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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시대의 지혜
번아웃 시대의 지혜
  • 김종면 주필
  • 승인 2021.11.2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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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의 상상편지]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라는 말은 이제 더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정신적·육체적으로 기력이 다해 무기력증이나 우울감에 빠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번아웃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종 우울증까지 겹쳐 더욱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번아웃, 그러니까 자기를 연소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뭇 낭만적이기까지한 이 희망의 언어가 언제부턴가 ‘탈진’이라는 시대의 질병을 상징하는 말로 탈바꿈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너무나 부지런한 우리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이겠지요. 이 모순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요?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 밝습니다. 불꽃이 화려할수록 그림자는 짙은 법입니다. 불꽃처럼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면 그 태반은 ‘노동중독’의 삶과 다름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인생으로 평가받는 삶일수록 더 그렇지요. 회한의 감정이 남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허망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건강하지도 선하지도 않습니다. 방향보다는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사회가 내몰았든,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했든, 번아웃 삶의 긍정적인 측면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노동에의 몰입을 즐길 수 있다면 일할 의욕을 빼앗아가는 ‘번아웃의 악마’가 파고들 틈새가 어디 있겠습니까?
 
육체의 기력은 소진될지라도 정신의 힘만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입니다. ‘노동하는 인간’이지요. 굳이 노동의 신성함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는 노동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물론 고역을 되풀이해야 하는 ‘아니말 라보란스(Animal Laborans·일하는 동물)’로 떨어져서는 안 되겠지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에세이에서 세상에는 너무나 일이 많으며 노동이 미덕이라는 믿음에 의해 엄청난 해악이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가 무작정 노동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대가(代價)로서의 노동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불교경전 문수사리정률경(文殊師利淨律經)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게으름은 더러움에 이르는 길이요, 부지런함은 깨끗함에 이르는 길이다. 방일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길이요, 한결같은 마음은 고요에 이르는 길이다.”

깨끗하고 고요한 삶을 저 먼 피안의 세계에서만 찾을 것은 아닙니다. 지금 여기 우리 곁에 바로 그 적정(寂靜)의 세계가 있습니다.  

노동하는 인간과 일하는 동물의 스펙트럼 어딘가에 우리는 놓여 있습니다. 인간으로 살 것인가 동물로 전락할 것인가. 노동을 규율하는 사회질서가 있고 제도가 있지만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번아웃의 늪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마음을 챙겨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글 김종면 주필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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