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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의 상상편지] '사람이 제일 무서운 세상'을 넘어서
[노마의 상상편지] '사람이 제일 무서운 세상'을 넘어서
  • 김종면 주필
  • 승인 2021.12.30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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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노마의 상상편지] 진정 진심으로 살아왔는데 세상은 왜 반대로만 대답해올까요. 세상사란, 인간의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인가요. 그런지도 모릅니다. 세상 한구석은 늘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선이 악을 이기지 않습니다. 진실이 오히려 거짓 앞에 무력해요. 이게 무슨 조화입니까. 알 수 없지요. 어떤 초월자도 절대자도 답을 내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만 부조리한 세상을 견뎌낼 뿐이지요.

부박한 인정세태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토록 속 시끄러운 일이 무엇이냐고요. 독화살 같은 말들이 날아다니며 폐부에 꽂히는 광경을 상상해 보세요. 말전주꾼이라고 하지요. 이 사람에게는 저 사람 말을, 저 사람에게는 이 사람 말을 좋지 않게 전해 이간질하는 사람 말입니다. 입으로 짓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 그들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요.

구업(口業)은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화종구출(禍從口出)이라 했어요.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옵니다. 대승불교 경전인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듣지 않은 것을 들었다고 하지 말며,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하지 말라. 악한 말은 자기도 해롭고 남에게도 해를 입힌다.” 함부로 남을 모략하지 말며 남의 허물을 전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난무하는 거짓과 위선, 시기, 질투, 탐욕, 협잡, 증오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의 경험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이면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아무리 사납고 포악하다 해도 길들이지 못할 짐승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제 혀를 다스리지 못해 화를 자초하지요. 서양 격언에도 있듯이 고약한 혀는 고약한 손보다 더 나쁜 법입니다.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입니다. 불교의 윤회설에 따르면 우리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수십, 수백, 수천억 번 이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천지간에 최귀한 존재인 인간이 서로 미워하여 물고 뜯고 싸우고 있으니 말 못하는 짐승을 보기도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인간혐오를 넘어 대인공포증(Anthropophobia)까지 만연해 있습니다. 

오뉴월 장의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바이올렛색과 검정색, 둔하게 들려오는 종소리, 바이올린의 G현,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 나치 정권에 부역한 과오가 있는 독일 시인 안톤 슈나크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에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슬프게 한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글은 슬픔의 정조를 자아내기보다는 낭만의 읊조림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겪는 인간상실의 슬픔은 달콤한 사색으로 이끄는 낭만적인 슬픔이 아닙니다. 영혼의 피와 살이 되는 관념적인 슬픔도 아닙니다. 위태로운 실존의 슬픔입니다. 우리는 인간혐오라는 시대의 질병을 앓고 있어요. 남성혐오, 여성혐오, 남녀분단 같은 부정적인 말들이 횡행합니다. 벌거벗은 폭력의 언어가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말’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유대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탈무드는 인간의 입을 금고에 비유합니다. 금고는 쉽게 자주 여는 것이 아니지요. 입을 무겁게 가져야 합니다. 참다운 말을 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침묵의 언어를 택하는 편이 낫습니다. 침묵의 기술을 익히십시오. 그러면 마음까지 챙길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보다 더 우리를 슬프게 하는 말이 있을까요. 사람에 데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경전의 가르침을 떠올려 봅니다. “저쪽의 나쁜 말을 이쪽에 전하지 말며, 이쪽의 나쁜 말을 저쪽에 전하지 말라.” 점수일체지덕경(漸修一切智德經)의 한 구절만 기억해도 우리는 한결 구순하게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글 김종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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