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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왕국’ 농심 신화의 숨은 주인공, 신동원 회장
‘라면왕국’ 농심 신화의 숨은 주인공, 신동원 회장
  • 유인근 기자
  • 승인 2022.02.0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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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넘어 고객의 생활 전반에 선한 영향 주는 기업 되겠다”
“고객에게 더 큰 만족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라면의 가치를 레벨업 해야 한다.” 지난해 7월 1일 취임식을 통해 농심의 사령탑에 오른 신동원 회장의 취임 메시지다.
“고객에게 더 큰 만족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라면의 가치를 레벨업 해야 한다.” 지난해 7월 1일 취임식을 통해 농심의 사령탑에 오른 신동원 회장의 취임 메시지다.

 

신라면 신화를 일군 ‘라면왕국’ 농심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지난해 3월 타계한 창업주인 고(故) 신춘호 회장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라면왕 신춘호’의 카리스마가 깊게 각인 된 탓이리라. 하지만 라면왕을 도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소리 없이 경영을 챙기며 오늘날의 농심을 일군 일등공신을 꼽으라면 당연 장남인 신동원(63) 회장이다. 그는 무려 42년을 농심에 몸담은 농심 신화의 숨은 주인공이다. 신동원 회장은 11년간이나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지내다 지난해 7월에야 늦은 회장 취임식을 가졌다. 그동안 아버지의 빈 자리를 메우느라 경영에 몰두했던 그는 서서히 자기색깔을 드러내며 새롭게 닻을 올린 ‘농심호’의 변신과 도전을 이끌고 있다.

“고객에게 더 큰 만족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라면의 가치를 레벨업 해야 한다.”

지난해 7월 1일 취임식을 통해 농심의 사령탑에 오른 신동원 회장의 취임 메시지다. 신 회장은 품질면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에서 나아가 새로운 식문화를 위한 라면의 변화를 주문했다. 이를 위해 신 회장은 1980년대부터 30여년간 써 오던 ‘믿을 수 있는 식품 농심’이라는 슬로건을 ‘인생을 맛있게, 농심’(Lovely Life Lovely Food)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으로 교체했다.

새로 걸린 슬로건에는 신뢰받는 품질과 맛, 식품 안전에 대한 철학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객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동반자로서 더 친근하게 다가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또한 식품은 맛을 넘어 경험과 관계, 공감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만큼 고객의 생활 전반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경영활동을 강화하겠다는 자신의 경영철학도 담았다.

그런 철학은 요즘 재계의 최대 화두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과도 밀접하게 닿아 있다. 본격적으로 ESG경영을 실천하겠다고 선포한 셈이다. 지난해 농심이 라면 묶음판매 포장을 밴드형태로 바꿔 나가는 한편, 연말까지 백산수 전체 판매물량의 50%를 무라벨로 전환한다고 발표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신 회장은 환경을 위해 라면과 스낵의 포장 재질을 종이나 재생 페트(PET) 원료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7월 있었던 신 회장의 취임식은 사실 많이 늦은 감이 있었다. 그렇지만 예정보다 반년 앞당겨진 취임식이기도 했다. 사실 그는 2010년 3월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등극한 지 11년이 지나도록 부회장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선친의 49재를 지날 무렵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됐다고…”라며 회장 취임을 거부했다. 창업주의 그늘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누구보다 앞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유래 없는 팬데믹 사태 속에서 급변하는 경영 환경이 취임식을 늦추겠다는 그의 고집을 돌려놨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 총사령탑의 자리를 오래 비워놓을 수는 없었기에, 고심 끝에 지난해 7월 새로운 ‘농심호’의 출항을 알렸다.

카리스마 강한 창업주의 그늘이 워낙 짙었던 탓에, 업계 일각에서는 새로운 선장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2세 경영인에게 농심이라는 거대한 ‘라면왕국’의 운명을 맡겨도 되는지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는 신동원 회장이 무려 42년을 농심에 몸담은 ‘농심 신화’의 숨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아버지 그늘 밑에서 소리없이 경영을 챙겨왔을 뿐, 그는 사실 아버지와 함께 명운을 걸고 농심을 경영해온 주역이고 준비된 선장이었다.
 

42년 현장을 누빈 준비된 사령탑, 신동원 회장이 걸어온 길
 

신동원 회장은 1958년 부산에서 신춘호 농심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 꿈은 과학자였고, 대학에서도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 “놀면 뭐하느냐”는 아버지의 권유로 공장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미리 받는 것으로 농심호에 첫발을 내딛었다. 과학자에서 경영자로 인생의 행로가 바뀌는 순간이다.

이후 1965년 ‘롯데공업’에서 출발한 회사가 1978년 ‘농심’으로 사명을 바꾼 1년 뒤인 1979년에 농심 해외사업부 사원으로 정식 입사한다. 본격적인 경영수업의 시작이었다. 1987년 11월부터 1991년까지 4년간은 동경지사장을 맡아 일본에 근무했다. 당시 농심 라면을 일본에 본격적으로 수출하던 때라 적임자를 물색했는데 신 회장이 손을 들고 자원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옛말처럼 앞으로 라면으로 정면 승부하려면 라면 발상지인 일본에 가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일본은 한국이 따라잡기 어려운 선진국 반열에 이미 올라서 있던 때였기 때문에 결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신 회장이 한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라명왕국을 꿈꾸던 그에게 일본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라면의 발상지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농심에 접목시킬 방안을 궁리했다. 그 당시 생생한 경험이 오늘의 그를 만든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 이후 전무이사를 거쳐 부사장, 사장, 농심그룹 부회장을 역임하며 아버지를 도와 농심의 경영을 책임졌다. 2010년엔 지주회사인 농심홀딩스의 최대주주겸 대표이사 사장에 오르며 일찌감치 후계구도를 확정했다.

