해 이르면 2009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실행되지는 않았다. 만일 실행되었다면 병역의무와 관련하여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실행이 안 된 이유에는 정권이 바뀐 이유도 있겠지만 정책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공감대가 충분하게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함축된 이슈들
 

현재도 부사관, ROTC 등 일부 직업군인에 여성에게 문호가 열려있기는 하지만, 군대 내 여성 문호개방에 있어서 가장 획기적인 정책은 1997년 김영삼정부 시절 육군, 공군, 해군 사관학교 여성 입학을 허용한 것이다. 비록 10%이지만 여성에게 처음으로 문호를 열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10%는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10%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 징병제를 논할 때 이러한 문제도 함께 연계하여 논의해야 할 것이다.

김 유니스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는 처음부터 입대를 성별로 배제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고 말했다. 양성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최상의 군대를 위하여 군대라는 직종에 적합한 최고 탤런트를 가진 사람이 군에 들어가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군에 적합한 적성과 자질을 갖춘 여성이 왜 없겠는가.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

최근 여당의 차기 대선 후보가 한국형 모병제의 단계적 시행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공약으로 검토를 시작한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 공약팀에 있었던 모 국회의원은 선거공약으로 징병제 폐지를 검토하였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안보와 재정 등 많은 이슈가 연관되어 있어서 결정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공약으로 채택된다면 파급효과는 거의 매머드급이었을 것이다. 여성 징병제이든 모병제이든 모두 헌법개정사항으로 국가재정, 안보 상황, 저출산으로 인한 충원 인력부족 등 근본적인 관점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진지하게 테이블에 올려놓자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이슈가 혼재되어 있지만 1999년 헌재 군 가산점 폐지 결정 이후, 군대 문제는 남녀의 갈등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국가가 요구하고, 국방의 의무의 확대 필요성에 관한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면 충분한 논의를 거쳐 헌법을 개정하여 시행하면 될 것이다. 남성도 가니 여성도 가야 한다는 식의 접근법은 사회갈등만 조장할 뿐이다. 진지하게 테이블에 올려놓고 최선의 대안을 찾으려는 고민과 논의를 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정책 담당 부처인 국방부에서는 아직 아무런 의견도 내놓고 있지 않다. 이제 내년에는 대선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러다가는 행정부보다 정치권에서 먼저 이 문제를 거론할지도 모르겠다. 행정부처이든 정치권이든 어디서든 여성 징병제를 논의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글 이복실(전 여성가족부 차관) 

 

이복실은…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를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교육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여성으로서 네 번째 행정고시 합격자이다. 30년간 중앙부처에 재직했으며,
2013년 여성가족부가 설립된 이래 최초 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저서로는 <여자의자리 엄마의 자리>, <나는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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