지난해 3월 작고한 창업주 신춘호 회장은 라면 신제품 개발에서부터 광고 카피 등 세세한 부분까지 다 챙기는 스타일이다. 그런 카리스마가 강한 아버지 밑에서 아들의 존재감이 가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묵묵하게 농심 라면신화의 한 축을 담당하며 내실을 다졌다.

평소 연구개발 부문에 관심이 많았던 신 회장은 ‘짜왕’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는 등 여러 성과를 냈다. 짜왕 흥행의 주요소였던 굵은 면발 개발도 신 회장의 아이디어였다. 또한 한때 하얀국물 열풍으로 농심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졌을때도 그는 시류에 휩쓸리기보다 오히려 기존 빨간국물 제품을 강화하는 쪽을 선택했다. 초반에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하얀국물 열풍이 금방 사그라지며 그의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라면업계 1위 자리가 더욱 공고해졌음은 물론이다.

해외사업 부문을 책임지며 글로벌 시장에서 농심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데에도 일조했다. 중국과 미국 등에서 매출이 급성장했고, 특히 신라면은 세계 100개국에 수출되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또 프리미엄 라면의 시작을 알린 ‘신라면블랙’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라면(the best instant noodles)’에 뽑히기도 했다.

지난해 코로나19 펜데믹 위기는 미국 시장에서 신라면의 인기를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됐다. 특히 미국인들이 신라면블랙을 간식이 아닌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생각하면서 매출이 급성장했다. 라면 본산지인 일본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해 집 안에서 식사하는 문화가 자리하면서 신라면과 짜파게티, 너구리 등의 인지도가 더욱 올라갔다.

신 회장의 취임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해외 매출 성장이다. 신라면의 올 3분기 누적 해외 매출은 3700억원으로 국내외 총매출(6900억원)의 53.6%를 차지했다. 신라면의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제친 건 1986년 10월 출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농심은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신라면의 국내외 매출이 총 93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전년(8600억원) 대비 8%가량 증가한 규모다. 새해에는 연 매출 1조원 돌파도 예상된다.
 

카리스마 강한 선친과 달리 부드러운 리더십의 오너 2세

 

신동원 회장은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오너2세로 통한다. 엄격한 이미지의 아버지와 달리 신동원 회장은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소통한다.
신동원 회장은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오너2세로 통한다. 엄격한 이미지의 아버지와 달리 신동원 회장은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소통한다.

 

“먼저 경청하는 것이 소통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리더는 무게를 잡기보다는 농담도 할 줄 아는 친근감이 있어야 직원들이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직원들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 편이다.”

선친과 달리 신동원 회장은 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오너2세로 통한다. 상무 시절 그는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하다가 이야기가 길어지면 2차로 자신의 집에 초대해 밤늦게까지 격의 없이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엄격한 이미지의 아버지와 달리 신동원 회장은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소통한다.

취임 후 신동원 회장은 “그동안 잘해 온 것은 계속 잘해 나가고 부족한 것은 개혁해 더욱 좋은 성장을 일궈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선친의 뜻을 이어 글로벌 라면시장에서 확고한 1위로 발돋움하도록 총력을 기울이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키워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해 7월 취임사에서 ‘미래&성장’을 농심 경영의 청사진으로 강조했던 이유다.

그는 라면의 뒤를 잇는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신사업 확대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콜라겐 중심의 건강기능식품 사업과 비건(채식주의) 대체육 사업이 대표적이다. 특히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대체육 브랜드 ‘베지가든’ 사업에 박차를 가하며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대체육 시장 규모는 약 200억원으로 추산된다. 아직은 시장 규모가 작지만 전망이 밝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내다봤다. 농심은 신 회장의 주도하에 막 움트기 시작한 대체육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베지가든’으로 대체육 시장 선점 나서
 

대체육은 식품업계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사회에 ESG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급증하면서 점차 채식을 즐기는 ‘비거니즘(채식주의)’이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원 회장은 이를 놓치지 않았고 ‘베지가든’을 통해 시장 선점에 나섰다.

“농심은 50여 년간 식품 사업을 영위하며 식품 생산 노하우와 연구·개발(R&D) 기술 역량을 축적해 왔다. 라면 건더기 스프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쌓아 올린 기술력은 이미 대체육 개발에 전혀 문제 없는 수준에 올라있다. 이 같은 기술력을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며 더욱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완성하겠다.”

신동원 회장이 그리고 있는 새 농심호의 청사진이다. 대체육은 결국 얼마나 고기 맛과 제품을 유사하게 만드느냐에 승부가 갈릴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라면 건더기 스프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쌓아 올린 농심의 기술력은 큰 장점이다. 우리가 농심의 라면에서 흔히 맛보는 고기 맛이 나는 건더기 수프는 사실 콩으로 만든 대체육이다. 농심은 이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고수분 대체육 제조 기술(HMMA)’이라는 공법을 개발해 냈다. 식물성 원료를 사용하면서도 고기 특유의 맛과 육즙은 그대로 살린 대체육을 만들었다. 그 결과물이 베지가든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신 회장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환경속에서 라면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면서 새로운 먹거리를 통해 농심호를 레벨업하겠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아직 결과는 알 수 없고 시장은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으니, 미래는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이다. 키를 붙잡고 있는 선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신동원 회장은 “1960년대 당시에는 농심도 스타트업 회사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임직원 모두가 젊은 피가 되어 스타트업처럼, 내부에서 활발히 부딪히며 성장하는 모습이어야 한다”면서 “변화와 혁신을 통해 새롭게 스타트하고자 한다. 농심은 결코 성장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했다.


글 유인근(푸드경제신문 편집국장) | 사진 제공 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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